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칼럼] 방송문화진흥회 10기 이사회가 구성된 후 첫 회의에서 야당 추천 이사가 고영주 이사장의 사상검증을 벌이는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공영방송 이사회 회의에서 이사들이 이렇게 한 개인의 이념이나 성향을 가지고 “입장을 밝히라”며 다른 이사를 추궁한 일이 있었는지 필자가 아는 한 지금까지는 없었던 것 같다. 지난 달 27일 열린 방문진 첫 이사회는 사무처로부터 MBC 소유구조, 재무상태, 방문진 권한 등 경영 전반에 관한 정보를 보고받는 자리였다. 누구를 추궁하고 다그치거나 특히 사상검증 따위는 할 자리가 아니었다. ‘당신 머릿속 이념에 대해 해명하라’는 따위의 요구는 사석에서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야당 추천 유기철 이사는 그날 이사회를 한 개인의 이념과 신념을 재단하고 꾸짖는 심판의 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유 이사는 고영주 이사장에게 “MBC 구성원들이 이사장 과거 경력을 보고 ‘이념의 편향성이 두드러지지 않느냐’고 우려한다. 이 부분에 대한 입장을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당신의 이념을 해명하라’는 유기철 이사의 사상은 정상인가

유 이사에게 누가 타인의 이념과 사상을 지적할 권리라도 주기를 했다는 말인가. 방문진 이사회라는 공식적인 회의자리에서 그것도 이사가 다른 이사에게 ‘당신의 이념을 해명하라’는 따위의 요구를 버젓이 할 수 있었다니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야당 측 이사들은 여당 측 이사들을 어떤 존재로 알고 있기에 그런 무례하고 안하무인의 태도로 동료 이사를 함부로 깔볼 수 있나. 더구나 언론이 그 자리에 있었다. 미디어오늘이 유기철 이사의 그 따위 행태를 지적하기는커녕 고영주 이사장의 이념편향이 논란이라는 가관인 기사를 써 매우 유감이긴 하지만 어찌됐든 언론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도 유 이사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고영주 이사장에게 그 따위 요구를 했다. 입장을 바꿔 만일 이사회에서 여당 측 이사가 “종북소리 들을만하다”는 단체 출신 이완기 이사에게 “MBC 구성원들이 이사의 과거 경력을 보고 ‘이념의 편향성이 두드러지지 않느냐’고 우려한다. 이 부분에 대한 입장을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치자.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거야 말로 ‘안 봐도 비디오’ 아닌가. 당장 미디어오늘, 미디어스, PD저널, 기자협회와 같은 언론노조 세력 미디어지들이 “사상검증 하느냐” “색깔론 제기냐”고 융단폭격을 가했을 것이고, 오마이뉴스와 같은 인터넷 언론과 한겨레신문, 경향신문과 같은 좌파 주류 언론까지 가세해 그야말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총공격을 퍼부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어떤가. 잠잠하다. 고영주 이사장이 이사회에서 야당 측 이사에게 그런 수모와 모욕적 대우를 받았는데도 우파 주류 언론의 외면은 당연하고 우파 인터넷 언론도 잠잠하다. 왜들 잠잠한가. 간단하다. 자기들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현상이 우파와 좌파의 기울어진 운동장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고영주 이사장도 이사장으로서 제대로 대처했다고 보기 어렵다. ‘당신의 이념을 해명하라’는 그런 터무니없는 요구를 받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지적해줬어야 했다.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의 이념을 해명하라고 요구하나”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선 따끔히 알려주는 것이 이사장으로서의 공적인 역할이다.

동료의 사상검증 현장 지켜만 본 여당 측 이사들과 사악한 언론플레이

더 안타까운 건 여당 추천 이사들이 야당 측 이사들의 그런 오만한 행태를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점이다. 방문진 회의 주제와도 무관하고 특히 이사장이 어떤 잘못을 하거나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단지 우파라는 이유로 이념에 대해 해명을 요구받는 어이없는 광경을 보면서도 누구 한 명 나서서 야당 측의 그런 무례를 지적하거나 제지하지 않았다. 필자는 여당 측 이사들 대부분이 아직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이후 이런 식의 비슷한 장면이 되풀이돼선 곤란하다. 그렇게 된다면 방문진에 우파, 우익인사들이 들어갔으니 좌파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밀려 당하기만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좋아했던 사람들이 허무하지 않겠나. 그리고 그런 나약한 사람들이 어떻게 좌파의 모멸적인 인신공격을 이겨내고 MBC 개혁에 앞장설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겠나. 유기철 이사의 한심한 이념공세를 지적하는 게 자신의 사회적 체면을 깎는 행위가 아니라는 점 명심했으면 한다.

유기철 이사가 그날 방문진 회의에서 고영주 이사장의 이념을 걸고넘어진 일은 매우 전략적이고 사악한 언론플레이었다고 판단한다. 언론노조 공추위를 통해 추천받은 다른 이사들과 달리 선명성이 부족한 자신이 야당과 언론노조에 어필하기 위해 이사장을 먹잇감으로 삼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유기철 이사는 전형적인 MBC 출신 야권 인사답게 교활하게 언론을 잘 이용 한듯 하다. 그러나 유 이사를 비롯해 언론노조 세력, 야당은 자신들의 위선을 다시 증명했다. 종북을 비판해도 “사상검증 하느냐”고 발끈하면서 말끝마다 우파를 비난하더니 요새는 우파라는 이유로 개인의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려 든다. 이념을 따질 자리도 아닌데 이념타령을 한다. 도대체 누가 이념을 먹고 사는 집단이고 시대착오 수구세력인가. 유기철 이사와 야당 측 이사들은 명심해야 한다. 함부로 남을 심판대에 올려 칼을 휘두르다가 그 칼에 자신이 베일 수 있음을 깨닫기 바란다. 자기반성은 없이 여당만, MBC만 손가락질하는 오류를 되풀이하면 또 실패할 수밖에 없다.

 

미디어그룹‘내일’ 공동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박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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