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김현중 기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9일 "혁신위원회의 혁신안 처리 과정과 함께 저에 대한 재신임을 당원과 국민께 묻겠다"고 밝혔다. 비노(非盧·비노무현)계의 거세지는 '문재인 사퇴론'으로 사면초가에 내몰리자 '재신임 카드'를 꺼내들며 분위기 반전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문 대표의 '재신임' 승부수에도 불구, 문 대표를 향한 비판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문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당을 지키고 기강과 원칙을 세우기 위해, 이 시점에서 저는 대표직에 대한 재신임을 묻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며 "만약 혁신안이 끝까지 통과되지 못하면, 재신임을 받지 못한다면 저는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주장했다. 

특히 문 대표는 "지금까지 오로지 단결과 단합을 위해 인내하고 포용했지만, 최근 당 안에서 공공연히 당을 흔들고 깨려는 시도가 금도를 넘었다. 개인의 정치적 입지나 계산 또는 계파의 이해관계 때문에 끊임없이 탈당과 분당·신당을 이야기하며 당을 흔드는 것은 심각한 해당행위"라며 비노계의 쓴소리에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공천혁신안은 문 대표의 긴급 기자회견 직전 진통 끝에 당무위를 통과했고 오는 16일 당 중앙위 의결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이에 일부 비노계·비주류는 "친노세력을 위한 혁신안"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이다. 

문 대표가 이 시점에서 재신임 카드를 전격 들고 나왔다는 점에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 문 대표를 향한 비노계의 사퇴 요구는 끊임없이 제기됐음에도 문 대표는 모르쇠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친노세력에 대한 비노 비주류의 반발이 최고조에 달했고, 탈당 및 신당 움직임도 가시화된 마당에 이들의 주장을 깔아뭉개기식 버티기로는 더 이상 무리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면 돌파, 선제 공격의 수단으로 나름대로 특단의 조치를 취한 셈이다.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과 신당을 추진 중인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회동을 갖고 정권교체를 바라는 호남의 민심에 대해 인식을 공유, "지금의 새정치연합 혁신으로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데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정배 의원의 요청으로 이뤄진 이날 회동은, 새정치민주연합이 혁신안으로 인해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신당론의 중심에 서 있는 천 의원과 전직 대표인 안철수 의원이 만났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이목이 쏠렸다. 

회동에서 안 전 대표는 천 의원에게 "지금 우리 당이 혁신을 못하고 있다. 제대로 혁신을 해야 한다"며 "천 의원도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해 역할이 있으니 함께 하자"고 제안했고, 천 의원은 "새정치연합으로는 안 되고, 가망이 없다. 혁신위는 기대할 것이 없고 새로운 세력으로 야권을 재구성하는 길이 옳은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 정세균 전 대표는 이날 문재인 대표에게 사실상 '2선 후퇴'를 요구했다. 당내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고 문 대표에게 전방위적 사퇴 압박이 가해지는 모양새로 흘러간 것이다. 

사실상 범친노 수장인 정 전 대표는 이날 취재진에게 배포한 성명을 통해 "문재인 대표 등 지도부가 야권 전체의 단결과 통합, 혁신의 대전환을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대결단을 해줄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잘잘못을 따지기엔 너무나 절박하고 시간이 없다. 저는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전 현 지도부와 원로, 손학규, 천정배, 정동영 전 대표 등을 모두 만나겠다"며 '2017년 정권교체를 위한 연석회의'를 제안했다. "당 원로와 3선 이상 중진, 전현직 지도부, 혁신위가 모두 참여해 당의 혁신과 통합을 마무리하는 끝장토론으로 당의 진로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벼랑 끝에 내몰린 문 대표가 이날 재신임 카드를 갑작스레 꺼내들자 비주류 의원들은 다소 당황스럽고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문 대표 기자회견 직후 대책 논의에 나선 한 비노계 의원은 "언제 어떻게 어떤 식으로 재신임을 받을지가 중요하다. 사퇴할 사람이라면 진작 사퇴하지 않았겠느냐"고 의문을 표했다. "사퇴하지 않을 것이란 철저한 계산 속에 시간끌기용 작전이 아니냐"는 것이다. 

박주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광주 동구)은 이날 오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60주년 부활기념 심포지엄'에 참석, 문 대표의 기자회견에 대해 "재신임을 물으려면 선거 참패 이후 즉시 했어야 한다"며 "'자기정치'를 위한 소망을 피력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박 의원은 "지금 문 대표의 리더십으로는 이 당이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 국민들 사이에서 확정됐다"며 "지금 재신임을 묻는 것은' 친노계파여, 다시 뭉쳐라, 입지를 강화해라, 세력을 확대해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안철수 의원 역시 문 대표 기자회견에 대해 "한 마디로 실망스럽다"고 거듭 비판했다. 

안철수 의원은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재신임 요청이) 별로 의미가 없다고 본다. 이대로 간다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본인 생각을 밝히는 게 우선"이라고 공세의 고삐를 바짝 당겼다. 

당내 비주류 모임인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 소속 의원들도 긴급 회동을 갖고 "문 대표의 주장은 성급하고 아쉬운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최원식 의원은 "(혁신안에 대해) 최고위, 당무위에서 의견이 분분했는데도 이 부분을 정리 하지도 않고 갑자기 '이거 안하면 나가겠다'고 하니 황당하다"며 "협박도 아니고 이런 방식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문 대표는 이날 "재신임을 묻는 것과 관련해 지도부와 상의했느냐"는 질문에는 "이 부분은 개인적인 거취에 관한 결정이기 때문에 제가 결단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본인 스스로 결정했음을 내비쳤다. 또 지도부와의 상의도 없이 중대 발표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실제 주승용 최고위원은 민집모 회동 직후 "이 문제는 지도부와 협의해 이뤄졌어야 했다"며 "전혀 협의 없이 갑작스럽게 발표한 것에 대해 아쉽다"고 지적했다. 

반면 친노계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호평하는 분위기다.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는 문 대표의 재신임 카드에 대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자 묘수"라고 평했다. 분위기 반전을 꾀할 수 있는 최적의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사면초가에 내몰리던 문 대표가 재신임 카드를 들고 나옴에 따라 새정치민주연합은 일단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재신임을 묻는 당내 절차가 실제로 진행되기 전까지 비노계의 반발은 일단 잠잠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당의 단합과 승리를 위해 재심임을 묻고 사퇴하겠다"고 맞서는 문 대표를 향해 더 이상 혁신안에 대한 비판도, 사퇴 압박도 가하기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 대표가 재심임을 받는다면 비노계의 사퇴 압박과 탈당 및 신당 움직임은 다소 탄력을 잃고, 친노세력이 또다시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문재인 대표가 친노세력 중심의 편파적인 과정 속에서 재신임을 받는다면 문재인 사퇴론 및 신당론은 겁잡을 수 없이 확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문 대표와 친노세력이 지난 2월 당 대표 선거 규칙을 경선 하루 전날에 바꿨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실제 재신임을 묻는 절차가 진행된다면 그 과정에서도 그들이 어떤 꼼수를 쓸지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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