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칼럼] 국가마다 공영방송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그 의미는 하나로 요약된다. 공공이 소유하는, 공공 서비스 방송으로 공적 책임을 수행하는 역할이다. 다만 시대적 흐름이나 각국의 정치 환경과 또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각기 다른 공영방송 정책, 전략에 의해 다양한 모습과 형태를 갖게 된다. 필자는 언론학자도 아니고 단지 공영방송을 아끼는 시청자의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공영방송에 대한 이런 개념 정도는 알고 있다. 아마 대다수 국민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런데도 명색이 언론학자들이 토론회나 인터뷰에서 독일의 공영방송이 어떻고 영국의 공영방송이 어떠해서 선진적이니 하는 ‘썰’들을 푸는 것을 보면 국민 참 우습게 본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해외 선진국 공영방송사들이 특별다수제를 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걸 해야 선진국처럼 공정한 공영방송사를 갖게 되는 것처럼 궤변을 늘어놓는데 심하게 말해 장터에 사람들 모아놓고 사기치는 약장수처럼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국정치가 대결적이니 승자독식제이니 비판하다가 그런 진영논리에 따른 여야 7대 4구도가 마치 세상 최악의 불공평한 구도처럼 매도하는데 그것 역시 황당하다. 그런 불공정한 구도 때문에 공영방송의 공정성이 위배된다는 식의 주장도 어이없긴 마찬가지다. 습관처럼 비교해 미안한 말이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도 이런 구도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당시 야당(한나라당)이 불공정하다고 항의할 때는 뭉개다 새누리당 정권에 와서야 제도탓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별다수제 주장의 순수성을 의심받게 만드는 일 아닌가. 야당이 요구하는 특별다수제는 이렇게 문제의식을 느끼는 출발부터 잘못됐다. 정권이 바뀌어 입장이 달라지니 그때서야 절실함을 느끼고 필요성을 주장하는 공정성이란 것이 과연 진짜인가. 그렇게 해서 특별다수제를 하자고 덤비고 그걸 정당화하려 독일, 영국, 일본의 공영방송 사례까지 끌어들여 논리를 만든다고 특별다수제가 우리에게 맞는 옷이 될 수 있나. 전혀 아니다. 

새누리당, KBS수신료 인상 주변에 놓인 치명적 덫 피하라

우리의 정치의식이 바뀌고 정치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방송의 공정성을 확보한답시고 지배구조를 그 어떻게 바꾼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옷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의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현재 우리 정치지형과 정치의식에 따른 자연스러운 구조이고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의 제도쯤은 되는 것이다. 여야대결 구도의 정치지형을 가진 우리 현실에서는 민심이 만들어준 표에 따라 정치지형이 완성되고 그에 따라 공영방송사도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어떻게든 불리한 구도를 역전시켜보겠다는 특별다수제는 그래서 고도의 정치적 제도이고 정략적 장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좋게 말해 KBS를 여야 정치외교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뜻이 아니고서야, 실제로는 KBS를 이도 저도 죽도 밥도 안 되게 만드는 국회처럼 만들겠다는 의도가 아니고서야 특별다수제 도입은 꺼내선 안 되는 얘기다. 지금의 구도로 뽑힌 사장 체재로 공영방송이 운영되다가 민심이 거부하면 정치권력이 바뀌는 것이고 또 자연스럽게 공영방송의 모습도 달라지는 것이다. 

이번 주 국회 미방위가 법안소위에서 KBS 수신료를 올리는 문제와 함께 특별다수제를 논의하기로 한 모양이다. 여당이 KBS 사장을 뽑는데 반드시 야당의 찬성표를 얻도록 강제하는 특별다수제는 KBS 사장 한명 뽑는데 여야가 진을 빼도록 만드는 제도다. 그리하여 가장 무능한 사장을 만드는 제도에 불과하다. 이미 언론학자들이 숱하게 지적하고 걱정하는 부분이다. 특별다수제로 여야 모두가 박 터지는 싸움을 하면서 사장 장기 공백상태로 국민이 손해를 볼 동안 언론노조만 구름 위에 앉아 이득을 볼 제도라는 것도 여럿이 지적했다. 새누리당이 수신료 인상에 급급해 절대 양보해선 안 될 것을 양보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특별다수제가 방송공정성과는 쥐털만큼의 연관도 없다는 것도 공부 좀 하고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 야당이 정말로 방송공정성을 원한다고 한다면 KBS 사장만 그 채로 거르겠다고 할 게 아니라 공영방송 언론노조부터 민주노총 산별노조 탈퇴하고 공정한 모습 찾기 바란다고 되받아주기 바란다.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으로 자기 발목잡은 실수를 특별다수제로 되풀이하지 않기 바란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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