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주가 밀린 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직원에게 동전으로 화풀이하는 '동전 갑질'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경제가 어려워진 탓도 있지만, 강자에는 약하고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겐 한없이 강한 우리 사회 풍토가 근본 원인으로 지적되면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일 경남 창녕군의 한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A 씨 등 외국인 노동자 4명은 건축업자 B 씨로부터 밀린 월급 440만원을 모두 동전으로 받았다.

동전은 100원짜리 1만7천505개, 500원짜리 5천297개 등 무려 2만2천802개나 됐다.

B 씨는 자루에 담은 동전을 사무실 바닥에 쏟아 뒤섞이도록 한 뒤 '가져가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인근 상점 주인의 도움으로 은행 몇 군데를 떠돌다 한국은행을 찾아가서야 겨우 동전을 5만원권 지폐로 교환할 수 있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의 한 카페에서는 업주가 종업원에게 동전으로 임금을 지급한 뒤 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비방글을 올리고 맞고소까지 해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올해 3월 30일에는 성남시 중원구의 한 대학 앞 음식점에서 일하던 직원이 '밀린 임금을 달라'며 노동청에 진정을 내자 업주가 임금 17만4천740원을 1천원짜리 지폐 4장을 제외하고 모두 10원짜리 위주의 동전으로 줘 여론이 들끓었다.

자루 2개 무게만 22.9㎏에 달했다.

업주들의 이 같은 횡포는 올해만의 일이 아니었다.

지난해 6월에는 울산에서 아르바이트하던 10대 여성이 밀린 임금 32만원을 받지 못해 노동청에 진정을 넣자 업주가 밀린 임금 중 10만원을 10원짜리 동전으로 줬다.

 

같은 해 4월에도 충남 계룡시의 한 음식점 업주가 종업원으로 일했던 중년 여성의 임금 18만원을 주지 않고 버티다 10원짜리 동전으로 지급했다가 누리꾼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이들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동전 갑질'은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나 아르바이트생 등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저질러졌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김윤태 교수는 "경기가 어려워지며 체불임금 문제가 일상화해 고용주와 직원 간 갈등이 커지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피해자들 대다수가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며, 합리적이고 상생하는 노사문화가 우리나라에 없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몇 건의 사건으로 피해자 구제를 위해 법제화를 하자는 논의는 다소 이른 감이 있다"면서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노동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임금이 지급되게끔 대안을 논의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현행 노동법상으로도 '동전 갑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피해자들을 법적으로 보호해줄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에는 주급, 월급 등 임금 성격에 따라 일시불로 지급하고 예외적인 상황인 아니라면 현금으로 주게끔 명시됐다"며 "그러나 지불 방식에 관해서는 따로 규정이 없어 동전으로 임금을 주더라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동전 월급은 상식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전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 것은 틀림없다"며 "그렇더라도 사람의 주관적 감정과 연관된 부분이라 이를 법제화해 제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알바노조 최기원 대변인은 "아르바이트생들이 노동청 제소 등 법적 절차를 밟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고용주들이 불만을 가지고 '갑질'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동전 갑질'을 막더라도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다른 방식의 '갑질'을 할 수도 있는 만큼 근로감독관의 올바른 감시와 판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설령 직원이 태업, 부정행위 등을 저지른다 하더라도 생계가 달린 월급으로 보복하면 안 된다"며 "그런 부분은 적법한 방식으로 지도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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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6/15 10:1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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