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파인더 김승근 대표] 영국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거룩한(?)계보가 시작된 혈우병의 역사는 오랜 시간을 두고 다양한 치료의 시도가 있어왔다. 러시아의 황태자 니콜라이2세의 아들 알렉세이는 혈우병을 앓고 있는 환자였다. 그를 치료하기 위해서 러시아 황실은 온갖 효험이 있다는 약을 다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었고 주술사 라스푸틴에 의해 완치되었다는 구전도 들려온다.

우리나라에서도 혈우병 완치에 대해 몇 차례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지난 2007년 ‘혈우병 완치 1호’라는 고 박진현 씨는 간암 판정을 받고 간 이식수술을 한 결과 간암도 치료되었고 지병이었던 혈우병까지 완치되었다. 당시 간이식을 집도했던 왕희정 교수는 혈우병환자의 간이식을 통한 완치치료에 대해 “혈우인자를 공급받는 치료를 하고 있으나 다행히도 간염, 간경화 및 간암에 전혀 노출되지 않은 환우들의 경우에는 한 번 간이식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많은 혈우병환자들이 감염 등으로 고생하고 혈우병과는 별도로 감염에 대한 치료도 병행하고 있다. 이들 중에서 간에 대한 감염 사례가 없고 건강한 간을 갖고 있는 혈우병 환자의 경우 간 이식을 통해 혈우병을 완치시킬 수도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완치의 소식이 들린 지 얼마 안 되서 ‘혈우병 완치 1호’는 고인이 되어 환자들의 가슴속에 묻혔다. 그가 숨을 거둔 뒤, 간이식을 통한 혈우병 완치의 희망은 고인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뒤, 몇 해가 흘렀고 지난 2년 전 쯤 또다시 언론을 통해 혈우병 완치에 대한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유전자가위 기술’로 혈우병을 완치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지난 해 6월16일 YTN은 “국내 연구진이 혈우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유전자 치료 기술을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방송에서는 “혈우병은 특정 유전자가 거꾸로 뒤집어져서 생깁니다. 연구진은 혈우병 환자의 세포를 역분화시켜 만능줄기세포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유전자 일부분을 변형시킬 수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뒤집힌 유전자를 정상으로 바로 잡았습니다. 혈우병 유전자가 정상으로 변한 것입니다”라고 리포트 했다.

아울러 연세대 박철용 박사는 방송 인터뷰를 통해 “혈우병은 X 염색체에 있는 혈액 응고인자가 망가져서 생기는 병”이라며 “인위적으로 주사맞는 방법도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하면서 유전자 가위 기술로 근본적인 완치가 가능하다는 취지를 밝혔다.

이어, 같은 의대 김동욱 교수도 “환자로부터 얻은 만능줄기세포를 이용해서 유전자 교정을 한 뒤에 다시 넣어주면 환자와 똑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면역 문제도 없고 전혀 부작용이 없는 세포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힘을 실었다.

그러나 치료시술이 바로 진행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동물실험 등 임상 수순이 남아 있기 때문에 적어도 10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같은 ‘이론적 혈우병의 완치’는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부터 지속되어 왔지만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 환자들이 생각하는 혈우병의 완치는?

혈우병에 대한 완치는 기대와 함께 희망고문이 될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현실과 타협하며 자가관리로 방향을 돌리는 환자들도 많다.

혈우병을 앓고 있는 김선국 환우는 혈우병의 완치에 대해 “과학적으로는 가능할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제도적으로나 비용적으로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국가입장에서는) 상당한치료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완치가 된다면) 몇 년치 약값에 비해 훨씬 저렴할 것”이라며 “그러나 제약회사에서는 당연히 반대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완치에 대한 기대는, 롱액팅(치료 효과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같은 더 고가의 약이 보편화되면 국가적인 재정 부담이 만만치 않을 테니, 결국 우리나라가 아니더라도 선진국에서라도 (완치에 대한) 방법을 찾게 될 것”이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황성호 환우는 “기본적으로 유전질환은 완치가 어려운 것 같다”며 “‘평생관리’라는 방향의 접근이 가장 이상적인 것 같다.”고 현실적 타협안을 제시했다.

의학박사이기도 한 황 씨는, 기대를 모았던 유전자치료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라고 판단된다”며 “교정된 유전자를 가진 세포가 죽게 되면 5~10년 후 다시 유전자 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냉철하게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번 영국에서 유전자 치료한 환자들도 모니터링 하다가 언젠가는 다시 유전자 치료를 하던지 또는 약물치료를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구에 거주하고 있는 권선복 환우는 “완치라면 약을 맞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데, 좀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반감기가 한 달 정도 가는 약이 만약에 출시된다면 그것이 완치가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반감기 개념이 아닌 완전한 완치에 대해서는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힘들 것 같다”고 일찌감치 희망을 접었다. 나아가, 현재 약품을 생산하고 있는 제약회사에서도 완치에 대한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취지와 함께 “엄청난 고객을 잃어버리는 ....”이라며 말문을 닫았다. 환자들의 미묘한 뉘앙스에서 ‘제약회사’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정도를 엿볼 수가 있다.

이어서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김승택 환우는 “40여 년 동안 ‘평생관리’라는 말은 익숙한데 완치라는 말은 우리 얘기가 아닐 것 같다”며 “후대에는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세대는 팩터(치료제)의 장기 유지제품은 있어도 자동생성기능을 함유한 완치제품은 힘들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고향이 북쪽인 분들이 통일 후 고향 땅을 밟겠다는 염원을 갖듯 그런 염원이 아닐까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하지만 그전에 다 돌아가시기도 하니...”이라며 쓴 웃음을 짓기도 했다.

의료과학은 매 순간순간 분초를 다투며 진보를 향해 달려왔다. 국가의 보건제도와 행정.입법 관련자들의 높은 관심 속에 혈우병의 치료는 눈부시게 거듭 발전되어 왔다. 이 과정 속에 제약회사에서의 ‘신약개발’은 환자들의 건강을 보다 폭넓게 개선시켜왔고 삶의 질도 향상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적지 않은 환자들은 제약회사에 의해 ‘혈우병의 완치’가 불가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국내 제약회사들이 환자들의 의식 속에 ‘양날의 검’이 된 이유에 대해 우리들은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디어그룹내일 공동대표 뉴스파인더 대표 김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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