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갑이니 을이니” 하면서 사회가 매우 시끄럽다. 지난해 모 유업회사관련 사건에서 시작하는가했더니, ‘땅콩녀’니 ‘주차장 모녀’니 하며 “갑의 횡포” 운운하더니, 이젠 아예 듣기에 민망한 “갑질”이라는 표현까지 생겼다. 더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낮은 지위의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도의에 어긋나게 괴롭히는 것은 물론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언론이 앞장서서 사회적 약자들의 잠재되어있는 불평등에 대한 불만과 피해의식을 충동질하고 있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여 우려스럽기도 하다.

당시 우리 00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가전제품 양대 회사의 “협력업체”로 선정되어 생산된 종이박스 제품을 납품하고 공정을 지도받기도 했다. 납품량이 그리 많지 않았던 A사는 일류회사답게 발주에서 납품까지 충분한 시간을 주었으며 한번 발주하면 일체의 변경이 없었고 담당자가 지도방문을 나올 때는 반드시 방문일자와 목적을 사전 연락하여 시간을 조절한다음 방문하고 “무었을 도와 드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애로사항이 없는지 체크했다. 또한 점심식사 시간이 되면 정확하게 12시에 회사를 빠져나가 자기들 끼리 식사를 하고는 13시가 되면 사무실에 다시 돌아왔다. 교통비조로 봉투를 건내면 정중히 거절하고 본사로 돌아갔기에 우리끼리는 참 멋있다, 역시일류다 하고 이야기하곤 했다.

반면, 우리 회사의 최대 거래처인 B사는 트럭으로 30여분이내의 거리에 위치하여 상호방문과 납품이 비교적 편리했는데도 항상 초긴장 상태로 준비하고 납기를 맞추느라 사무실에서 현장까지 야단법석을 떨어야 했다. 그 이유는 주간발주표(주문서)와는 달리 제품의 사양변경이 빈번했고, 발주표에 없는 사양이 수시로 발생했고, 수많은 샘플을 요구하다보니 체계적인 생산계획을 수립할 수가 없어,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수밖에는 별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주 납품처인 L사에 항의조차 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우리 회사의 생산라인과 사무실 담당자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했고, 사무실과 현장간에는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였다. 사무실 담당자는 서른을 훌쩍 넘긴 여성이었는데 경력이10년 이상이라 아주 노련했다. 하지만 결혼 후 아이를 갖지 못해 말 못할 고충을 겪고 있다고 했다. 아마 장기간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은 아니었을까?

납품 되지못한 재품들은 고스란히 야적장에 재고로 쌓여 때가오기를 기다리지만 재활용 되는 확률은 10%정도도 안 되었다. 결국 파지 처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힘들게 생산된 제품은 당연히 납기일이 촉박하다. 기사들은 정신없이 적재하여 총알같이 납품하려 L사로 달려간다. 헌데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B사 정문 근무자에 의해 브레이크가 걸리고 만다. 수많은 협력업체가 한꺼번에 몰려들면 문제가 생기니 각 협력업체마다 납품시간을 통제해 그 시간대가 아니면 정문 통과를 시키지 않는 것이다. 결국 기사는 정문근무자에게 봉투를 정기적으로 건 내야 했다.

어렵게 정문을 통과하면 하역이 문제인데 하역만하고 오면 그만이 아니라 작업 라인까지 옮겨달라고 했다. 여기 담당자는 엄연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인데도 개인인부를 따로 고용해두고 있었으며, 이 인부의 급료를 우리 기사가 지급해야 했다. 만약 담당자의 뜻을 어기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입기사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돈이 되지를 않았다. 그런데 이 부조리한 문제를 알면서도 돌아올 보복이 더러워 아무도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매주 토요일 11시 반쯤 되면 L사의 발주담당 과장이 사장실로 찾아와 소파에 자리한다. 사무실에는 들여다보지도 않고 인사도 안 받는다. 그리곤 사장이나 전무를 만난 후 점심은 하지 않고 자리를 뜬다. 경리 아가씨는 하얀 봉투를 들고 방을 들락거렸다. 한편 점심 후 12시 반쯤에는 납품담당 계장이 부장인 내 책상에 앉아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고 앉아있었다. 처음엔 원래 그러려니 생각했고 관습대로 0만원 봉투를 건네주었으나 고생하는 직원들을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어 아예 그자가 나타나면 자리를 피하고 경리과장이 상대하게 했다. 이밖에도 휴가며 명절은 기본이고 심지어 고향에 다녀와야겠다며 노골적으로 거시기를 요구했다.

그런 행위들을 왜 말 못하고 묵인했습니까? 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당시의 사회의 관습이 그러하였고 바른 말을 하여 잘못 보이는 날에는 온갖 시비꺼리가 생기고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우리 회사요, 곤욕을 치르는 것은 우리 종업원들이었다. 이런 것들이 지금 말하는 “갑질” 이었을까? 그때 이 용어를 알았더라면 좀 수준 있는 뒷소리가 되었을까? 그때 우리끼리는 그들을 짐승 같다고 “짐승사 놈들” 이라고 등 뒤에 대고 소리 쳤을 뿐이다. 지금이야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겠는가, 당시 그 사람들도 이제는 모두 승진하여 회사의 중견 간부들이 되어 세계 최고의 회사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자동차이든, 가전제품이든 수천, 수만 개의 부품이 조립과정을 거쳐 완성품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수십, 수백 개의 협력업체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계약서상의 갑, 을 관계는 계약서상의 표현일 뿐이다. 서로 협력하여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고 각자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는 것이 기업의 존립이유 아니겠는가? 그래서 협력업체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금은 과거와 같은 일들이 없어지거나 많이 줄었으리라 생각한다. 혹시 남아 있다면, 해당기업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협력업체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배종진 | 향토사학자·문화재청 방문교사·예비역 포병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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