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위해 직접 지어준 집”
드라마나 영화 속에만 등장할 줄 알았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이런 남편이 있었다. 아내를 위해 지은 집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집 내부 구조가 특이하고 생활에 편리성을 갖춘 부분들이 이곳저곳에 묻어 있었다.
▲ 난로 속 고구마가 익어가는 사색의 공간에서 박정서 회장과 아내 은희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나무가 있던 마당에 마루를 깔아 화원같은 분위기를 만들었고, 그곳에서 따듯한 차를 마시며 사색할 공간을 만들었다. 이곳 또한 아내를 생각하는 세심함이 새록새록 느껴지는 곳이다. 그 한 켠엔 난로가 보인다. 열기로 가득한 난로 곁엔 잘 익은 노란 고구마가 익어가는 냄새가 솔~솔~ 풍겨 나오고 있었다.
이곳에서 한국코헴회 박정서 회장의 아내인 홍은희씨를 만났다.
헤모필리아라이프에서는 ‘혈우환우를 남편으로 둔 아내들의 이야기’를 기획 인터뷰로 진행하고 있다. 남용우국장의 아내 샤론에 이어, 이남일 간사의 아내 진영씨. 그리고 이번엔 세 번째로 코헴 박정서 회장의 아내 은희씨를 경북 청송 자택에서 직접 만났다. - 취재·인터뷰 유성연 기자
인터뷰 전, 자신을 ‘소심한 성격’이라고 소개했던 은희씨는, 인터뷰 내내 함박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마치 방안에 가득한 악기들이 합주를 하듯 다양하고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듯.
다음은 일문일답
▲ 결혼 전 연애할 때 함께 찍은 사진이에요. 귀하게 간직하고 있는 사진이랍니다 ^^ |
유기자 : 안녕하세요? 먼저 본인 소개 좀 부탁드려요.
은희씨 : 안녕하세요. 저는 코헴회 박정서 회장님을 28살에 만나 결혼한 홍은희 입니다. 현재 경북 청송에서 살고 있으며 남편과 결혼한지는 18년 되구요. 두 아들을 가진 평범한 엄마입니다.
유기자 : 두 분의 첫 만남 좀 들려주세요.
은희씨 : 첫 만남이요(수줍은 웃음) 남편을 처음 알게 된 건. 남편 친구 분과 같이 만나는 자리에 함께 동석을 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그 첫 만남 이후 남편이 다른 친구 분을 소개시켜 준다고 연락이 왔었어요. (그러면서 남편과 만남이 지속됐죠)
유기자 : 남편 첫 인상은 어땠어요?
은희씨 : 음... 첫인상은 날카로우면서도 (내면 속엔) 부드러움이 있었던 거 같아요. 가만히 있을 때보다 웃을 때 얼굴이 환해보이는 장점이 있더라구요.
유기자 : 남편이 혈우병을 가진 사실을 말 했을 때 어떠셨나요?
은희씨 : 처음 남편을 봤을 때 다리가 불편해 보였는데 (남편에게 물어보지는 않고) 그냥 ‘소아마비가 있는가 보다’라고 혼자 생각을 했어요. 또 제가 장애에 대해선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스타일일이어서 남편의 병에 대해 의식하거나 관심이 없었던 거 같아요. 지인의 소개로 만나 진지하게 사귀게 되면서 결혼 이야기가 오고갈 때 쯤 남편이 혈우병에 대해서 얘기를 해줬어요. 그땐 솔직히 깜짝 놀랐었어요. 다른 건 신경이 쓰이지 않았는데 ‘유전이 된다’고 하는 말에 고민을 좀 많이 했었죠. 유전이라는 말이 신경이 쓰였지만. 그때는 이미 남편을 너무 많이 사랑했던지라 선택의 의지가 없었어요(미소). 학교 다닐 때 혈우병은 ‘피가 멈추는 시간이 일반인들보다 늦다’라고만 알고 있었고 ‘크게 위험한 병은 아니다’라고만 생각 했는데, 지내다 보니 ‘뇌출혈 환자들도 있고 장출혈 환자도 있다’고 듣게 되면서 조금은 겁이 나더라구요.
유기자 : 결혼 후 남편이 출혈로 주사를 맞는 걸 옆에서 보실 때 어떠셨어요?
은희씨 : 음... 그 무서운 주사를 본인 몸에 직접 놓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간호사들도 몇 년을 고생해서 하는 것을, 직접 놓기도 하는구나, (혈우병) 치료가 이렇게 밖에 안 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니까 ‘안타깝다’는 마음을 많이 느꼈어요. 먹는 약이라든가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으면 좀 더 편할 텐데, 주사를 놓는 어려움을 (본인이)직접해야 한다는 게 안타까웠던 거 같아요.
▲ 사과밭에서 골프 연습하는 박정서 회장 |
유기자 : 남편에 대한 건강관리는 어떻게 도움을 주고 계신가요?
은희씨 : 운동이 도움 될 까 해서 기구를 사주기도 하고, 컨디션이 안 좋아 다리가 아프다고 말하면 손이 아플 정도로 열심히 주물러 줬어요. 그리고 몸에 좋다고 하는 칡즙도 많이 해드렸던 거 같아요.
유기자 : 남편이 관절 수술을 했을 때와 수술 후 재활치료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요?
은희씨 : 말은 안해도 (수술할 때) 남편이 저보다 더 걱정하는 모습을 봤기에, 제가 느낀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니었죠. 수술 후에 결과가 좋아서 많이 좋아 하더라구요. 재활치료도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남편 스스로 잘 해줘서 오히려 제가 힘들었던 거 보다는 남편이 더 많이 힘들어 했을 거에요.
▲ 결혼 15주년을 맞이해 중국 상해로 가족 나들이를 다녀왔어요~ |
유기자 : 남편과 함께 친정집에 인사드리러 갔을 때 친정집 반응은 어땠나요?
은희씨 : 부모님들께서, 생각보다 의외로 좋아하셨어요(하하하). 남편 외모가 남자답게 생겨서 그런지 몰라도, 말도 시원시원하게 잘하고 모든 것에 자신감 있어 보이는 모습이 좋아 보이셨나봐요. 제가 집에서는 말 잘 듣는 딸이었는데, 다리를 저는 남편하고 결혼한다고 하니까 어머님이 좀 반대를 하셨어요. 저희 집에서는 아버지가 왕이시다 보니 어머니도 별 말씀 없이 잘 받아주신 거 같아요.
유기자 : 결혼 후 신혼살림은 어디서 시작하셨어요?
은희씨 : 결혼할 때 남편이 쓰던 방으로 들어가서 시어르신을 모시고 같이 살았어요. 살면서 조금씩 여유가 생기면 방하나 더 있는 집으로 옮겨가는 식으로(웃음) 다들 그렇게 시작하지 않나요? 저만 그런건가요?(웃음)
유기자 : 코헴회 행사엔 자주 참석하나요? 다른 환우 아내들과도 잘 지내시나요?
은희씨 : 결혼 전엔 저희 시아버님께서 환자의 아버지로 코헴회 행사에 참석을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코헴 행사에 세 번 정도 참석한 거 같아요. 다른 코헴 식구들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데 제가 보기보다 내성적인지라(하하하), 많은 분들을 알지를 못했어요. 그런데 행사에 참석해보니까 (환자)아내들이 많이 없으신 거 같더라구요. 지회 활동을 많이 하시는 임원분 아내들은 참석을 해주시는 거 같은데, 일반 회원들은 혼자 참석을 하시는 거 같아보였어요. 환우 남편들께서 (아내들하고 같이) 참석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유기자 : 남편과 함께 지역분들께 악기를 가르쳐주고 계시는데, 동기가 있었나요?
은희씨 : 농촌 지역에 살아보니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놀음을 하고 있더라구요. 그게 취미를 넘어서 도박이 되기도해요. 힘들게 1년 동안 농사를 지으신건데 겨울에 잠깐 놀이삼아 하신 게 도박이 되서 돈을 많이 잃으신걸 보니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죠. 남편이 먼저 시골에 계신 분들께 건전한 놀이 문화를 제공해보자고 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 드럼은 이렇게 치는 거야~ 리듬을 타면서 말이지~ |
유기자 : 다를 줄 아는 악기가 몇 종류나 되나요?
은희씨 : 악기는 고등학교 때 첼로를 2년 했어요. 음대도 가고 싶었지만(미소)... 직장생활 하면서 첼로보다 작은 바이올린을 혼자 배웠어요. 심심해서 기타 학원도 1년 다녀봤구요.
유기자 : 웬만한 악기는 조금씩 다 다루시나봐요?
은희씨 : 악기는 조금씩 잠깐 만진 정도인데, 시골 분들께 음악 가르치는데 도움이 되더라구요.
유기자 : 잠깐 보니까 드럼도 치시던데요?
은희씨 : 네. 제가 드럼에도 음악적 감각이 좀 있나봐요(하하하). 저는 별 생각 없이 교회에서 (드럼을) 시작한건데, 주변에서 '잘 친다‘고 해주셔서 찬양 부를 때 반주도 맡게 되었어요.
유기자 : 가족들과 모여 음악연주도 자주하시겠어요?
은희씨 : 봄에 청송에는 ‘수달래 축제’가 있어요. 윤정이도 남편이 가르치는 제자인데 저희 딸 삼아 여기서 생활하기도 하고 또 의성에 중학교 때 가르치던 학생이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그 친구도 자주 오다보니 가족밴드를 구성해서 트롯이나 가요를 연습해서 (축제 때) 출전하기도 했어요.
▲ 방안에 여러 종류의 악기들이 가득하답니다. 기타만 10대가 넘는 듯~ |
유기자 : 쌩뚱맞은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부부싸움은 자주 하시나요? (웃음)
은이씨 : 저희도 부부싸움은 하긴 하는데, 별로 안 하는 거 같아요. 일단은 제가 많이 참구요(하하하). 싸움을 하려고 하면 남편이 밖으로 나가버려요. (남편은) 의견이 안 맞으면 자꾸 자리를 피해요. 그러면 제가 다시 부르구요(하하하). 제가 벽보고 얘기할 수는 없잖아요. 불러서 대화하다가 또 싸움이 될 거 같으면 남편은 또 다시 나가고(웃음). 그런데 중요한건 아이들이 있다 보니 ‘아이들 앞에서는 싸우지 말자’고 신혼 때부터 약속을 한 거라 결국은 제가 참는 거 밖에 없는 거 같더라구요. 그런데... 참다참다 안 될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아이들 앞에서 싸울 때가 있긴 있죠(미소).
유기자 : 싸우게 되면 무엇 때문에 다툼이 생기나요?
은희씨 : 저희 부부는 남편이 (혈우병 때문에)피곤하거나 아프면 많이 예민해 지더라구요. 원래 예민한 셩격인데 (아프면) 더 예민해 지는 거 같아요. 그래서 피곤이 밀려오면 (짜증난 사람처럼) 말을 잘 안 해요. 묻는 말에도 대답을 안 해주고... 그러다보면 저는 화가 나는 거죠. 평소에는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참았다가 아니다 싶을 땐 저도 따지고 그러다보니 싸움이 되어버리는 거 같아요.
유기자 : 싸움 하고나면 화해는 바로 하시나요?
은이씨 : 제가 화를 내고도 답답해서 하루를 못 넘기는 편이라 바로 화해해요. 그러다보니 싸움이 길게 갈수가 없는 거 같아요. 제가 참고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농담이에요. 하하하). 그래도 싸우고 나면 남자가 많이 풀어주는 편이잖아요. 저는 여자이다 보니 (싸움이 안풀리면) 정적이 다시 흐르죠(웃음)
유기자 : 요리는 잘하세요? 남편이 음식을 가리지는 안 나요?
은희씨 : 제가 요리를 잘하지는 못해요. 그러다 보니 남편이 음식평은 정말 안 좋게 해요. 저는 싱겁게 먹는 편이고 남편은 MSG를 많이 넣어서 좀 짭조름하게 먹는 편이에요. 그러니 남편 입맛에는 음식이 맛이 없겠죠. 저희 시어머님께서 음식을 좀 짜게 드시는 편이라 남편도 (어머니 손 맛에) 오래 동안 익숙해져 있다보니 (입맛을) 맞출 수가 없더라구요. 지금은 그냥 먹고 싶은데로 먹게 해요. 그리고 몸에 좋다고 하는 음식 중에 마를 갈아서 매일 아침 드리고 칡도 구해서 갈아 마실 수 있게 챙겨주는 편이에요. 근데 요즘은 남편 건강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제 몸도 챙겨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미소)
유기자 : 건강을 위해 운동은 하시나요?
은희씨 : 저는 운동으로 자전거를 타요. 요즘은 추워서 잘 안타고 있어요. 남편은 저녁에 같이 걷자고 하는데, 아이들이 있다보니 잘 안 걷게 되는 거 같아요. 예전에는 둘이서 밤 데이트도 할 겸 해서 동네 한 바퀴씩 1시간동안 걷기도 했어요.
▲ 남편 박정서 회장이 '아내 은희씨를 위해 지은 집'. 경북 청송의 자택, 밤이라 '알흠다운' 너의 모습을 제대로 담지 못해 미안하다 '집'아~ |
유기자 : 남편이 지금 살고 계신 집을 지어준다고 했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은희씨: 이집은 제가 먼저 짓자고 남편한테 말했었어요. 남편은, ‘집을 지을까? 아니면 땅을 더 사서 불릴 까?’ 이런 고민을 했는데, 제가 단칸방에서 살아보니까 아이들한테도 불편해보이고... 그래서 남편한테 집을 지어달라고 했죠. 마침 (어떤 분이) 이 땅을 싸게 파신다고 하셔서 ‘우리 땅이 될려고 하는가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남편도 이 집을 지으면서 ‘애착을 많이 가졌다’고 하면서 ‘이 집에서 평생 우리 둘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유기자 : 남편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요?
은희씨 : 남편은, 남을 이끌어 나가는 걸 좋아해요.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코헴회를 이끌면서) 혹시나 자기 욕심이 있다면 (회원들을 위해) 본인 욕심을 버리고 지금 보다 더 코헴 식구들을 위해 노력해 줬으면 좋겠어요.
유기자 : 끝으로 우리 환우 가족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은희씨 : 저는 늘 ‘혈우병은 특별한 병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이보다 더 많은 병도 많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러기에 (환우들도)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넓은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몸이 불편한 남편을 위해 오늘도 ‘잘했다. 수고 많았다’고 응원도 많이 해주세요. ‘당신을 많이 사랑합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오늘하루를 시작하는 우리 코헴회 식구들에게 지금 이 순간이 제일 행복한 시작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친 은희씨는 남편 박정서 회장을 만나 살아온 지난 18년이라는 시간에 힘든 점도 많았지만, 함께 이겨내 왔듯이 앞으로도 더 많은 일을 같이 할 수 있도록 서로에게 충고도 많이 해주고 대화를 놓지 않는 부부로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느닷없이 찾아가 갑작스러운 인터뷰를 요청했던 이 날, 삼계탕을 끓여 주시면서 몸보신하게 해주신 사랑스러운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유성연 기자]
▲ 가족과 함께 한 컷~ 자고 있는 수종이에게 사진찍자고 해서 미안~ 눈감은 거 이해해 줄께~ 가운데서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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