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병든 부모를 상대로 한 40~60대 중장년의 반인륜적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모 봉양을 의무로 여기는 이들 세대의 유교적 가치관이 경제적 부담과 장기간 병시중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충돌하며 학대로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대전지법은 지난 23일 70대 노모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A(44)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월 새벽 세종시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 말기 신부전증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어머니 B(72)씨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3남매 중 막내인 A씨는 약 10년 전부터 부모를 모시고 살았고, 어머니가 4년 전부터 신부전증으로 혈액 투석을 받게 되자 주 3회씩 병원 통원치료를 돕는 등 성실하게 부양해왔다.

그는 "어머니의 고통을 줄여주는 방법은 어머니를 숨지게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이에 앞선 2014년 1월에는 한 대중 가수의 아버지 B씨가 그의 노부모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당시 현장에는 '장남으로서 부모님은 내가 모시고 간다'는 유서가 발견됐다.

B씨는 치매에 걸린 부모를 부양하다 사업이 기울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우울증까지 겹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일에는 치매에 걸린 80대 어머니를 마구 폭행한 C(55)씨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특별한 이유 없이 치매 환자인 어머니(86)를 마구 폭행했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청 집계를 보면 2005년부터 10년간 부모를 살해하거나 폭행한 패륜범죄 건수는 9만4천700여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40대에서 60대의 중장년층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렇게 통계에 잡힌 범죄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지적한다.

 

부모 학대가 대부분 가정 내에서 이뤄져 적발이 어려운 데다 자녀가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 신고하지 않는 노부모가 많기 때문이다.

중장년층의 패륜 행위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급속히 진행되는 고령화와 연관돼 있다.

고령의 부모를 오랜 기간 봉양하다 보니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고 여기에 각종 병시중으로 심신이 지치면서 폭력으로 비화한다는 것이다.

60대 자녀가 80~90대 노부모를 공격하는 '노노(老老) 학대'가 급격히 느는 것이 그 예다.

특히 중장년층은 자녀 교육에 큰 비용이 들거나 직장에서 퇴직해 경제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부모 부양책임이 유독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가정 내 노인 학대사건이 급격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실직을 하면 경제적인 어려움에 부닥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술을 찾게 되고, 술김에 부모에게 손을 대는 식으로 번져간다"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노인 학대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이어 "치매노인을 돌보는 자녀 중 우울 장애를 겪은 사람이 60%에 달할 정도로 부모 부양은 몸과 마음이 고된 일"이라며 "부양이 고될수록 가족의 일치감과 연대성은 점차 약해지고 결국 극단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이들 세대는 부모 부양이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강해 쉽게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신영화 군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도저히 형편이 안 되는 데도 손가락질을 받을까 두려워 노부모를 가정 내에서 모시다가 결국 폭력이라는 형태로 곪아 터지는 일이 중장년층에서 흔히 나타난다"며 "도식적인 유교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필요하면 사회와 국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자신과 부모 모두를 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노인 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책도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신 교수는 "노인 학대를 가정 내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면서 "어떠한 형태의 노인 학대든 범죄라는 인식이 있어야 하며 이를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노인복지 분야의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해 노부모 부양 부담을 사회와 국가가 짊어질 필요가 있다.

김신열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거동이 불편한 노부모를 부양하려면 일일 요양보호사를 고용하거나 장기요양보험제도를 이용해야 해야 하는데 아직 선진국보다 자부담률이 높은 실정"이라며 "급속히 진행되는 고령화에 맞춰 정부가 체계적인 노인보호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백도인 임채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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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5/31 10:3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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