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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조작한 내란음모 사건 모두 무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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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조작
등록일
2014-09-26 09:44:11
조회수
4775
국정원이 조작한 내란음모 사건 모두 무죄였습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무죄

아무 관련이 없는 김대중을 미리 가두고 5.18을 일으킨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김대중 일당이 정권을 잡기 위해 민중을 선동해 일으킨 봉기'로 조작, 김대중과 문익환 목사 등 20여 명을 연행해 군사재판에 회부한 뒤, 1달뒤 사형을 선고한다. 그뒤 김대중은 독재탄압과 민주화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된다 2004년 2월 무죄


인혁당사건...무죄

2002.9.12 의문사 진상규명위는 이 사건은 중앙정보부의 조작극이었다고 밝혔다.
오늘 우리가 ‘인혁당’이라는 단체는 대구 지역 교사들이 모여서 시국과 경제와 남북관계를 토론하고 책을 읽던 단순한 학습모임이었다. 중앙정보부는 1964년에 이 단체의 구성원들을 반국가 내란음모 혐의로 검거해서 반혁명 세력과의 연계를 조사했으나 이렇다 할 혐의점을 찾지 못해서 석방한 일이 있었다. 그로부터 십년이 지난 뒤 온 나라가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 저지와 긴급조치 철폐를 주장하는 시위와 논쟁으로 들끓자, 공안당국은 이를 저지할 목적으로 인혁당 인사들을 다시 검거해서 이번에는 인혁당 재건 혐의와 반국가 내란음모 혐의를 씌웠다.

내란음모 누명쓰고 억울하게 사형된 8명
인혁당이란 자체가 없었는데 중앙정보부가 만들어 조작하였다

서도원(徐道源, 당시53. 전 대구매일신문 기자)
김용원(金鏞元, 당시41. 경기여고 교사)
이수병(李銖秉, 당시40. 일어학원 강사)
우홍선(禹洪善, 당시46. 한국골든스템프사 상무)
송상진(宋相振, 당시48. 양봉업)
여정남(呂正男, 당시32. 전 경북대 학생회장)
하재완(河在琓, 당시44. 건축업)
도예종(都禮鍾, 당시52. 삼화토건 회장)



민청학련사건...무죄

유신정권에 의한 대표적 용공조작 사건으로 꼽히는 이 사건에 대하여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에 재조사가 이루어져 2005년 12월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는 "민청학련사건은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를 인민혁명 시도로 왜곡한 학생운동 탄압사건"이라고 발표하였고, 2009년 9월 사법부는 이 사건 관련자들에 대하여 "내란죄로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하였다. 또 2010년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 사건의 관련자와 가족 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유신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가해자가 돼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국가가 520억여 원 배상 판결


김두한(한독당)의원 내란음모사건...무죄

1966년 1월 내란음모, 국가보안법 위반, 폭발물 사용음모 등의 혐의로 구속된 한국독립당(이하 한독당) 김두한 의원이다.1965년 11월 20일 내무부 치안국(경찰청의 전신)은 이른바 '한독당 내란음모 사건'을 발표했다. 10여 일 전 실시된 제6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서울 용산에서 당선된 김두한 의원이 한독당원 일부와 학생운동 세력을 배후조종해 정부 전복을 음모하고 이를 뒷받침할 폭발물 제조 등의 모의를 했다는 게 수사당국의 발표 내용이었다.

백기완 .장준하 사건...무죄

1972년 유신헌법을 반대하다 장준하 선생과 함께

‘대통령 긴급조치 1호’ 첫번째 위반자로 체포돼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2년을 선고받았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81)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조용수 민족일보 사건...무죄

진보적 성향의 일간지 민족일보와 조용수 사장이 부담스러웠던 박정희 계엄사령부는 5.16 군사정변 이후 민족일보의 창간 자금이 북한에서 들여왔다는 혐의로 발행인인 조용수를 비롯한 간부들을 혁명재판에 회부, 북한과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언론인 사상 처음으로 사형에 처해진 사건이다. 그 후 2008년 법원은 재심을 통해 조용수에 대한 무죄를 선고했고, 유가족들에게 국가가 99억원 배상 판결


태영호 납북사건...무죄

전북 부안군 위도 섬에 거주하는 강대광이 납북 귀환후 10년 간 군사기밀을 탐지 하는 등 간첩행위를 하였다는 혐의로, 그의 친구들 5명은 강대광과 탈출을 예비하거나 강대광이 북한을 찬양하는 것을 들었으면서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징역 10년등의 형을 살게 된 사건이다. 결국 2007년 강대광씨등 피해자들이 공판에서 장기간의 불법감금과 고문, 가혹행위로 인해 허위 자백한 것이 드러나 무죄가 밝혀지게 된다.


오송회 사건...무죄

1982년 전라북도 군산제일고 전·현직 교사 9명을 ‘오송회’라는 이적단체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구속해 징역 7년등의 형을 살게 된 사건으로, 사건 발생후 16년이 지난 2008년 11월 25일 광주고등법원은 오송회 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관련자들 전원 무죄를 선고한 사건이다. 이는 5.18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수배자인 윤한봉등과 계보를 만들어 5.18 민주화운동을 북의 지령에 의한 사건으로 만들기 위해 벌인 조작사건이었다.

2008년 관련자들의 전원 무죄와 더불어 사건 피해자 및 가족들에 대한 150억여원의 배상 판결.






차풍길 간첩조작 사건...무죄

일본에 거주하는 아버지의 초대로 일본에 건너간 차풍길 씨에 대해 일본체류 당시 조총련 공작원에게 포섭 당한 뒤 귀국, 간첩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구속한 사건으로, 2008년 서울중앙지법에 의해 당시 사건은 66일간의 불법구금과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무죄임을 선고받고 국가가 차씨에게 4억1666만 원을 보상해야 한다고 판결


부림사건

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1년 부산지역의 사회과학 독서모임 회원들에 대한 조작사건으로 63일 동안 몽둥이 등에 의한 구타와 ‘물 고문’ ‘통닭구이 고문’ 등 살인적 고문을 통해 이들을 공산주의자로 둔갑시키고, 독서모임이 반국가단체 찬양활동을 했으며, 사회 불안을 야기시키는 행위를 했다는 죄목을 뒤집어 씌운다. 이후 ‘전두환 정권 초기 저항세력에 대한 탄압으로 조작된 사건’임이 밝혀지게 되고, 2009년 8월에 피해자들에 대해 무죄 선고





수지김 사건...무죄

1987년 여간첩 남편 납북 기도사건이 발생한다. 소위 '북한 여간첩 수지김이 미인계로 순진한 남편을 꼬드겨 홍콩에서 월북시키려다가 남편이 가까스로 탈출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수지김의 유족의 끈질긴 노력 끝에 사건의 진실은 ‘다툼 끝에 아내를 살해하고 처벌을 피하기 위해 월북하려 했던 사건’을 안기부가 공안정국 유지를 위해 조작, 이용했음이 밝혀지게 되며, 고인의 명예회복과 더불어 유족에 대한 42억의 손해배상 결정


배병희 모자 간첩조작사건(무죄)

이수근 간첩조작사건(무죄)

이장형 간첩조작사건(무죄)

석달윤 등 간첩조작사건(무죄)

정상금 간첩조작사건(무죄)

아람회사건(무죄)

이준호,배명희 모자 간첩조작사건(무죄)

신귀영 일가 간첩조작사건(무죄)

김양기 간첩조작사건(무죄)

대영호 납북사건(무죄)

납북어부 서창덕 간첩조작사건(무죄)



당시 중앙정보부장
신직수...(홍진기 사돈)유신헌법 구상자

인혁당 사건 조작도 신직수의 조작

민청학련 사건 조작도 신직수의 조작

정수장학회의 전신 부일장학회의 포기각서를 받아낸 놈도 신직수

김기춘... (박근혜 비서실장) 신직수 법률보좌관.유신헌법 만든자

홍진기...4.19때 법무.내무부장관. 양민 발포 명령으로 사형선고 받은자(친일파)

홍진기 맏딸 홍라희 삼성 이건희의 아내입니다.
홍진기 아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입니다. 중앙정보부장 신직수 집에 장가갔습니다.
홍진기 딸 홍라영 5공 안기부장 노신영집에 시집갔습니다.
홍진기 아들 홍석조 검찰에서 고검장까지 지냅니다.
작성일:2014-09-26 09:44:11 175.201.1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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