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모두 결혼시키고 나면 홀가분하리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어려운 가족이 생겼다. 사돈 관계는 예부터 어려운 관계라는 것을 일찍이 알고는 있었지만 요즈음은 크게 격식을 차리지 않고 가깝고 편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하나 아직 우리네 정서상 여전히 사돈은 어렵고 예를 갖춰 대접하기도 맘이 많이 쓰인다. 이는 모두 아들딸 내외가 오손 도손 잘살기를 바라는 양가부모의 심정이 아닐까?

우리 아들네 사돈내외분은 서로 편히 지내자고 약속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깍듯이 예의를 지키려 하신다. 특히, 사부인은 성품이 곱고 가족에 대한 정성이 지극하신 분으로 매사에 감사 기도를 드리며 꼭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신다. 마치 옛날 우리네 어머님들이 조앙님께 손바닥을 비비면서 기도하는 모습 같기도 하고,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유(儒),불(佛),선(禪), 토테미즘(Totemism), 샤머니즘(Shamanism)의 신앙들이 모여 만들어진 ‘어머니의 마음’교 같기도 하다. 

매사에 기도를 올리시고 조상님께, 부처님께, 신령님께, 천지만물에게 감사를 드리며 잘되면 이분들의 보살핌과 도움에 잘되었다고 기도하시고 잘못되어도 이분들이 돌보아 주셨기에 이 정도에서 끝나고 더 큰 불행이 없었다고 하시는 선한 분들이다.

이분들이 우리 집을 두어 차례방문을 하셨는데 재미난 일화가 있어 이번 기회에 고백해본다. 아들을 결혼 시키고 바로 그해 초겨울 저녁 무렵 외출 후 귀가하다 문득 앞마당을 보았더니 집 앞 아카시아 수풀 속 가장 높은 나무위에 무언가 시커먼 물체가 앉아있어 저게 뭘까 하고 쳐다보니 부엉이가 한 마리 앉아 있었다. 아내도 같이 쳐다보곤 “새가 굉장히 크네요” 하며 길조가 찾아왔다고 기뻐한다. 그러고 보니 그즈음부터 해가 떨어지고 나면 초저녁부터 한밤중 까지 앞산에서는 부엉 부엉 부엉이가 울어대었다.

얼마 뒤 사돈 내외분께서 한 아름 선물을 준비하여 첫 사돈집 나들이에 오셨다. 집을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부엉이 앉은 나무를 쳐다보시곤 “저게 무엇 입니까?” 라고 하신다. “예! 부엉이입니다” 하였더니 사부인께서는 바로 기도에 들어가신다. 부엉이는 길조 일뿐 더러 저렇게 큰놈이 와서 울어대니 이 집의 안녕은 물론이고 아들 내외가 부자로 잘살 거라면서 부엉이를 보고 합장하여 기도를 하고 절을 하신다. 며느리가 어릴 때 부엉이처럼 욕심이 많아 온갖 물건을 집어다 자기 방에 보관하고 하나도 버리는 것이 없었다는 얘기도 덧붙이신다. 그런 성격이니 살림도 야무지게 잘 살 거라는 말씀이시다, 

사실 부엉이는 무엇을 물어다 둥지에 숨겨두는 습관이 있는 동물이라 서양에서는 길조로 여기고 있으며 특히, 귀금속을 좋아 하여 부엉이 둥지를 털면 횡제 한다는 속설이 있는 날 짐승이다. 해가 바뀌고 나서 우리 내외도 사돈댁에 두어 번 다녀왔고, 또 사돈댁에서 설 선물을 잔뜩 준비하여 재방문을 해주셨다. 그때도 부엉이는 그 나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사부인은 변함없는 정성으로 기도를 올리고 우리 부부의 건강과 집안의 부가 축척되고, 아들 내외가 잘 되도록 해달라고 부엉이를 바라보며 합장하여 정성을 다해 치성을 드렸다. 

헌데 바깥사돈께서 부엉이가 왜 저 나무에만 앉아 있느냐고 묻기에 아는 상식대로 “올빼미는 텃새지만, 부엉이는 겨울 철새인데 멀리 북쪽에서 날아와 이곳에서 겨울을 나고 밤에는 먹이활동을 하고 낮에는 나뭇가지에서 쉬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보통 십일월 초순쯤 날아와 우리 집 앞산에서 둥지를 틀고 울곤 했습니다. 아마 한번 자리 잡은 나무를 거점으로 삼아 쉬는 건 아닌지...”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부엉이를 바라보면서 보낸 지루한 겨울이 지날 무렵 차가운 날씨는 어느 듯 풀리고 봄비가 내리기 시작 했고, 이젠 밤에도 부엉이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나뭇가지를 쳐다보니 부엉이는 여전히 같은 장소에서 차가운 봄비를 맞으며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 뒤에도 여러 번 봄비는 내렸고 날씨가 다 풀렸는데도 둥지를 떠나지 않기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혹시 부엉이가 아픈 건 아닌지 걱정하는 아내의 채근에 못 이겨 산에 올라 나무아래 까지 다가가 위를 쳐다보니 부엉이는 온데간데없고 시커먼 말벌집이 나뭇가지에 딱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실망감과 헛것을 보고 한해 겨울을 넘긴 부끄러움, 특히 부엉이를 보고 그렇게 정성스럽게 기도를 올리시던 사돈 내외분을 생각할 때 뒷머리가 땅기고 눈앞이 캄캄 하였다.

산을 내려와 아내에게 보고(?)를 하니 기가 막혀 하면서 “사돈이 담에 오시면 어떻게 할 거요?”라고 한다. 멋쩍어서 하는 말이 “그때 되면 바람에 날아가거나 새순이 돋아 안보이겠지”하고 말았다. 그런데, 4월 첫 토요일 아침 늦게까지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사돈의 전화가 왔다. “지금 출발해서 사돈댁으로 가고 있습니다”하는 것이다. 순간 머리가 하얘지며 어찌해야 좋을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여보! 어쩌지?”, “당신! 어쩔거요? 빨리 올라가 나무를 베어 버리소. 사돈 실망 하시지 않도록!” 씻지도 않은 채 근처 철물점으로 냅다 뛰었다. 그리곤 그 집에서 제일 큰 톱을 하나 샀다 32,000원짜리 팔공산표 대왕 톱!

숨을 헐떡이며 산에 올라 마구 톱질을 했다 지름이 30cm가 넘는 아카시아 나무가 톱질이 쉽지 않다. 원래 아카시아 나무는 오래되면 속이 매우 단단하여 동력톱도 날을 바꿔가며 자른다. 톱에서 단내가 나도록 밀고 당기기를 반복 하니 공복의 육체는 땀으로 범벅되었다 한 시간 후면 사돈이 도착 할 탠데 무조건 빨리 잘라야 한다. 사돈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이 몸이 부숴 지더라도 잘라야만 한다. 나무속으로 톱날이 파고들수록 톱질은 안 되고... 하늘이 도왔는지 조상이 돌봤는지 나무의 한계가 오는 것 같다. 드디어 부엉이를 매단 나무는 뿌지직 소리를 내며 한곳으로 넘어 진다 높이가 30미터는 족히 된 나무였다. 

부리나케 뛰어내려와 급히 씻고 의복을 정제하니 사돈은 이미 마당에 들어섰다. 인사를 나누기가 무섭게 두 분은 부엉이를 찾아 고개를 높이 든다. “부엉이 어디로 갔습니까?”, “예! 부엉이는 이제 날이 풀려 어느 날 북쪽으로 날아간 것 같습니다...” 사부인은 부엉이 있던 쪽으로 합장하고 기도 하신다 “그동안 사돈 내외분 잘 지켜 주시고 우리 사위 잘...”

사돈의 지극한 정성이 엄청난 실망이 될까봐 아직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사돈을 기만한 죄(?)로 뵐 때 마다 내심 속으로 부끄럽고 미안하기만 하다.  언제 진실을 고백해야 하나? 언제까지 가슴에 이 불편한 마음을 담아 두어야 할까?

#아카시아 나무는 사유지에 있던 나무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배종진 | 향토사학자·문화재청 방문교사·예비역 포병장교

 

저작권자 © 뉴스파인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