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칼럼] 민주노총 산별 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지난 달 ‘공영방송사장바로뽑자 특별위원회’(공사바특위)란 걸 만들었다. 이유는 오는 8월부터 줄줄이 예정돼 있는 공영방송 사장 이사 교체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언론노조가 사전에 바람을 잡아 자신들에 유리하도록 대외 환경을 컨트롤해보겠다는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공사바 특위 활동 내용은 이렇다. △‘공영언론 사장 제대로 뽑자’ 캠페인 △언론 바로 세우기 지식인 선언 △공영언론 사장 선임제도 개선 학계 선언 △참 언론 살리기 국민 모임 조직 △법 개정 및 제도 정상화를 위한 대국회 활동 등. 이 중 핵심은 공영방송 사장 선임구조 변경이다. 다수결로 사장을 뽑던 것을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 가결로 사장을 선임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여당 추천 이사들이 아무리 똘똘 뭉쳐도 사장 한 명 마음대로 임명할 수 없게 된다. 야당 측 이사 일부가 반드시 동의해줘야만 하기 때문이다.

특별다수제는 야당이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는 제도

여야가 모두 합의한 사장이 공영방송에 임명된다는 명분 때문에 특별다수제는 얼핏 바람직한 제도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런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 늘 하늘과 땅 차이의 괴리감이 있듯 특별다수제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노조가 원하는 특별다수제는 오히려 방송산업 뿐 아니라 언론생태계마저 파괴할 게 불 보듯 훤한 제도다. 간단하게 국회선진화법을 생각해보면 특별다수제라는 게 얼마나 허황된 얘기인지 안다. 민주주의 원칙인 다수결이 무력화되고 야당의 여당 발목잡기, 정략적 몽니의 수단으로 전락한 선진화법이 국회를 얼마나 병들게 했는지 국회 모습을 보면 알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번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하나 때문에 숱한 민생법안이 볼모로 잡힌 현실, 야당이 온갖 것들을 끌고 들어와 연계시킬 경우 여당은 법안 하나 통과시키자고 만신창이가 돼 너덜거릴 정도로 질질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는 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야당의 허락 없이는 법안 하나도 통과 못시키는 국회선전화법과 같은 것이 바로 언론노조가 주장하는 공영방송 사장 선임을 위한 특별다수제다.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사장을 선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인데, 여야가 7대 4로 구성된 KBS 이사회에서 사장을 추천하려면 반드시 야당 측 이사 일부가 찬성해줘야 가능하다. 야당 측 이사가 특정 인물을 반대할 경우 정부여당은 어떤 인물도 사장으로 선임할 수 없다. 사실상 야당의 윤허가 떨어져야 사장 임명이 가능한 제도라는 얘기다. 특별다수제로 사장을 임명한다면 사장 공백 장기화 사태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야당의 전략적 반대에 부딪히면 국정이나 여론이 부담스러운 정부여당은 결과적으로 야당의 구미에 맞는 사장 후보를 추천하게끔 될 수밖에 없다. 여야가 대치하면서 공영방송을 제대로 이끌 수 있는 능력 있는 인물이 아닌 무색무취 기회주의자가 사장자리에 앉는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국회선진화법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별다수제가 부른 공영방송 사장 장기 공백 사태는 필연적으로 방송산업계의 타격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한류가 시들하면서 차이나 머니의 위력이 기세를 떨치는데 우리가 공영방송 사장 임명 문제로 싸움이나 하고 있을 때 미디어산업 주도권은 중국과 해외로 넘어가고 말 것이다. 또 시청자 국민의 알권리와 볼권리도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야당의 발목잡기로 사장 임명이 절실한 여당이 야당이 원하는 다른 것을 들어주는 야합이 일어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언론노조의 입김을 받는 야당을 통해 공영방송사는 그야말로 노조의 입김, 노조의 막강한 힘으로 굴러가는 노영방송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별다수제는 노조가 원하는 사장이 임명될 수 있는 방법으로 작동하고 언론노조 기득권과 이념적 편향성으로 인한 적폐는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쌓여만 가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언론노조가 입만 열만 특별다수제를 떠드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정부여당이 언론문제에 무관심하고 무지하더라도 언론노조가 주장하는 특별다수제가 왜 문제가 되는지는 알 것이다. 특별다수제가 아무리 명분이 뛰어나도 우리나라와 같이 정치인들의 자질이 부족하고 역사적으로 사생결단식 적대정치를 해온 우리나라에서는 해외처럼 특별다수제가 올바른 결과를 낳을 수가 없다. 특별다수제는 이상적 제도가 아니라 방송과 언론을 말아먹을 고약한 제도에 불과하다. 국회선진화법이 소수당의 횡포를 보장하는 악법으로 전락해 국회를 마비시켰듯 특별다수제로 사장을 뽑는 것은 공영방송사를 마비시키고 미디어산업과 언론의 기능을 마비시켜 국민에게 피해만 줄 뿐이다. 언론노조가 일찌감치 이 특별다수제를 관철시키기 위해 기구를 만들고 여론작업을 시작했다. 여론의 관심을 환기시켜 그 세를 업고 사장 임명을 위한 특별다수제 외 사장추천위원회, 노사동수 편서위원회 설치 의무화 등을 넣는 법개정을 시도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 모든 제도들은 정치·이념적 편향성을 벗지 못하는 언론노조의 힘을 키워주고 기득권을 강화시켜줄 뿐이다. 국회선진화법 꼼수를 쓰다 자기발목을 찍었던 정부여당이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하지 않기 바란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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