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김수현 기자) 한국노총의 노사정 대타협 파기 선언으로 정부가 4대 부문 구조개혁 과제의 하나로 추진해 온 노동부문 개혁이 기약없이 표류하게 됐다.

이 여파로 노동개혁을 원활히 추진할 경우 기대됐던 최대 37만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 효과는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노동개혁의 좌초는 글로벌 경제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꼭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는 전체 구조개혁 추진에도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구조개혁의 지체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끌어내리는 동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동개혁이 중단되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다며 지속적인 개혁 추진 필요성을 강조한다.

◇ '일자리 37만개 창출' 효과 사라진다

노동개혁이 좌초할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결과는 개혁을 통해 기대했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노동개혁의 핵심인 5대 법안과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등 양대 지침이 시행되면 새로운 일자리가 총 37만개 생겨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작년 한 해 동안 증가한 취업자 수인 33만7천명보다 많은 것이다.

즉 노동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한국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1년이나 걸려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다는 의미다.

학계 연구 결과를 보면 국내 5인 이상 사업장이 모두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연간 최대 13만명까지 청년 고용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또 현재 최장 68시간인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규제할 경우 시행 첫해에는 약 1만8천500명, 누적으로 최대 15만명의 고용 창출이 가능한 것으로 예측됐다.

이밖에 기업에서 상위 10% 임직원의 임금인상 자제로 추가 9만개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그러나 작년 9월 국회에 제출된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호법(산재법),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보호법(기간제법), 파견근로자보호법(파견법) 등 5개 법안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계속 묶여 있는 상태다.

더욱이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지침'을 둘러싼 정부와 노동계의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결국 한국노총은 19일 작년 9월 어렵사리 이뤄놓은 노사정 대타협에 대한 파탄 선언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 조치들이 지체되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 어려워져 기업들이 나이 많은 고연봉자들의 임금을 줄일 수 없어지고, 이는 청년 일자리가 줄어드는 효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노동시장 구조개혁 지체…잠재성장률 하락 가속화 우려

노동시장의 구조개혁 지체는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는 핵심요인이 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노동, 자본 등 동원[003580] 가능한 생산 요소를 모두 투입해 물가 상승 부작용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말한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최근 빠르게 하락하는 추세다.

한국은행이 추정한 잠재성장률을 2015∼2018년 3.0∼3.2%로, 이대로 가면 2%대 로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상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잠재성장률이 2021년부터는 2.5%로 내려가고 2026년에는 1%대(1.8%)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잠재성장률은 노동력이 얼마나 풍부한지, 축적된 자본이 얼마나 많은지, 기술 혁신이 얼마나 빠르게 일어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선진국보다 고용률이 낮고 경제 규모가 성장한 만큼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등 비효율적인 노동시장이 잠재성장률을 갉아먹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노동개혁은 ▲ 여성과 청년층의 노동참가 촉진 ▲ 교육과 능력개발을 통한 근로자의 생산성 향상 ▲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서 높은 부문으로의 노동이동 촉진 등 크게 세 가지 경로로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으로 이중화된 노동시장 구조를 바로잡아 장기 저성장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이 구조개혁을 완수한다면 잠재성장률이 1∼2% 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추정한다.

김광석 삼정KPMG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노동개혁은 정부가 추진한 4대 개혁 중에서도 첫 톱니"라며 "이를 시작으로 다른 개혁이 하나하나 시작돼야 하는데 노동개혁부터 톱니가 안 맞게 돼 나머지 구조개혁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 "구조개혁 지체하면 금융위기 부를 수도"

전문가들은 한국노총의 대타협 파기 선언으로 정부가 추진해 온 4대 부문의 구조개혁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기업 구조조정이 늦춰져 최악의 경우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 교수는 "기업부실이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노동개혁이 안 되면 기업 구조조정이 어려워지고 기업의 부실이 금융 쪽으로 전이되면 금융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97년의 IMF 구제금융 당시에도 노동 개혁, 기업 구조조정이 안 되면서 기아자동차, 한보그룹 사태와 같은 기업 부실이 증가해 외환 위기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나이 많은 고연봉자들의 임금을 줄일 수 없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고용 유연화를 골자로 하는 노동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김광석 실장은 "경직된 노동시장에서는 생산성이 높아지기 어려운 구조"라며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곪은 부분은 들어내고 괜찮은 부분을 키워내야 전체가 곪아 죽지 않는다"며 "이번 국회에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정부가 노동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독자 노동개혁 추진 방침을 밝히고 노동개혁 완수에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노사정 대타협 파기 선언이 됐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며 "다른 루트로 노동계 의견을 받고 전문가들 의견을 수렴하는 등 정부가 주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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