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군위군 상주-영천간 고속도로공사 4공구(시공사 : 대림산업) 크레인 추락사고 현장. 현장 감독관도 안전대걸이도 안전그물도 없었다.

[김태일 기자] 산업현장 하청 노동자들의 연이은 사망사고로 불법적인 하청관계와 노동자 안전문제가 전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자칫 잊혀질뻔했던 상주-영천 고속도로 건설근로자 2인 크레인 추락사고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지난달 14일 경북 군위군에 위치한 상주-영천간 고속도로공사 4공구(원청 : 대림산업)에서 5톤 크레인 바스켓에 탑승해 24m 높이에서 교량배수구 설치 작업을 하던 중 크레인 붐대가 부러지면서 노동자 김모(41)씨와 장모(41)씨가 추락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장에는 공사감독관 없이 크레인기사 A씨와 사망한 노동자 2명만이 작업을 하던 중에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구지검 의성지청과 군위경찰서, 고용노동부는 크레인을 조작한 A씨와 하청업체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 추락지점엔 안전장비는 커녕 오히려 정비되지 않은 뾰족한 바윗덩이만 가득해 피해를 키웠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당시 크레인이 버틸 수 있는 최대 거리와 각도를 벗어나 무리한 작업을 시도하다 하중을 견디지 못해 붐대가 부러진 것으로 보고 이 부분의 사실관계와 책임여부를 집중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원청인 대림산업이 현장에 작업지휘자를 배치하지 않고 교량 상판에 안전대걸이(고소작업시 노동자가 착용한 안전대를 연결할 수 있는 고정장치)와 추락방지망조차 설치하지 않아 사고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만, 검찰이 최근 중대재해를 야기한 원청 사업주에 대한 엄중처벌 입장을 밝힌 것과 달리 수사당국이 진정으로 대기업인 원청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와 책임 추궁을 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이번 사고의 경우 단순한 추락사고를 넘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남양주 지하철공사 붕괴사고'와 함께 우리나라 건설현장의 불법적인 다단계 하도급과 불평등한 고용관계가 빚어낸 필연적인 결과였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작업가능한 거리와 각도를 벗어나 무게를 못이기고 종잇장처럼 꺾여버린 크레인 붐대
▲ 사고 크레인에는 바스켓 무게에 따라 작업이 가능한 붐대 길이와 각도가 명시되어 있었으나 이를 감독하는 관리자가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 결과 대림산업이 원청사인 상주-영천간 고속도로 공사는 '써**건설'이라는 1차 하청업체를 두고 그 아래로 '현*개발'(자재공급 및 배관 설치)이라는 2차 하청, '대*건설'(자재공급 및 배관 설치)이라는 3차 하청의 다음 단계인 최말단의 계약단계에서 2명의 사망 노동자가 현장시공까지 해야 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명백한 건설산업기본법 위반(형사처벌과 영업정지 등이 가능)일 뿐만 아니라 다단계 하도급과 재하도급의 구조 속에서 현장감독의 주체는 모호해졌고 안전조치의 책임은 떠밀려진 것이었다.

게다가 대림산업은 사측 노무사를 통해 사망자 중 1인은 '사업자'로 등록이 되어 있어서 산재처리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유가족측은 "하청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강압적으로 낼 수밖에 없었던 사업자등록이었고 실제로는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았다"고 전하며 "불평등한 관계를 악용한 원청사의 전형적인 책임회피 수단이고 사고시의 꼬리자르기다"라고 항변했다.

▲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관계자들에 대한 구속수사 촉구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사망 노동자의 가족

유가족은 13일부터 서울 중구에 위치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원청 사업주를 포함한 관계자들에 대한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1인시위를 시작했고, 조만간 원청인 대림산업과 하청업체 관계자, 크레인기사 등을 형사고소할 계획이다.

대림산업측은 “써**건설에 교량공사를 일괄 하도급 줬기에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이뤄졌는지 파악하지 못했으며 원청의 산재 예방 의무와 관련해선 현장에서 충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망한 노동자 김모씨의 어머니는 "사고 한 달이 지나도록 부검결과도 듣지 못했다. 좀 있으면 49재도 지내줘야 하는데 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앞이 깜깜하다"고 말하며 끝내 주저앉아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주변 청계천변을 걷던 시민들도 걸음을 멈추고 유가족의 이야기와 피켓 문구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일부는 1인시위 사진을 찍어 자신의 SNS에 올리거나 유가족에게 음료를 건네며 위로하기도 했다. 최근 곳곳의 연이은 하청노동자 사망사고를 접하며 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변화를 바라는 마음이 높아진 것을 볼 수 있었다.

▲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사고 관계자들에 대한 구속수사 촉구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사망 노동자의 가족

또다른 유가족은 "드러나고 있는 사고와 불법적인 하청관계만 해도 이렇게 많은데 그동안 숨죽여 피눈물을 삼킨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냐"며 "끝까지 싸워서 사고원인과 책임자를 밝히고 억울한 죽음이 줄어들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한편, 사고가 발생한 5월은 고용노동부에서 지정한 '건설현장 추락사고 집중 감독기간'이어서 사고의 파장은 다른 현장에까지 적지 않게 퍼져나갈 것으로 예상되며, 시공사인 대림산업 측에도 엄중한 책임이 물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 1인시위를 마무리하다가 사망 노동자 김모씨의 어머니가 아들의 사진을 끌어안고 오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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