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7월 7일 초등학교 6학년 박인비 어린이는 아버지 옆에서 TV 골프 중계를 보고 있었다.

당시 스무 살 박세리가 US여자오픈골프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박인비 어린이는 "아빠, 나도 골프 할래"라고 말했다.

'세리 키즈'의 간판 주자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박세리(39·하나금융)는 지난 2007년 6월8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명예의 전당 입회를 확정했다.

한국 선수, 그리고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이었다.

9년이 지난 오는 10일 박인비(28·KB금융)도 LPGA투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다. 한국 선수로는 박세리에 이어 두 번째, 그리고 아시아 선수로도 박세리에 이어 두 번째다.

LPGA 투어 명예의 전당 입회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기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1951년 패티 버그, 베티 제임슨, 루이스 석스, 베이브 자하리아스 등 LPGA투어 창립 멤버 4명이 한꺼번에 명예의 전당에 입회한 이래 박인비는 25번째 회원이다.

65년 동안 25명이니 희소성이 대단하다. LPGA투어 명예의 전당 신규 입회자는 2007년 박세리 이후 10년 동안 없었다. 그만큼 입회가 어렵다. 더구나 25명 가운데 박세리나 박인비처럼 투어에서 거둔 성적으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이는 21명 뿐이다.

LPGA투어를 물심양면으로 도운 배우 출신 골프 애호가 다이나 쇼어는 1994년 선수가 아니면서도 명예의 전당에 입회한 유일한 인물이다.

주디 랭킨, 도나 카포니, 말린 해지 등 3명은 은퇴한 뒤에 투어에 기여한 바가 많다는 이유로 투표를 통해 입회했다.

명예의 전당 문턱이 높은 이유는 웬만한 여자 선수가 달성하기 힘든 기준을 정해놨기 때문이다.

먼저 포인트 27점을 쌓아야 한다. 포인트는 대회 우승 한번에 1점씩 부여한다. 메이저대회는 2점을 준다. 시즌 최저 평균타수를 기록하면 주는 베어트로피나 올해의 선수상을 받아도 1점을 준다.

27점을 다 쌓아도 두가지 조건이 더 있다. 반드시 메이저대회 우승이나 베어 트로피, 올해의 선수상 가운데 하나는 수상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10년 동안 투어에서 활동해야 한다. 단순히 우승을 많이 한 선수가 아니라 역대 최고급 선수라야만, 그리고 한두해 반짝하는 선수가 아닌, 오래도록 투어에서 살아남아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는 이 10년 투어 활동 조건을 채우지 못했고 쩡야니(대만)는 포인트를 채우지 못해 명예의 전당에 들어오지 못했다.

 

박세리는 선구자였다. 명예의 전당 뿐 아니라 골프에서는 대개 뭐든지 한국인 최초였다.

1998년 LPGA챔피언십을 제패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LPGA투어 메이저대회 정상에 올랐다. 한국인 처음으로 US여자오픈을 제패했고 브리티시여자오픈 한국인 첫 우승 역시 박세리 몫이었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베어트로피를 받았다.

박인비에게 박세리는 골프 선수로서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등대였다.

박세리가 갔던 길을 따라 걸었다.

박인비는 "어릴 때부터 박세리 언니를 보면서 같은 길을 걷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10년 동안 박인비가 쌓아올린 업적은 따지고 보면 박세리가 세운 이정표를 보고 걸었던 결과인 셈이다.

박인비의 오늘은 박세리라는 거인(巨人)의 어깨 위에서 이룬 것이다.

박인비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이미 박세리를 넘어선 게 여러 분야다.

박인비는 메이저대회에서 무려 7승을 거뒀다. 박세리는 메이저대회에서 다섯번 우승했다. 박인비보다 메이저대회 우승컵이 많은 선수는 6명 뿐이다. 6명 가운데 메이저대회 10승을 올린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을 뺀 4명은 1950년대에 뛴 투어 초창기 멤버들이다.

박세리가 아직도 이루지 못한 커리어 그랜드슬램도 박인비는 지난해 완성했다. 메이저대회를 빠짐없이 하나씩 우승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박인비 이전에는 6명 밖에 이루지 못한 위업이다. 박세리는 ANA 챔피언십 우승이 없어 아직도 커리어 그랜드 슬래머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박인비는 또 박세리가 한번도 차지하지 못한 올해의 선수상도 한국 선수로는 처음 받았다.

박인비는 또 LPGA챔피언십에서 메이저대회 3연패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메이저대회 3연패는 1939년 버그, 2005년 소렌스탐에 이어 박인비가 세 번째일만큼 드문 기록이다.

박인비는 생애 총상금에서도 박세리를 넘어섰다. 8일 현재 1천283만4천476달러를 벌어들인 박인비는 1천258만3천713달러를 받은 박세리를 앞질렀다.

하지만 박인비는 아직 박세리가 가진 한국인 최다승에는 아직 미치지 못했다. 박인비는 작년까지 17승을 따내 박세리의 25승에 8승이나 모자란다.

박세리와 박인비는 둘 다 주니어 시절 골프 신동이었다.

 

공주 금성여고 재학 때 박세리는 프로 잡는 아마추어 여고생으로 유명했다. 아마추어 신분으로 프로 대회에서 8승을 올렸다. 1995년에는 한국여자프로골프 투어 대회 12개 가운데 4개 대회를 석권했다.

박인비는 미국 유학 시절 미국 주니어 무대 최강자였다. 미국주니어골프협회 주관 전국대회에서 9차례 우승했고 2002년 US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를 제패했다.

프로 무대에 뛰어들어서도 둘은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박세리는 한국여자프로골프 투어를 휩쓸었고 LPGA 투어에 건너가서는 신인으로 메이저대회 2승을 포함해 4승을 쓸어담았다.

박인비는 투어 2년차 때 US여자오픈 우승을 차지했다. 생애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에서 따냈다.

둘은 역경을 극복한 것도 닮았다.'

박세리는 2004년부터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쳤다 하면 오버파 스코어였다. 80대 스코어를 하도 자주 적어내 "주말 골퍼냐"는 비아냥도 받았다. 그는 2006년 메이저대회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에서 카리 웨브(호주)를 연장전에서 꺾고 우승했다. 극적인 부활이었다. 그는 이후 2차례 더 우승했다.

박인비의 슬럼프도 박세리 못지 않았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박인비는 샷이 되지 않아 미국 무대를 포기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한때 골프를 포기할 뻔 했던 박인비는 오뚝이처럼 재기해 월드 넘버원이 됐다.

박인비는 그러나 명예의 전당 입회라는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은 시점에서 선수로서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고질적인 손가락 부상과 함께 박인비는 '의욕 상실'이라는 커다란 벙커에 빠졌다.

박인비는 "동기 부여가 안 된다"고 공식 인터뷰에서 심정을 토로했다.

박세리는 오는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여자 골프 대표팀 코치로 참가한다. 박인비는 여자 골프 대표팀 에이스다.

세계랭킹 2위 박인비는 애초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다. 코치 박세리와 선수 박인비는 최고의 조합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 박인비는 올림픽 출전 자체가 어려울 만큼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최고의 무대를 앞둔 박인비에게 박세리가 다시 한 번 '등대'가 되어줄 수 없을까. (연합뉴스) 권훈 기자

khoo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6/08 11:4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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