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위원회 소통부 인턴 최재민

최근, 청년들의 눈을 사로잡은 책이 있다. 바로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부제: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이다. 이 책은 현재 일본의 사회를 잘 묘사하고 있었다.

비정규직, 경직된 노동시장, 재정적자,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라는 단어들로 묘사된 일본은 그 어느 때보다 ‘절망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일본은 1999년 6월 통계기준 변경 이후 역대 최고치인 12.5%의 청년실업률을 기록한 우리나라와 크게 상황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일본에서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청년들은 ‘행복함을 느낀다'고 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행복하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 인과관계는 필자를 참 의아케 만들었다. 이처럼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의 인과관계에 대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말로 집약되는 일본은 저성장, 경기침체의 늪에 빠져있다. 이렇듯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개천에서는 용이 날 수 없는 구조가 고착화 된 사회에서 일본 청년들은 더 이상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지 못한다.

이는 요즘 한국의 언론과 인터넷 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년들의 수저계급론, N포 세대와 비슷한 맥락이다. 이처럼 미래에 대해 더 이상 어떤 기대도 갖지 못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일본의 젊은이들은 상호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큰 의미를 찾지 못한다.

서로 아무리 치열하게 경쟁해도 대기업 취직과 안락한 삶, 막대한 부 등은 불가능한 현실이자 자신의 삶과는 동 떨어진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일본의 청년들은 힘들게 노력하고 애쓰면서 경쟁하기보다는 동료들과 작은 공동체를 만들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최대한 맞춘 삶을 살아가고 만족한다. 이러한 흐름은 결국 ‘절망’의 나라가 되어버린 일본에서 역설적으로 ‘행복’한 젊은이들을 탄생시켰다.

수많은 사회학자와 전문가들은 20년 후 한국의 모습을 알고 싶다면 현재 일본의 모습을 보라고 말한다. 필자는 한국이 시대적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고 일본처럼 될까 두렵다.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 구조에 안주해 버린, 미래를 포기하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자위하는 세태가 안타까울 뿐이다.

최저 시급을 받으며 알바에 매달리는 일본 청년들은 막강한 권력과 거대한 부를 거머쥔 세력에 대해 관심을 갖기 보다는 같은 상황에 놓인 다른 알바생의 월급에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이는 하루하루 추위를 피할 곳을 찾아 헤매는 노숙자가 자신의 생활을 청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옆에 누워있는 노숙자를 바라보며 '저 신문은 얼마나 따뜻할까'라며 부러워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책을 읽고 처음에는 ‘일본 젊은이들은 진정 행복한 것이 아니라, 뇌의 방어 기제에 의해 한순간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고통을 주다 보면 어느 순간 뇌에서는 엔도르핀이 나온다고 한다. 이는 도저히 견디기 힘든 외부 환경의 고통을 견디기 위한 일종의 뇌의 생존방식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노력해도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없는 현실, 더 나은 내일이 있다는 희망이 없는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워 일본 청년들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필자의 이러한 생각은 지난해 일본 내각부가 실시한 ‘국민 생활에 관한 여론조사’에 근거한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20대 청년들의 63.1%는 고민이나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동반한 행복이 과연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거 2005년, 일본의 주요 미디어들은 비정규직, 저임금 등 혹독한 취업 환경에 처한 ‘불행한 젊은이’ 기사를 연신 보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일본의 ‘불행한 젊은이’들은 이제 ‘행복한 젊은이들'이 됐다. 아무리 도전하고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으니 아예 포기하고 가진 것에 만족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 일본이 이 행복한 젊은이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총 소비가 줄어든 상황에서 청년들이 다양한 방면에서 소비를 해야 하는데, 일명 절약 정신으로 똘똘 뭉친 이 청년들이 소비를 하지 않아 경제가 활성화 되지 않고 갈수록 둔화되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눈을 조금 돌려 한국의 상황을 살펴보자. 최근 한국에서는 부모의 재력에 따라 자녀의 계급이 바뀌는 ‘수저론’ 혹은 희망 없는 사회를 뜻하는 ‘헬조선’ 등 자조 섞인 말들로 스스로의 세태를 한탄하는 청년들이 많아졌다.

마치 10여 년 전의 일본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래서 섬뜩하다. 한국도 일본을 따라가게 될까 무섭다. 청년이 희망을 잃어버리기 직전인 바로 지금, 2016년은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고 새로운 희망의 미래를 만들 수 있는 분기점이자 갈림길이다.

이제 한국은 세대와 계층, 지역을 초월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N포 세대 청년들을 더 이상 미래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No포 세대 청년들로 변신시켜야 한다.

청년 문제는 비단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다 함께 풀어가야 할 시대적 과제이지 않은가. 이제 더 이상 그 누구도 ‘헬조선’, ‘이생망’ 등을 외치는 우리나라 청년들의 절규를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받아들이지 않길 바란다.

내가 바라는 앞으로의 한국 사회는 청년 누구나 끊임없이 도전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사회다. 자신의 노력 여부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청년이 많아지면 하는 바람이다.

어렵더라도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도전하며 앞으로 한 발, 한 발 힘차게 내딛고 나아가는 청년들이 많아지기 위해서는 청년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는 환경 즉, 열심히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모든 청년들이 공정한 출발선에서 출발할 있도록 정부를 비롯한 재계와 기성세대,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면서 진정 행복해하는 청년들이 많아지는 대한민국.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러한 상상이 현실이 되는 날, ‘뇌의 방어기제'에 의해 꾸며진 가짜 행복이 아닌, 마음 저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행복을 느끼는 청년들로 가득 찬 대한민국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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