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윤고은 기자) 확실히 이런 숙종은 처음이다. 덥수룩한 구레나룻에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 이글대는 욕정과 승부사 기질…. 그가 캐릭터를 입으면 같은 역할도 이렇게 달라진다. 역시 대체불가다.

최민수(54)가 SBS TV 월화극 '대박'의 1~2회에서 화면을 장악했다. 그가 새롭게 해석해 내놓은 카리스마 넘치는 숙종의 모습에 '대박'은 새판이 짜인 방송 3사 월화극 대결에서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인터넷에서도 단연 최민수의 연기가 화제다.

지난해 KBS 2TV '나를 돌아봐'에서 빚어진 폭행 사건으로 또다시 구설에 올랐던 그이지만, 그가 '광대'로서 보인 연기에는 잡음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타고난 끼와 가슴 속 불을 연기로 소화하고 해소해야 하는 천형을 타고난 듯한 최민수를 지난 1일 인터뷰했다.

 

--반응이 폭발적이다.

▲그런가? 잘 모르겠다. 그냥 임팩트가 있으면서도 새롭게 느껴지는 숙종의 모습을 찾아내려고 했다.

--왕 역할이 처음이다. 사극에서는 무사만 연기했다.

▲그동안 왕 역할 제안은 많이 왔었는데 별로 하고싶지 않았다. 사극도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았다.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번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 내가 논리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왜냐고 물으면 할말은 없다. 그냥 이번에는 왕을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사극에서 그려진 왕의 전형적인 모습,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과 같은 근엄하고 위엄있는 모습에 더해 권력을 쥔 자의 삶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숙종을 새롭게 해석했다.

▲숙종은 그간 사극에서 장희빈과 인현왕후를 통해 그려진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다. '대박'이 숙종 중심으로 돌아가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숙종을 통해 권력의 상징성을 그려내고 싶었다. '다른 게 뭐가 있을까' 문헌을 찾아보며 연구했다. 숙종에게는 여자가 9명 정도 됐던 것 같더라. 그런데 여자가 많았던 게 단순히 여성편력 때문이 아니라 건강상의 문제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아들 경종이 천식이 심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게 유전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숙종이 천식을 앓는 것처럼 설정했다. 잔기침을 많이 하고 목소리고 약간 쉰듯, 갈라진듯 설정했다. 촬영장에서 일부러 잔기침을 많이 한다. 또 숙종이죽을 때 목 뒤에 혹이 나 있었다는 기록을 보고 혈액 순환이 안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숙종이 여자가 많았던 것이 사실은 폐가 약하고 몸이 찬 남자이기에 여자에게서 따뜻한 기운을 얻고자 그랬던 게 아닐까 상상했다. 또 숙종은 성격이 예민하고 괴팍했던 것 같은데 그게 다 몸에서, 건강의 문제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었을까 해석했다.

그간 숙종은 궁중 암투에 휘둘린 왕으로 주로 그려졌는데, 이번에는 숙종의 입체적인 모습, 숙종만의 아이덴티티를 찾아나서고 싶었다. 3부에서는 숙종이 안경을 쓰고 나온다. 내 아이디어다. 찾아보니 숙종이 왕 중에서 안경을 가장 먼저 썼더라. 그래서 소품팀에 말했더니 안경박물관에서 구해왔더라.

 

--왕의 구레나룻이 특이하다. 비주얼부터 차별화된다.

▲사극 속 왕의 모습은 단정하고 깔끔한 전형적인 모습이 있다. 이번에도 우리 분장팀과 연출팀은 내게 그런 모습을 요구했다. 그런데 왕도 사람 아닌가. 개성이 있고 흐트러진 모습도 있을텐데 너무 고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고종도 사진을 보면 용포를 기워 입은 흔적이 있더라. 티끌 하나 없이 완벽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내 구레나룻이고 내 머리로 상투를 틀었다. 분장용 털을 붙인 게 아니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수염도, 머리도 길렀다. 사람으로서 흐트러진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 왕이라고 정좌한 자세로만 앉아있지 않았을 것 아닌가.

 

--왕이 여자를 탐해 투전판에까지 끼었다.

▲남자의 본능이랄까. 13살에 왕이 돼 하늘 꼭대기에서 살던 자에게 삶의 재미가 뭐가 있을까 싶다. 그런 왕에게 오랜만에 가슴을 뛰게하는 여자와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실제로 숙종이 변복을 하고 많이 다녔다고 하니 상상의 에피소드지만 아주 황당하지는 않아보였다.

--극중 숙종은 궁 밖의 자식과 궁 안의 자식을 거느리게 된다.

▲노론과 소론 당파싸움 속 왕도 정보전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숙종이 극중 대길(장근석 분)을 살려둔 것은 아마도 궁밖 소식을 얻기 위한 안테나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해석한다. 대본이 끝까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뒤의 이야기는 모르지만 그런 포석이 아닐까 싶다. 실제 영조한테는 어려서 죽은 형이 있었다고 하더라. 대길이는 그 아이를 모델로 살을 붙인 인물인 것 같다.

--연기란 최민수에게 무엇인가.

▲공기 같은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난 문제다. 내가 찾아가게 하고, 도전하는 즐거움을 주는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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