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칼럼] 메르스(Mers)라는 미신이 한국사회를 휘어잡고 있다. 한해 교통사고 사망자가 4~5천명에 달하고, 공기 중 감염되는 결핵 사망자가 2천명이 넘어도 신경쓰지 않던 국민들이 근 한 달 동안 메르스 신경증에라도 걸린 듯 공포에 사로잡혀 벌벌 떨고 있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별 것 아니니 얕보고 무시하란 얘기가 아니다. 감염되지 않도록 위생에 신경쓰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도록 마스크 쓰고 다니면서 조심해야 한다. 면역력이 떨어져 몸이 허약한 상태인 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지나치다. 왁자지껄 한창이어야 할 재래시장은 파리만 날리고 바글바글하던 대형마트도 한산하다. 다들 집안과 사무실에만 박혀 있고 지갑은 꽁꽁 닫았다. 몸이 아파도 병원을 찾지 않는다. 혹시라도 메르스가 내 건강을 해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사이 대한민국이란 신체는 죽어가고 있는 꼴이다. 독감 수준의 경계심이 필요한 메르스를 중세기 페스트처럼 인식하게 만든 건 누구인가. 물론 원인 제공은 정부당국이 했다. 안일한 판단으로 초동대응에 실패한 정부당국과 병원, 여전한 행정적 미숙함이 공포를 부채질했다.

전문가는 어디가고 변호사와 정치꾼들이 나와 메르스를 떠드는 기막힌 방송 

그러나 메르스 공포바이러스를 확산시키는데 단연 1등 역할을 한 건 종편채널이었다. 하루 종일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메르스는 무섭다’를 틀어대며 마치 주문(呪文)을 걸듯 국민의 정신과 영혼을 갉아먹었다. 이슈를 가리지 않고 마구자비 출연하는 패널들은 이 채널 저 채널 가리지도 않고 나와 본인이 잘 알지도 못하는 메르스에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댔다. 메르스 초기 전문가가 나와 얘기해도 조심스러운 바이러스 유행에 대해 함부로 재단하고 거리낌 없이 지껄여댔다. 대체 정치평론가와 변호사들이 메르스에 대해 뭘 안다고 떠드나. 종편이 메르스를 어떻게 떠들어 댔는지는 조금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종편은 이슈만 생겼다 하면 그 핑계로 특보와 시사프로그램에 비전문가 패널들을 모아 불확실한 이야기, 주관적 판단, 미신적 이야기를 쏟아냈다. 일부 세력이 괴담과 유언비어를 유포한다고 비난하지만 종편이야말로 유언비어나 괴담 생산의 소스를 제공하는 진원지나 다름이 없었다. 

TV조선 5월 31일 뉴스특보에서 사회자인 윤모 기자는 이렇게 떠든다. “지금 세계는 균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역시 메르스의 확산과 미군의 탄저균 표본실험으로 국민들의 불안감과 공포가 커지고 있는데요. 패널들과 자세한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이렇게 멘트를 친 후 한 패널에게 윤모 기자는 패널에 이렇게 묻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를 꼽으라면 북한 핵무기보다 메르스를 꼽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메르스 확진환자가 14명으로 늘어났고, 전 세계에서 4번째로 감염환자가 많은 나라가 됐는데 민영삼 원장님 메르스 사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날 이 방송에서 떠든 소주제는 ‘메르스 한국에서 빠르게 확산 어떻게 보나’ ‘메르스 환자 확산 보건당국 대응 적절한가’ ‘불안감 키우는 메르스 괴담 확산 위험성은’ 등이었다. 이날 패널들은 민영삼, 이두아, 강훈식, 팀 알퍼 였다. 한국에서 메르스가 빠르게 확산되는 이유를 정치평론가에 물어서 뭘 어쩌자는 건가. 기막힌 일이다.

물 엎질러진 마당에 이제와 나라 걱정하는 종편의 블랙코미디

장성민의 시사탱크, 정치옥타곤, 신통방통 등등 프로그램이 메르스를 다루는 수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에야 의학전문가들이 자주 출연하는 것 같지만 메르스를 놓고 여전히 정치평론가 변호사, 문화평론가라는 사람들이 떠들어댄다. 이웃동네 채널A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6월 7일자 선데이뉴스쇼라는 프로그램은 이렇게 시작한다. “경기도에서 시작된 메르스 확진 환자 발생지역이 서울에 이어 이번 주말 영호남까지 확산되면서 대한민국 전역이 메르스 공포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외신에서는 ‘메르스 공황’ 사태다. 심지어 ‘광란’이란 표현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메르스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패널은 설모 중앙대 약대 교수, 박모 식품의약 칼럼니스트, 황모 평론가와 김모 변호사였다. 변호사와 정치평론가가 어김없이 등장해 메르스에 이러쿵저러쿵 온갖 것들을 떠들어댔다. 외신이 메르스 공황사태, 광란이라 부르는 이유를 채널A는 정말 모를까.

이언경의 직언직설, 쾌도난마, 뉴스특급 등등 온갖 시사프로그램과 뉴스에 정치인, 평론가, 전현직 언론인과 변호사 등등 온갖 메르스 비전문가들이 나와 메르스 확산이 어떻고 감염이 어떻고 전이가 어떻고, 그러니 정부가 ‘이래서 잘못했고’를 서로 떠든다. 이런 방송을 시청자들은 다큐로 봐야하나 드라마로 봐야 하나 아니면 코미디로 봐야하나. 정부의 메르스 부실대응 비판은 당연하다. 하지만 시청자와 국민은 전문가들이 주는 정보와 근거를 가지고 판단하고 비판할 권리가 있다. 종편은 메르스 초기부터 정확한 사실과 의학적 정보를 전달하기는커녕 이처럼 온갖 비전문가들을 동원해 공포심과 불안감만 키웠다. 메르스 사태 초반부터 중반 그리고 현재까지 여전히 공포마케팅에만 눈이 팔렸던 종편은 이제와 경제 타격, 반한 감정, 외국의 비웃음을 진지하게 걱정한다. 도대체 자신들이 한 짓을 알고나 떠드는 것인지 어이가 없다. 김무성 대표는 사태가 진정되면 메르스를 키운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시청률에 눈이 멀어 메르스 장사한 종편채널이 메르스를 괴물로 키운 책임은 대체 어떻게 물어야 하나.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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