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칼럼] 여당 대표 앞에서 “제발 나라 생각좀 하라”며 작심하고 퍼부은 노무현 대통령의 아들은 자신이 ‘이슈메이커’가 될 줄 몰랐을까.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그가 김무성 대표에게 한 비난 속에 답이 있다.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전직 대통령이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 피 토하듯 대화록을 읽은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려운 발걸음을 했다. 국가 기밀을 읊어대고 아무 말 없이 언론에 불쑥 나타났다” “혹시 내년 총선에는 '노무현 타령', '종북 타령'을 안 하려나...” “제발 나라 생각 좀 하라” “국가 최고 기밀인 정상회담 회의록도 선거용으로 뜯어 뿌리고 권력을 동원해 소수파를 말살하고, 권력만 움켜쥐고 사익을 채우려 하면 엄중한 시기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 미래를 어떻게 하려고 하나. 국체를 소중히 여겨라” 

건호씨의 비난 속엔 그날 그 자리에 상주로서 어울리지 않은 얘기들이 많이 담겼다.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라는 신호탄으로 시작해 NLL 대화록이나 내년 총선과 같은 말들은 보통 때였으면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구 통진당 세력을 의미한 듯한 소수파 말살이니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미래 운운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생뚱맞기 짝이 없다. 그 자리에서 유족이 할 인사말로는 부적절하긴 마찬가지다. 그 와중에 건호씨가 추도식 후에 김 대표에게 인사했다는 문성근의 트위터글은 건호씨가 쏟아낸 말들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충분히 추측하게 만든다. 그 험악한 비난을 쏟아내고도 떠나는 김 대표에게 깎듯이 인사한다? 상식적으로 어색한 일이다. 당사자와 노무현재단은 부인하지만 건호씨의 발언은 ‘기획’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얼 기획한 것일까. 당의 주인이 누구냐를 놓고 친노와 비노가 혈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노무현 아들의 입을 빌어 “뭉쳐라”를 외쳤다는 건 무얼 의미하나.

‘노무현 팔지 마라’는 문재인의 노무현 팔이

내분을 수습하고 시선을 외부 공통의 적으로 돌리려는 쪽은 어디인가. 당내 친노패권을 정리하려는 비노인가 아니면 친노패권에 쏠리는 시선이 부담스러운 쪽인가. 문재인 대표는 건호씨의 추도사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봉하마을로 내려가기 전 조선일보의 표현대로라면 “이례적”으로 페이스북을 통해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제발 분열의 수단으로 삼지 말아달라. 더 이상 고인을 욕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당 안에서만큼은 더 이상 친노·비노로 나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누구도 노무현 이름을 정치 마케팅으로 팔지 말아야 한다' 고 썼단다. 모두를 뜨악하게 한 추도식이 끝난 후엔 “정권 교체를 하지 못한 것도 통탄스러운데 다시 노무현 이름을 앞에 두고 분열하고 갈등하는 모습들이 부끄럽다” “아직도 저희는 노 전 대통령이 영면하도록 해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분열과 갈등의 언어가 사라지도록 제가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고 말했다.

건호씨 추도사에 대해선 침묵하고 ‘노무현을 팔지 마라’만 계속 강조하는 문재인 대표의 글도 쉽게 이해되지 않긴 마찬가지다. 여러 정황상 본인이 작성한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건호씨의 추도사, 건호씨의 추도사로 일어난 그 난리통에 아랑곳없이 오직 비노계를 향한 듯한 문재인의 글, 이건 도대체 무얼 의미하나. 내막이야 친노만이 알겠지만, 결과적으로 노무현을 제대로 마케팅하고 판 쪽은 문재인 대표다. 건호씨 추도사로 대오가 흐트러지던 친노를 결집시켰고 들끓던 비노의 입을 닫게 했으며 자신에게 향한 리더십 논란을 잠재웠다. 김무성 대표에게 던진 건호씨 직격탄의 최대 수혜자는 문재인 대표였다. 그러고도 “노무현 이름 앞에서 부끄럽다”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문 대표에게 정말로 묻고 싶다. 진심으로 노무현 이름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지. 정적들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를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노 전 대통령의 정신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지 말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당신의 친구 노무현의 유언 앞에서 진심으로 부끄럽지 않은지를 말이다. 

노건호씨와 문재인, 친노패권주의자들이 새겨야 할 진짜 노무현 정신

필자는 건호씨에게도 묻고 싶다. 내막이야 어떻든 그런 독한 발언이 아버지 추도식에서 아들이 할 말이라고 생각하나. 아버지 추도식에서 친노라는 사람들이 여당 대표와 비노를 향해 물병을 던지고 욕설을 하는 그런 추한 장면이 나오지 않도록 단속을 해도 모자랄 판에 기름을 붓는 행위가 옳았다고 생각하나. 노무현이란 이름을 특정한 사람들이 독점하고 마케팅에 이용하고 심심하면 팔아대는 꼴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인가.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본인과 가족들로 인해 아버지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뼈아픈 사실은 잊은 건가.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또 국민을 생각해서도 건호씨는 그런 추도사를 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아버지 노무현의 이름이 일부 친노라는 패거리들에 의해 그런 식으로 더럽혀지는 걸 건호씨야말로 앞장서서 반대해야 당연한 게 아닌가. 자중자애하고 부디 돌아가신 아버지의 진짜 뜻이 무엇인지 헤아려보길 바란다.

건호씨가 NLL 대화록을 운운하며 김무성 대표를 비난했지만 사실 그 비난은 문재인 대표에게로 향했어야 맞다. 대화록 원본 공개를 주장하고 노 전 대통령을 궁지에 몬 당사자가 문 대표였기 때문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노무현을 지키지 못한 건 문재인이었다. 그런 사람이 노무현으로 이득만 챙기는 현실이란 어떤 세상인가. 김무성 대표는 건호씨 추도사 파문에서도 당 대표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상대가 비난을 하든 말든 물세례를 맞든 욕설을 듣던 여당 대표로서 할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건호씨 추도사를 묵묵히 듣고 받아넘겨 논평하지 않는 태도도 바람직하다. 그것이 정치적 의도든 인간적 의도든 간에 또 김무성 대표이든 인간 김무성이든 그래야 옳다. 역설적이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에서 ‘노무현 정신’대로 추모한 이는 친노나 문재인이 아니었다. 노무현 정신이란 것이 본래 친노패권주의나 국민을 두쪽으로 가르는 분열이 아니라 본디 ‘다함께’ 정신이라면, 김무성 대표가 오히려 그에 가까웠다. 야당에서 그런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비노라 불리는 이들도 용기를 내 위기의 시대에 진정한 노무현 정신을 발휘해 주기 바란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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