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허덕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영하로 떨어진 날씨.

요즘 왠지 가슴이 답답한 것은 나이나 성별을 가리지 않고 똑같은 듯 하다.

갑갑한 마음을 슬쩍 달래줄 여행지는 없을까.

그리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나름의 분위기를 가진 소박한 아름다운 곳 말이다.

◇ "부산에도 해녀가 있다"

▲ 부산 영도의 해녀 할머니가 수산물을 옮기고 있다.

부산에 수많은 골목이 재조명을 받고 있지만, 의외로 숨겨진 여행지가 있다.

제주 못지않게 부산 해녀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영도다리까지가 여행자들의 동선인데, 여기에서 조금만 더 가보자.

흰여울 마을에 가면 볕 좋은 날 해녀를 만날 수 있다.

해녀가 제주에만 있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 가면 전통적인 '부산 해녀'를 만날 수 있다.

▲ 가마솥에 고동을 찌는 해녀 할머니

주문을 해놓고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바닷가에 걸어놓은 가마솥에 장작이 지펴진다.

초겨울 날씨엔 더없이 정겹다.

미리 물질해놓은 해녀들은 이내 쟁반에 해삼과 멍게를 내 오지만, 내놓을 게 없는 해녀는 투박한 말투로 "여 좀 있으소. 금새 주가꼬올테이까"라는 말을 남기고 이내 물 속으로 뛰어든다.

조금 여유를 갖고 노닥거리다 보면 갓 잡은 해삼과 멍게가 밥상 위로 올라온다.

▲ 갓 잡은 멍게

물론 소주는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다.

술을 못하는 이들도 이쯤 되면 '소주 한잔'이 절로 생각난다.

제주 못지않은 해녀들이 부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 부산에도 해녀가 살게 된 까닭은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19세기 말 교통의 발달로 제주 해녀들이 전국 곳곳으로 출가했기 때문이다.

제주와 배편이 있는 부산 영도지역에 특히 많이 진출했다.

이들 해녀를 '출항 해녀'라고 부르는데, 부산에만 수백 명이 있다.

그러나 부산 해녀들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제주 해녀가 조만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될 것이란 사실과 비교하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수십 년간 바닷가에서 영업한 이들을 행정기관이 앞장서 철거하려 하고 있다. 당연히 도움을 주는 일도 거의 없다.

이런 와중에 얼마 전 태풍 차바로 풍비박산이 난 곳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해초처럼 거친 바다에 뿌리를 내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갈뿐이다.

 

◇ 소박한 아름다움을 가진 '벽화 마을'

가파른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서면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벽화 마을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에 숱하게 많은 벽화 마을이 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바닷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우선 조용하고 평화롭다. 관광객들이 덤벼들지 않기 때문이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프랑스 남부 니스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해변을 볼 수 있다.

▲ 흰여울마을에서는 영도 앞바다에 뜬 배들

이곳에선 어딘가 귀에 익은 문구를 벽에서 만날 수 있다.

"이런 게 어딨어요? 이라면 안되는 거잖아요! 할께요! 변호인 하겠습니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변호인' 촬영지가 이곳에 있다.

하얀 벽면에 이 문구가 궁서체로 쓰여 있다.

▲ 영화 '변호인'의 대사를 볼 수 있는 벽화 마을

영화 '변호인'의 촬영지로 한때 살짝 알려졌지만 영화 변호인의 촬영지이기 때문에 볼거리가 많은 마을은 아니다.

이곳 사람들의 삶 자체에 문화가 깃들기를 바라서인지 진행되어온 사업들이 모두 마을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나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을 아래쪽으로 내려서면 갈맷길이 이어져 있다.

부산 시민들이 산책길로 활용하는 곳이다.

▲ 해안 산책에 좋은 갈맷길

흰여울 길에 있는 공·폐가를 리모델링해 예술가들을 입주시켜 주민들에게 생활문화 기회를 제공하고, 만남의 즐거움을 주는 독창적인 문화예술 공간을 탄생시키는 것이 흰여울 마을의 목표다.

골목의 벽화 또한 이러한 사업 목적으로 그려졌다.

여행의 마무리는 부산역 맞은편의 '초량불백' 골목이 제격이다.

80년대 시작된 이 골목의 불고기 백반은 육질 부드러운 암퇘지 고기만을 사용했다 한다.

▲ 여행의 마무리는 부산역 맞은편의 '초량불백'거리에서

◇ 교통

시내버스 7번이나 70번, 71번 또는 508번을 타면 이송도 곡각지 정류소까지 갈 수 있다. 이곳에 내려 오른쪽 골목길로 내려가면 바로 바닷가로 내려갈 수 있다.

버스를 좀 더 타고 백련사 입구 정류소까지 가서 언덕길을 내려와도 좋다.(연합) 성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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