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의 심판은 매서웠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은 안정보다는 견제와 변화를 선택했다. 개표가 96.3% 진행된 14일 오전 4시 현재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 확보 실패는 물론 제1당 자리까지 내놓는 참패를 당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는 물론 총 의석도 새누리당을 앞서며 제1당 자리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국민의당은 원내교섭단체 기준을 훨씬 뛰어넘는 39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돼 20년 만에 국회 '3당 체제' 구축을 이끌게 됐다.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에 훨씬 못미치는 성적으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것은 여권이 펼친 '국회 심판', '야당 심판' 주장에 국민의 동의가 부족했음을 의미한다. 대신 더민주의 당초 목표를 훨씬 상회하는 선전과 국민의당의 약진은 여당에 대한 견제 심리와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의 갈망이 맞물린 때문으로 보인다.

여당의 참패로 박근혜 정부는 후반기 국정운영에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노동개혁 등 남은 중점과제 추진도 어려움을 겪게 됐다. 여당의 과반 확보 실패는 오만과 독선의 정치를 펼친다면 누구라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 국민의 따가운 회초리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막장드라마라는 비판까지 받았던 공천 파동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공천 주도 세력은 깊은 반성을 해야 하고 책임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야권 분열로 한때 의석이 180석을 넘길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나왔던 터라 이번 총선 결과는 여당에 더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기반이라고 할 대구에서 나타난 표심은 뼈저린 자성이 왜 필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이제 법안의 국회 통과가 불가능해 졌다. 국정의 실질적 동반자로 야당을 간주하고 대화와 설득을 통해 협조를 구해야 하는 책임은 박 대통령과 여당에 있다.

야권도 샴페인만 터뜨릴 순 없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야권 분열 속에서도 수도권에서의 압승을 바탕으로 큰 폭의 의석 증가를 이루며 승리했지만 텃밭이라고 할 호남지역에서는 국민의당에 완패했다. 비례대표 예상 의석도 국민의당과 같았다. 호남 민심 이반에 대한 자성과 지지 탈환을 위한 변화를 보이지 못한다면 수권정당 목표 달성은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더민주가 야권 분열 상황 속에서도 제1당을 차지하는 이변을 거둔 것은 김종인 체제가 이끈 더민주의 변화 노력에 유권자가 평가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호남 주도권 확보 실패가 보여주듯 한계도 함께 노출했다. 더 이상 변화하지 않거나 '도로 민주당' 논란이 빚어진다면 외연 확장은 어려울 수밖에 없고, 유권자들은 언제든 지지를 거둘 수 있다.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이끈 국민의당은 이번 총선의 최대 정치적 승자다. 특히 새누리당이 국민의당 협조를 받을 경우 과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국의 고비고비에서 앞으로 주도권을 쥐면서 제3당으로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전망이다. 하지만 국민의당과 안 대표 앞길에는 난관도 많다. 이른바 '호남자민련'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국민의당이 기치로 내걸었던 정치 혁명의 실질적 내용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기대는 순식간에 신기루로 변할 수도 있다.

이번 총선 투표율은 19대보다 높은 58.0%(잠정)를 기록했다. 유권자의 높아진 관심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구를 반영한다. 국민은 싸움만 벌여 온 비효율적인 국회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 20대 국회는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이번 총선 민심을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해석하는 정당이 있다면 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무겁게 결과를 받아들이고 민심이 원하는 바를 겸허히 되돌아보고 실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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