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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추기(秋期) 석전(釋奠). 선성(先聖)이시자 문선왕(文宣王)이신 공자님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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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rcola
등록일
2016-09-07 05:17:10
조회수
16043
2016. 추기(秋期) 석전(釋奠). 선성(先聖)이시자 문선왕(文宣王)이신 공자님제사.



1. 석전(釋奠)에는 춘기(春期) 석전(釋奠)과 추기(秋期) 석전(釋奠)이 있는데, 2016 추기석전은 2016년 9월 2일 성균관 및 전국의 많은 향교에서 거행함.



석전 제사 기구인 성균관(성균관대와 성균관은 원래 같은 한 몸이었는데, 해방후 미군정시대 구한말의 정부지침을 이어받아 교육기능은 성균관대, 제사기능은 성균관으로 분리하여 현재에 이름)에서 안내하는 춘기석전, 추기석전 제사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춘기석전 : 2016년 3월 16일 (수)

- 추기석전 : 2016년 9월 2일 (금)



2. 유교 경전의 오경(五經) 사서(四書) 중 하나인 오경의 예기(禮記)에는 다음과 같이 석전(釋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편에 의거합니다.


- 다 음 -


凡學春官釋奠于其先師 秋冬亦如之 凡始立學者 必釋奠于先聖先師

及行事必以幣 凡釋奠者 必有合也 有國故則否 凡大合樂 必遂養老


무릇 봄과 여름에는 교관이 선사(先師)에게 석전(釋奠)을 드리고(생도로 하여금 도덕을 함양하고 고매한 인격을 도야하게 한다), 가을.겨울에도 이와 같이 한다. 처음으로 학교를 세운자는 반드시 선성.선사에게 석전을 드리는데 그 제례를 행할때는 반드시 폐백을 드린다. 석전제에는 반드시 합악(合樂)을 하되,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는 이것을 그만 둔다. 대합악(大合樂)이 있을 때는 반드시 양로의 예를 행하는 것이다.


. 필자 주 1). 번역자가 부가설명 해놓은 자구 풀이


ㄱ). 춘(春): 凡學春官의 春임.

춘하(春夏)의 약(略)이다.


ㄴ). 관(官): 凡學春官의 官임.

교관(敎官)


ㄷ). 석전(釋奠): 선성.선사를 제사 지내는 것


ㄹ). 선사(先師): 지난날에 학식과 덕망이 높았던 대중의 사표(師表)가 될 인물


ㅁ). 선성(先聖): 주공(周公).공자와 같은 성자(聖者)를 가리킨다.


ㅂ) 유합(有合): 합은 합악, 즉 합주악(合奏樂)을 말한다.

.....................

.....................


凡語于郊者 必取賢斂才焉

교학에서 논설을 듣는것은 반드시 현명한 인물을 뽑고 재능이 있는 자를 뽑으려는 것이다................


於成均以及取爵於上尊也

다만, 천자가 성균(成均)에서 주연을 베풀었을 때 당(堂)위에 올라 술을 마시는 영광을 입을 뿐이다.


. 필자 주 2). 번역자가 부가설명 해놓은 자구 풀이


ㄱ). 성균(성균): 오제(五帝)때의 대학 이름, 주나라 때까지는 이것이 남아 있었다.

ㄴ). 취직어상준(取爵於上尊): 상준은 당(堂)위에 있는 술통. 즉 술잔을 잡아 당 위에 있는 술통의 술을 마시는 것.


. 출처: 新譯 禮記/권오돈 譯解/홍신문화사/2003.10.30 발행의 문왕세자(文王世子)편.


3.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에서 설명하는 석전에 대한 규정

석전(釋奠)


석전제[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에 문묘(文廟)에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설명하는 석전(釋奠).

1). 필자가 필요에 의해 발췌한 부분적 요약 설명


...본래 석전은 산천에 베풀기도 하고 혹은 묘사에 베풀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학교에서 올리기도 했으나, 시대를 내려오면서 학교의 의식만을 뜻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 필자 주 3). 한국에서는 해방이후 미군정시대, 교육기능은 성균관대로 분리하여 미군정에 등록하고, 문선왕(文宣王)이시자 선성(先聖)이신 공자님에 대한 석전은 현재의 성균관으로 분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석전(春期, 秋期 釋奠)은 성균관과 전국의 향교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향교는 이전에는 고등학교[향교.서원.사부학당은 조선시대에 주로 양반계층을 대상으로 하던 고등학교 성격. 이 이외에도 명망높은 학자밑에서 사숙(私塾)하다가 과거에 응시하는 방법도 있었음. 이 이전의 소학교 기능은 서당등]에 해당되며, 성균관은 유일무이의 최고 교육기관으로 대학이었음. 현재 한국의 향교는 공식적인 교육기능은 없다고 할 수 있으며, 주로 석전제사등의 제사업무를 거행함.

2),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서 설명하는 석전(釋奠).


석전대제 / 제관 배례문묘에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



유형
의식행사

성격
제사, 추모의식

행사시기
봄 2월(음력)과 가을 8월(음력)의 상정일(上丁日)

행사장소
성균관, 지방 향교


정의

전통 사회에서 산천(山川)·묘사(廟社)에 올리던 제사, 또는 학교에서 선성선사(先聖先師)를 추모하기 위하여 올리던 의식.

연원 및 변천

석전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서는 『주례』·『예기』 등 유교 경전에 기록이 있다. 이들 기록에 의하면, 본래 석전은 산천에 베풀기도 하고 혹은 묘사에 베풀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학교에서 올리기도 했으나, 시대를 내려오면서 학교의 의식만을 뜻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산천·묘사에는 이밖에도 여러 제향(祭享)이 있는 반면에 학교에서는 오직 석전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석(釋)은 ‘놓다(舍也)’·‘두다(置也)’의 뜻이고, 전(奠)은 ‘그치다(停也)’의 뜻으로서, ‘제물을 올릴(薦饌)’ 따름이고 ‘시동을 맞이하는(迎尸)’ 등의 제사 절차는 갖추어 베풀지 않았다.

일설에는 소[牛]·양(羊) 등 고기를 제물로 올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의식을 석전이라 하고, 오직 나물[菜: 빈조류(蘋藻類)]만 드릴 뿐 일체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 의식을 석채(釋菜)라 한다. 석채는 또 석채(釋采)라고도 쓰는데 이는 선사에게 채백(采帛)을 올려 폐백으로 삼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따라서 석전은 석채·석전(舍奠)·정제(丁祭)·상정제(上丁祭) 등의 일컬음이 있다. 정제니 상정제니 하는 것은 석전을 봄 2월(음력), 가을 8월(음력)의 상정일(上丁日: 첫 丁日)에 모시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상대(上代)에 이미 산천·묘사에서 석전을 올렸으며[『주례(周禮)』, 「춘관(春宮)」], 때로는 출정하여 죄 있는 자를 잡아오면 학교에서 석전을 베풀어 선사에게 아뢰기도 하였다[『예기(禮記)』, 「왕제(王制)」]. 전자를 정기적(常時)인 석전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부정기적(非時)인 석전이다.

학교에서는 봄에 시(詩)·서(書)·예(禮)·악(樂)을 가르치는 교관(敎官)이 선사에게 석전을 올렸고 가을과 겨울에도 마찬가지라고 『예기』 「문왕세자」편에 기록되어 있다. 선사란 앞서 간 전대(前代)의 훌륭했던 스승들을 일컫는 말이고, 여름을 말하지 않은 것은 봄에 준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주대(周代)에는 순(舜)·우(禹)·탕(湯)·문왕(文王)을 선성(先聖)으로 모시는 것이 고대 중국의 관례였다. 한(漢)나라 이후 유교를 국교로 받들게 되자 공자를 점차 선성·선사의 자리로 올려 문묘의 주향(主享)으로 모시는 동시에 석전으로 우러러 모시는 관례가 정착되었다. 후한(後漢)의 명제(明帝) 같은 제왕은 주공(周公)을 선성, 공자를 선사로 삼아 공자의 고택을 찾아 가서 석전을 올리기도 하였다. 위(魏)·수(隋)·당(唐)나라 이후로는 대체로 공자를 선성, 안회(顔回)를 선사로 받들어 석전을 올렸다. 명(明)나라에 와서 태학(太學)의 문묘를 대성전(大成殿)이라 일컬어 석전을 올리는 사당으로 확립이 되었다.


. 출처: 석전[釋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5. 두산백과에서 설명하는 석전.


석전[ 釋奠 ]



요약



문묘(文廟)에서 공자(孔子:文宣王)를 비롯한 4성(四聖) 10철(十哲) 72현(七十二賢)을 제사지내는 의식.


석전제·석채(釋菜)·상정제(上丁祭)·정제(丁祭)라고도 한다.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첫째 丁日)에 거행한다.

석전이라는 이름은 '채(菜)를 놓고(釋), 폐(幣)를 올린다(奠)'에서 유래한다. 처음에는 간략하게 채소만 놓고 지냈으나 뒤에는 고기·과일 등 풍성한 제물을 마련하여 지냈다.

중국의 상대(上代)에는 선성(先聖)·선사(先師)의 제사로 발전하여 주공(周公)을 제사하다가 한(漢)나라 이후 유교가 중요시되자 공자를 제사하게 되었다. 후한(後漢)의 명제(明帝:재위 57∼75)는 공자의 옛 집까지 가서 공자와 72제자를 제사한 기록이 있으며, 당(唐)나라에서는 628년 공자를 선성(先聖), 안회(顔回)를 선사(先師)라 해서 제사를 지냈다. 739년에는 공자에게 문선왕(文宣王)의 시호가 추증되었고, 명(明)나라 초기에는 대학에 묘(廟)를 설치하고 대성전(大成殿)이라 하였다.

한국에서는 유교가 전래된 후, 신라에서 공자와 10철 72제파의 화상을 당나라에서 가져와 국학(國學:大學)에 안치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에서도 국자감(國子監:成均館)에 문선왕묘(문묘)를 세워 석전제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개국 초부터 성균관에 문묘를 설치하고 여기에 한국의 18현을 합한 112위(位)를 봉안하여 석전제를 지냈는데, 이를 위하여 성균관에 학전(學田)과 학노비(學奴婢)를 지급하였으며 지방에서는 향교에서 석전제를 주관하였다. 지금도 성균관에서는 옛 의식대로 해마다 봄과 가을, 2차례씩 석전을 거행한다.


. 출처: 석전[釋奠] (두산백과)



. 필자 주 4). 황하문명을 가진 중국 유교(儒敎)는 제자백가(諸子百家)중 공자(孔子)님의 유가(儒家)가 한(漢)나라시대 국교(國交)인 유교(儒敎)로 정해지기 이전에는 나중에 유교나 유가라고 이름붙이기 이전의 시원(始原)유교(儒敎)시대를 거쳤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계사적으로 살펴보면 예수님이전의 기독교를 구약시대로, 예수님이후의 시대를 신약시대로 구분하는것과 비슷합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학술적.연구적인 측면에서 자료인용을 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작성일:2016-09-07 05:17:10 61.43.6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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