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욱 기자] 서울의 한 법원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피고인들이 모두 무죄를 선고받는 사례가 나왔다. 

특히 이들 3건의 무죄 판결은 생활밀착형 범행으로 기소된 이들에게 국민의 시선에서 무죄가 내려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23일 서울남부지법에 따르면 이달 5일 이 법원 형사12부(최의호 부장판사) 심리로 버스 기사 A(61)씨의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A씨는 올해 1월29일 저녁 강서구의 버스중앙차로에서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한 혐의(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로 기소됐다. 검찰은 A씨가 전방주시 의무를 철저히 해 안전하게 운행해야 했는데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며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배심원단 7명 중 5명이 무죄 의견, 2명이 유죄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다수 의견에 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예견하기 어려운 이례적인 사태까지 대비할 의무가 운전자에게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무죄의 근거였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왕복 8차로 도로였고, 56m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어 보행자 통행이 금지된 사고장소에 B씨가 있으리라 예상하기 어려운 요소였다. 아울러 B씨는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었고, A씨가 제한속도 밑인 시속 49㎞로 주행한 점 등도 고려됐다.

이 재판 한 주 전 형사11부(반정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도 일반물건방화 혐의로 기소된 C(31)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이번에는 배심원단 7명이 만장일치로 무죄 의견을 냈다.

C씨는 작년 9월22일 강서구 한 주차장의 쓰레기에 불을 질러 담벽과 건물 지붕을 불태운 혐의로 기소됐다.

배심원들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C씨의 혐의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공소사실 입증 의무는 검사에게 있고, 입증이 부족하면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무죄가 선고된다.

검찰은 사건 현장 인근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찍힌 용의자가 C씨라고 주장했다. 해당 영상에 C씨가 찍히긴 했지만, 다른 통로가 있어 C씨가 용의자와 동일인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배심원들의 판단이었다.

이 용의자가 C씨라고 하더라도 공소사실처럼 방화를 저질렀는지도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영상의 용의자는 불이 나는 순간 허리를 굽히지 않은 채 서 있었다. 이 상태에서 허리 아래 있는 쓰레기 더미에 불을 붙이기는 쉽지 않고, 이 불이 방화가 아니라 담뱃불 등에 의한 실화로 났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재판보다도 한 주 전 형사12부 심리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도 배심원단 7명 전원은 검찰의 기소가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배심원단은 난폭운전 혐의(특수상해·특수협박)로 기소된 D(39)씨에게 죄가 없다고 봤다.

검찰은 올해 2월 오전 8시께 서울의 한 사거리에서 소형 차량을 몰다 승객 3명을 태운 택시 앞에 급제동한 D씨가 난폭운전을 했다며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D씨는 갑자기 끼어드는 택시를 피해 중앙선을 넘었다가 건널목에 진입하면서 신호를 확인하려고 정지한 것뿐이라고 항변했고,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키 190㎝에 체중 120㎏의 거구에 소형차를 타고 있던 D씨의 시선으로는 신호를 확인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국민참여재판 평균 무죄율은 8%로 전국 법원 형사합의 사건 1심 무죄율인 4.1%보다 갑절에 가깝다.

다만 비난 여론 등을 의식한 피고인들이 신청을 꺼려 신청 건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2013년 764건이었던 신청은 2014년 608건, 작년 505건으로 줄었다.

남부지법 관계자는 "우연의 일치인 것으로 보이나 모두 배심원들의 의견을 존중해 판결을 내린 것"이라며 "국민참여재판이 활성화돼 국민 의견을 재판에 반영할 기회가 늘어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파인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