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선거구획정 문제와 관련한 약속을 또 한 번 어겼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17일 원내지도부 '3+3' 회동을 통해 20대 총선 선거구획정 기준을 20일까지 마련해 선거구획정위에 넘기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획정기준을 만들어야 하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기준제시 시한으로 합의한 20일까지 회의조차 열지 않는다. 여야는 겨우 정개특위 전체회의를 23일에야 개최키로 했다. 합의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약속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진 꼴이 됐다. 정치권의 부끄러운 모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선거구획정 논의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한국 정치의 현실을 재확인시켜 줬다.

선거구획정안은 선거법에 따라 총선 5개월 전인 지난 13일까지 국회를 통과했어야 했다. 여야는 당 대표까지 나서는 '4+4' 협상을 벌였지만 지역구·비례대표 의석수 조정 및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문제 등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총선 획득 의석의 유·불리만을 따진 때문이었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법 규정을 어긴 상황이었다. 여야 원내지도부가 전격적으로 '20일'을 선거구획정 기준 제시일로 발표해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모았다. 결과는 공수표였다.

내주 정개특위가 재가동되더라도 전망이 불투명한 점은 더욱 문제다. 여야는 그동안 협상에서 지역구 수를 현행 246석에서 7석 늘린 253석으로 하자는 데 의견 접근을 이뤘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지역구 수가 늘어나는 만큼 비례대표를 줄여 현행 의원정수 300명을 유지하자는 입장이고, 새정치연합은 비례대표 감축에 반대하며 의원정수를 약간 늘릴 것과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협상을 재개하더라도 난항이 예상된다. 자신들의 지역구가 없어질 처지에 놓인 의원들의 집단 반발이 거세지는 것은 선거구획정을 미룬 국회가 자초한 일이다.

선거는 대의정치의 꽃이다. 민주국가에서 선거를 통해 국민의 뜻을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게임의 룰이 중요하다. 선거구획정은 이를 위한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내년 총선에 나설 정치 신인들은 아직 어느 곳에서 자신이 뛰어야 하는지 '링'도 모르고 있다. 얼굴이 알려진 현직 의원들은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현역들이 암묵적으로 프리미엄을 지키기 위한 야합을 벌인다는 비난을 받지 않아야 한다. 다음 달 15일에는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다. 더 이상 선거구획정을 미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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