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화 운동을 하는 중에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라는 말로 큰 공감을 얻었었다. 그런데 진짜 닭 모가질 한번이라도 비틀어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거제도의 생가 박물관을 관람하며 혼자 고소(苦笑)를 지은바 있다. 닭은 새벽에 운다. 새벽 형 가축으로 인간의 가까운 친구이면서 시간을 알려주는 자명종 역할도 하는 소중한 동물이기도하다.

낙향 후 다시 닭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 15년이 넘었다. 이번엔 부업이 아니라 취미생활이 되었다. 음식 부산물과 야채 등의 잔반을 버리기가 아까운데다 따뜻한 계란을 꺼내오는 손맛을 못 잊어 닭을 다시 치게 되었다. 여유가 있는 만큼 한술 더 떠서 토종닭, 오골계, 오리 등으로 품종을 다변화 하고 내친김에 수제 부화기(孵化器)를 만들어 부화도 직접해보기도 했다. 부화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자동부화기가 아니니 부화하는 21일 동안 지켜보며 알을 굴리는 등의 관리를 해야 하는데 사람이 어디 집에만 있겠는가. 집을 비울 때는 부화기통을 담요에 싸서 차에 싣고 다니며 부화를 시켰다. 이를 본 이들은 별난 사람이라며 보고 웃기도 했다.

누가 속 좁고 무식한 사람을 보고 닭대가리 같은 사람이라고 했던가? 적어도 내가 길러온 닭들은 어중간한 인간들보다 훨씬 나았다. 수탉 한 마리가 거느릴 수 있는 암탉의 수는 10여 마리 이내라고 한다. 병아리가 자라 중닭이 되면 수탉들이 서열 싸움을 시작한다. 왕좌를 차지한 녀석은 볏과 깃털 등이 윤기가 나고 목청이 멋있게 변한다. 일단 서열이 정해지면 질서가 잡힌다. 사료를 주려 닭장에 들어서면 수탉은 먼발치에서 경계를 한다. 그리곤 암탉들이 어느 정도 먹이를 먹을 동안 지켜보고 절대로 자신은 먹이를 먹지 않고 기다린다. 가끔 채소나 식은 밥덩이 같은 것들을 부어주면 이놈은 ‘구구꾹’ 소리를 내어 암탉을 부르고 발가락으로 땅바닥을 긁어대며 먹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절대 자신은 사람이 보는데서 모이질을 하지 않는다.

또 알을 꺼내러 오면 사람에게도 덤빈다. 매일 먹이를 주고 병아리 때부터 알고 지냈건만 경계심은 여전히 대단하다. 어떤 녀석들은 닭장을 나올 때 뒤에서 퇴화된 짧은 발톱으로 공격하기도 하는데 가격하는 힘이 만만치 않다. 이때는 사료바가지를 들고 수탉과 한판 승부를 벌리는데 굉장히 재미있다. 서로 공방을 한참 하다보면 닭이 지쳐 주저앉는다. 통상 30합 정도 싸우는데 50합이 넘을 때도 있었다.

우리 집 닭장은 집에서 약50미터정도 떨어진 숲속에 있어 바로 보이지 않는데 그럼에도 내가 움직이는 동향을 잘 알고 있다. 밤중에 집으로 귀가하면 대문 여는 소리를 듣고 울어댄다. 닭은 해가 떨어지면 바로 행동을 중지하고 일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다 새벽 동이 틀 시간이 다가오면 울어 날이 샘을 알리는데 이 녀석은 초저녁에 들어오건 한밤중에 들어오건 한참을 울어댄다. 모르는 사람들은 닭이 초저녁에 운다고 재수 없다며 없애라고 하기도 한다. 개는 주인이 돌아오면 밤이나 낮이나 낑낑거리면서 반가워한다. 그런데 개도 아닌 닭이 아침에 계란을 앞에 두고 그렇게 싸우고 나서도 밤에 들어오는 주인을 알아보고 힘차게 울어주니 인사 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 훨씬 양반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어느 대통령 부부가 양계장을 방문 했을때 농장주가 “수탉 한 마리가 10여 마리의 암탉을 건사 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영부인이 “우리 주인은 한사람도 제대로 관리를 못해요”하니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대통령이 주인에게 “수탉이 건사하는 닭10여 마리가 같은 닭이 아니죠?”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녀석은 가만 있다가도 내가 닭장을 들여다보면 순식간에 5~6마리의 암탉을 건사한다. 주인이 보는데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자기 가정과 가족을 확실히 지키는 이런 닭을 누가 닭대가리 같다고 했던가? 내가 지켜 본 바로는 닭이 인간의 탈을 쓴 못된 놈들 보다 훨씬 낫다. 닭보다 못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몇 해 전 어느 겨울엔 닭장에 엄청난 비극이 찾아 왔었다. 서울 아들네 집에 올라가려고 급히 움직이던 어느 날 볼일을 보고 집에 돌아와 보니 온 집안에 닭털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설마하고 닭장으로 올라가보니 아수라장이었다. 온통 피바다에 닭털이 뽑혀 수없이 날고 10마리의 닭 중 암탉 두 마리는 머리를 물려 죽기 직전이다. 수탉도 심하게 다쳐 움직이지도 못하고 쓰러져 있었는데, 털 무더기 속에 개 두 마리가 쓰러져 숨을 헐떡이고 있다. 검정 개 한 마리와 온갖 색깔을 혼합한 잡종 발바리 한 쌍이었다.

비극적인 현장을 유추해본 결과 닭장 울타리 바닥을 파고 기어들어온 개 두 마리가 닭들을 도륙 내었고 수탉은 필사적으로 개와 싸워 중상을 입은 상태이고 개 역시 수탉과 일전을 하다 내상을 입고 지쳐서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삽을 들고 개들을 내려치려는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개도 위기를 감지하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 차마 내려칠 수가 없었다. 이러는 사이 검은 개는 파고들어온 땅굴 밖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가 버렸고 발바리는 움직이지 못해 들고 나왔다. 이놈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서는 전보다 더 심하게 떨어댄다.

기차 시간은 다 되어가고 날은 추운데 닭은 아직 숨을 거두지 않은 놈이 수탉을 포함 3마리나 되는데 곧 죽을 것 같고 화는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고 어찌 할 바를 모르겠고 당황스럽기만 했다. 답답해서 생각난 것이 경찰이다. 파출소에 신고하였더니 내용을 듣고 “개가 닭을 물어 죽였다고요?” 하더니 알았다 하고서는 와볼 생각이 없다. 신고 대상이 안 된다는 거다. 재차 전화하니 마지 못해 와서는 개 사진을 폰으로 찍고는 주인을 찾아보겠노라 하고는 가버렸다. 10분쯤 지나고 그런 개 키우는 사람이 주변에는 없으니 개 줄을 매어서 끈을 잡고 개를 따라 가보세요라고 한다.

명답이다. 그만 박장대소(拍掌大笑)하고 말았다. 주인을 찾는다 해도 개꼴을 봐서 물어줄 집도 아닐 것이고 주변이 빈농지역이라 전혀 변상 받을 여건이 아니다. 나 역시 그런 생각도 없었고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연락한 곳이 파출소였을 뿐이었다. 정신을 차려 생각하니 화난다고 개는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치사하게 때릴 수도 없어 마침 주변에 있던 쓰다 남은 붉은색 스프레이 페인트를 몸에 뿌려 소심한 복수를 하고 풀어 주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손살 같이 달아났다.

죽은 닭, 아직 살아있는 닭 모두를 광주리2개에 담고 평소 알고 지내던 큰 식당의 주인에게 모두 가져다주면서 종업원들 고아먹이라고 하고는 허겁지겁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일주일이 지나 서울서 내려오니 내 몫으로 닭 한 마리를 남겨두었다가 백숙으로 내놓는다. 수탉이었다. 이후 2년간 속이 상해 닭을 기르지 않았다. 닭장 근처엔 가지도 않았다. 길가에 돌아다니는 발발이 땅개는 너무너무 밉게만 보였다.

옛날 중국 전국시대 송나라의 철학자로 유명한 장자의 달생편 투계(鬪鷄)이야기가 생각난다. 닭싸움 좋아하는 왕이 기성자라는 사람에게 최고의 싸움닭을 만들어 오라는 어명을 내리고 열흘 뒤 “충분한가?”하고 묻자 “아니오 강하긴 하나 아직 교만하여 자기가 최고인줄 압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시 열흘 뒤 “어떤가?”하고 물으니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 너무 쉽게 반응 합니다”라고 했고, 다시 이십일 후 기성자는 “상대가 아무리 도발해도 평정심을 유지하여 진정한 힘을 발휘 합니다. 목계(木鷄)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닭을 바쳤다고 한다.

닭을 길러오고 관찰하면서 우리가 우습게 여기는 동물이지만 인간이 배울 점이 정말 많다는 생각을 한다. 각박한 세상에 사회와 가정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닭보다 못한 사람들을 볼 때는 정말 안타깝다. 장자 같은 위대한 철학자가 나와서 세상을 계도하던지 아니면 기성자 같은 사람이 다시나와 木鷄의 경지에 이르도록 인간들을 훈련시켜 줄 수는 없을까 하는 망상도 해본다.

배종진 | 향토사학자·문화재청 방문교사·예비역 포병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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