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대표'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는 이세돌 9단

[박민정 기자]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가에 대한 명제를 놓고, 아직까지 '인간의 영역'이었던 바둑의 세계에 도전장을 던진 구글의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 9단과의 한판을 앞두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사(社)가 개발한 알파고와 현존 최강 바둑기사와의 '세기의 대결'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것이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는 오는 9일부터 15일까지 5차례에 걸쳐 대국을 펼친다.

그러나 현재 이세돌 9단은 다른 대국에 집중하고 있다. 4일 그는 제17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출전을 위해 중국 상하이에 머물고 있다.

3일 농심배 제12국을 마치고 상하이 시내 식당에서 만난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 대국을 앞두고 부담감보다는 기대감이 더 크다"라며 "아무래도 인공지능과 첫 대결이어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일 농심배 기자회견에서 "부담감은 농심배보다는 알파고 쪽에 더 느낀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일본 바둑의 1인자 이야마 유타 9단이 "이세돌 9단이 부담을 느낀다니 놀랍다"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세돌 9단은 "여기서 느끼는 부담이란, 한 판이라도 지면 안 된다는 부담"이라고 설명했다. 부담감을 느낀다는 말 역시도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는 "이야마 9단도 알파고의 수준을 낮게 보기 때문에 그렇게 놀란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세돌 9단에게 알파고와 대국할 때 무엇을 가장 보여주고 싶은지를 묻자 "스코어로 보여주고 싶다"고 답했다. 5전 전승을 거두고 싶다는 의미다.

그는 앞서 알파고 대국에 관한 공식 기자회견에서 "(5번의 대국 중) 3대2 정도가 아니라 한 판을 지냐 마냐 정도가 될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대국이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이세돌 9단이 '인류의 자존심'을 걸고 인공지능의 습격에 맞서는 모습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이미 퀴즈와 체스에서 인간을 이겼고, 고도의 사고력과 직관력을 요구하는 바둑을 정복하려고 한다.

이세돌 9단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인류의 대표라는 사명감은 아직…"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 비장한 각오보다는 일단 자신에 대한 믿음을 앞세워 세기의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알파고 대국을 앞두고 가장 힘이 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물론 '딸 바보'인 그는 캐나다에서 지내는 딸 혜림 양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오는 6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알파고와 처음 대국하기 전까지 딸과 시간을 보내겠다며 미소 지었다. 그러나 알파고는 자기 혼자 상대해야 한다.

알파고의 실력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지난해 10월 유럽 챔피언인 중국계 프로기사 판후이가 알파고에 0대 5로 졌다는 사실 정도만 알려졌다. 이세돌 9단도 알파고와 판후이 간 대국 기보를 보고 알파고의 실력을 가늠하고 있다.

알파고는 슈퍼컴퓨터를 기반으로 방대한 바둑 정보를 짧은 시간에 습득하는 중인 반면, 이세돌 9단은 정보통신기술(ICT)과 많이 친한 편은 아니다.

인터넷을 많이 이용하고 컴퓨터 바둑도 많이 두기는 하지만, 스마트폰은 롱텀에볼루션(LTE) 초창기 모델을 사용하고, 인터넷 뱅킹도 왠지 거부감이 들어 이용을 꺼린다.

이런 점이 문제되지는 않는다. 그는 "상대가 인공지능 알파고라는 의식은 하지 않고 한 수 한 수 승부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단 알파고와 1국을 두면 모든 게 드러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가 이번에 지고 재도전한다면 받아주겠다. 리턴매치는 얼마든지 환영"이라며 "그러나 그다음에 또 도전할 때는 잘 모르겠다. 알파고가 (나를 이기려고) 칼을 갈고 나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공지능 바둑이 인간을 이기는 날이 온다는 전문가들의 전망에는 동의한다.

이세돌 9단은 "언젠가는 컴퓨터가 인간을 뛰어넘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지금은 양보할 때가 아니다.

저작권자 © 뉴스파인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