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11년 백제 武王은 사신을 隨나라로 보내 煬帝(양제)를 만나 隨가 고구려를 칠 때 협조하고싶다고 자청했다. 煬帝는 기뻐하면서 부하를 무왕에게 보내 협의하도록 했다. 그 이듬해 수 양제는 遼河를 건너 고구려를 치게 되었다. 무왕은 국경의 경비를 엄하게 하고 말로써는 隨를 돕는다고 했지만 실은 양다리를 걸치고 기동하지 않았다. 隨는 이 전쟁에서 을지문덕에게 대패했다. 

수가 망하고 唐이 일어났다. 隨의 지배층이 가졌던 백제에 대한 불신감은 그대로 唐의 지배층에 인계되었다. 7세기 백제와 신라는 피를 피로 씻는 공방전을 벌인다. 백제와 신라는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패권국가 唐과 동맹하려는 경쟁을 벌인다. 

백제 무왕 28년(서기 627년)에 왕은 조카 福信을 入唐시켜 唐의 도움을 청했다. 당 태종은 이 자리에서 백제가 신라를 침공하지 말아줄 것을 요구한다. 이즈음부터 唐은 신라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서기 643년 唐 태종은 고구려를 침공한다. 이에 맞추어 신라는 5만명을 동원하여 고구려 남쪽의 水口城을 습격하였다. 이렇게 하는 사이 백제가 신라의 서쪽으로 쳐들어와서 일곱 개 城을 빼앗겼다. 唐도 고구려에 패퇴했다. 신라는 唐과의 우호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손해를 감수했던 것이다. 唐의 지도부는 신라의 이 義理를 고맙게 생각했을 것이다. 

드디어 서기 648년 선덕여왕의 명령을 받은 金春秋는 入唐하여 당태종과 함께 羅唐동맹을 맺는다. 신라가 당과 힘을 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멸한 다음에는 평양 이남 땅을 신라가 갖기로 약조한 것이다. 이 동맹관계는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의 기초를 만들었다. 이것은 신라 지도부가 손해를 감수하고 唐과의 약속을 지킨 代價이기도 했다. 국제관계에서도 의리와 신용은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미 동맹 관계도 羅唐 동맹과 비슷하다. 羅唐 동맹이 삼국 통일에 결정적인 힘이 되었듯이 한국 주도의 남북통일에서도 韓美 동맹은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신라처럼 우리는 미국에 대하여 의리를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미국이 어려울 때 배신한다든지 미국을 敵처럼 대하지나 않는지 되돌아볼 때이다. 만약 미국으로부터 우리가 배신자처럼 찍힌다면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아 신용을 잃었던 백제처럼 결정적인 시기에서 결정적인 외면을 당할지도 모른다. 지금 보는 우리의 작은 손해는 통일기에 큰 득이 되어 돌아올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호주는 IS와 싸우는 미국을 돕기 위하여 공군을 파병하였다. 김일성과 모택동 남침 때 미군 약5만4000명이 戰死하여 지켜낸 한국인데, 우리는 뭘하고 있나? 자유가 공짜가 아니듯이 동맹도 공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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