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범의 꿈같은 하룻밤
           
이른 새벽 밀양 농장관리인 최 영감의 숨넘어가는 전화가 걸려 왔다.  내용인즉, 지난밤 농장에 누군가 들어와 마루에서 커피포트에 라면을 끓여먹고 집안을 어질어 놓았다는 것이다. “혹시 친구들이 와서 놀다 간 것 아니냐”는 말씀이셨다. “아니요, 나중에 올라가 볼께요”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 바쁜 일들을 마무리하고 농장으로 올라갔다
 
밀양 농장은 여행을 다니던 중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보기 좋아 쉼터를 마련하고 싶어 마련한 곳이다. 당시는 우거진 잡초에 고라니가 뛰어노는 황무지였지만 몇 년을 고생하여 다듬고 나니 그런대로 괜찮은 농토가 되었고 농사일을 잘하시는 최씨 영감 내외분을 만나 식구처럼 지내게 되었다. 적당히 호칭할 말이 없어 친근감의 표시로 그냥 ‘할배, 할매’하며 지내오다 그럴듯한 농막도 갖추고 아내의 닉네임을 따 여왕벌 농장이라 이름도 지었다. 아내와 나는 이 농장을 폼 나게 별장이라고 불렀지만, 친구들은 한사코 농막이라고 불렀는데 봄엔 소쩍새가 찾아와 봄을 알리고, 뻐꾸기가 울고, 반딧불이가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나름대로 우리만의 별천지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별생각 없이 밀양으로 올라갔는데 마루는 최영감이 깨끗하게 치웠으나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예삿일이 아닌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어지럽혀진 방바닥에는 구급약품 상자가 열려있고, 돼지 저금통은 배꼽이 빠져 뒹굴고 있었다. 주방에는 일회용 커피봉지가 2개나 입을 열고 방바닥에 널 부러졌고, 침대에는 웅크리고 잠을 잔 흔적이 고스라니 남아있었다. 욕실 문을 열자 모래 흙투성이의 욕실바닥에 벗어 던진 체육복 하의와 몇 가지 옷가지가 보였고, 빨랫줄에 널어둔 작업용 바지와 셔츠는 없어졌다. 방

농장이라 중요한 물건은 없었지만 대충확인해보니 라면과 커피를 끓여먹고 내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침대에서 포근하게 하룻밤을 자고 떠난 것 이라 추정되었다. 무섭고 기분 나쁘며 보기 싫으니 현장을 그대로 두고 빨리 가자는 집사람 성화에 못 이겨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는데,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며칠 전 대구 동부경찰서 유치장을 탈출한 탈주범의 소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맞다. 틀림없다.
 
다음날 다시 밀양으로 향했다. 즉시 112에 신고를 하였고 얼마 후 경찰순찰 차량이 도착하였다. 상황을 설명하고 “탈주범이 틀림없다. 탈주범을 추적하는데 도움이 되라고 신고했다”라고 설명을 하는데 경찰들의 표정은 전혀 아니었다. “누군가가 놀다간 흔적이고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린 것이 없으니....” 하며 자꾸만 말끝을 흐렸다. 현장에 버려두고 간 여성 옷가지 등 여러 가지 증거물을 채집할 생각도 TV에서처럼 사진촬영도 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대구 탈주범이 밀양경찰 관내로 내려옴으로서 초비상이라 사건 후 며칠간 계속대기하고 수색하느라 몹시 피곤한 상태라고 한다. 

범인은 이미 지나갔고 잃어버리거나 중요한 피해가없으니 그냥 넘어가자는 뜻이리라, 나 또한 이 사건이 확대되어  불려 다니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기에 무슨 뜻인지 알겠다고 했다. 옛날 교통사고 목격자가 되어 경찰서에 불려 다녔던 기분 나쁜 경험도 있었기에 침 한번 삼키고 말았다.

혼자 생각해본 희대의 탈주범 최갑복의 하루는 이랬다

2012년 9월12일 대구동부 경찰서 유치장 3호에 강도 상해혐의로 전과25범(50세)의 최갑복이 수감되었다. 그는 신장 162cm에 몸무게52kg으로 머리통이 아주 작은 왜소한 체격 이었다. 이틀 후 최갑복은 오전 6시21분 가로45cm 세로15cm의 유치장 배식구에 머리를 들이밀어 46초 만에 귀 부분까지 빠져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5분 뒤엔 28초 만에 배식구로 머리를 완전히 빼내는데 성공했다. 이날은 머리를 빼는 것이 가능한지확인 하는 날이었다.

다음날인 15일 오전 5시27분부터 4분18초 만에 배식구로 배 부위까지 완전히 빼냈다가 유치장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연습을 하였으나 근무자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CCTV가있었지만 상황실에서도 보지 않고 모두 졸고 있었던 것이다. D데이인 9월 17일 새벽5시경 배식구를 빠져나온 최갑복은 2m높이의창문턱에 올라 13cm폭의 쇠창살을 빠져나와 가까운 주택가에서 신용카드와 승용차를 훔치는데 성공했고, 그날 오후에는 청도 방향으로 달아나는데 성공하였다.

뒤늦게 탈출을 확인한 경찰은 경북 전역에 수배령을 내리고 추적한 끝에 경상남도와 경계가 가까운 곳에서 그를 검거할 뻔 했지만, 인근 산으로 달아나는 바람에 범인은 오리무중이 되고 말았다. 9월 18일에는 경북과 경남의 경계지역인 청도군 유천면과 밀양시 상동면으로 이어지는 밀양강 인근의 산과 하천을 헬기와 지상병력으로 대대적인 수색을 실시하였으나 추적에 실패하였다. 9월21일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 12km 북방의 비닐하우스농막에서하룻밤을 은거한 탈주범은 이곳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주인에게 “감사하다”는 글을 남기고 사라졌으며, 9월22일에는 오후 4시15분 수산리 한아파트 옥상에서 라면 박스를 뒤집어쓰고 은거해 있다가 주민신고로 저항 없이 검거되었다

21일과 22일은 주민신고에 의해서 탈주범 최갑복의 행적이 확실하게 드러났지만 9월18일 이후 9월20일까지의 행적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 뉴스에 크게 보도되었다 이후 현장검정에서도 9월18일은 산에 숨어있었고 밤에만 이동하여 어디로 갔는지 모르며 산을 타고 강을 건너 밀양으로 내려갔다고 진술 했으며 경찰역시 그의 말만 듣고 이를 인정하여 19일과 20일의 행적은 묻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최갑복이 19일 밤과 20일 새벽을 어디서 어떻게 보낸 것일까? 

9월17일 밤 경찰에 쫓기기 시작한 범인은 산속에서 18일을 맞게 된다.  강물을 이정표로 남쪽으로 이동한 범인은 낮에는 헬기가 공중 수색을 하고 도로와 주요 목에는 경찰 병력이 잠복과 수색을 하고 있으니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고, 인근 농가에서 다 헤어진 츄리닝 바지와 농부용 모자를 훔쳐 탈출시 입고 온 여장위에 걸쳐 입어 추위를 피했다. 잡목과 덤불속에서 18일 밤을 보낸 다음 19일 어둠이 깃들자 경북과 경남의 경계선인 밀양강을 헤엄쳐 건넌 다음 간간이 흩어져있는 농막을 골라서 은신처를 찾는다. 그중 울타리가 없는 농막은 피하고 펜스로 잘 다듬어져 안전도가 높은 여왕벌 농장을 골라 대문 밑으로 기어들어온다. 아마도 사유지에 대문이 잠겨 있으니 수색 병력이 주인 승낙 없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욕실 문은 쉽게 열고 들어갔으나 방문은 열수가 없었던지 주방의 조그마한 환기창으로 기어들어가 냉장고에서 김치 꺼내고 생수로 라면2개와 커피까지 끓여먹고 지하수펌프 전원을 찾지 못해 생수로 간이 목욕까지 한 다음 침대에서 위성TV로 자신을 추적하는 심야 뉴스를 시청한다. 원기가 좀 회복되자 창고로 들어가 번개탄을 피우고 냉장고의 훈제통닭과 오징어를 구어 먹으며 포식하고 내일의 비상식량까지 든든히 챙기고 편안한 하룻밤을 보냈을 것이다. 늦잠을 자고 나갔는지 아니면 어두운 새벽에 나갔는지는 확인 할 수 없으나 최 영감이 보통 6시경에 농장에 내려오는 것을 감안할 때 그 시간 범인이 방에 자고 있었을 수도 있다. 다행히 영감은 방문을 열어보지 않았고 따라서 탈주범도 요행히 영감과 조우하지 않고 무사히 농장을 빠져 나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제2의 신창원이라고 불리며 영남일대에 소란을 피운 범인은 6일만에 체포 되었지만 그 파장은 대단했다. 근무소홀로 경찰관 9명이 징계를 받았고 그의 탈출은 흥미진진한 뉴스거리가 되었다. 현상금은 최초 3백만원이었는데 그 후 1천만원까지 인상되었고 신고한 주민과 관계인들은 적잖은 포상금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우리식구들의 반응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농장주 여왕벌 “무섭고 기분 나쁘니 빨리 농장을 팔아 버려요”라고 하고, 은행원인 딸은 경찰더러 아버지 옷( 범인이 입고 간 작업복 )과 저금통의 금액미상의 동전, 범인이 먹은 통닭 값 까지 다 받아 오란다. 통 큰 며느리는 “범인이 사용했던 것은 모두 버리거나 태워버리세요”라고 한다. 침착한 아들은 잘 보내주었다고 한다. “할배와 딱 마주쳤을 때 놀란 범인이 밀치기라도 했다면 어찌 할 뻔 했겠습니까?”란다. 우리 농장의 할매는 “관셈보살! 급한 놈 하룻밤 잘 쉬었다 갔다. 우리 아니라도 감방에서 죽자 고생할건데...쯧쯧쯧”이라신다. 여왕벌의 남편 “방바닥 똥 안 싸놓고 간 것만 해도 다행이야...”(옛날 도둑은 잡히지 않으려고 양밥으로 꼭 똥을 싸놓고 가곤했다)
 
탈주범 최갑복은 무엇이 억울했는지 국민 참여 재판을 요구했으나 무산되었다. 형을 살고 있는 최갑복은 포근했던 밀양 우리 농막에서의 하룻밤을 그리며 제 잘못을 반성하고 있을까?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농장 관리인 최 영감의 이름이 최갑득이라는 거다. 최갑복과는 어떤 인연이었을까?                 

배종진 | 향토사학자·문화재청 방문교사·예비역 포병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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