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연 변호사] <해피이벤트>는 ‘엄마가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한 여성이 임신과 출산, 육아의 경험 등을 통해서 엄마로 성장하는 과정을 감정의 과잉 없이 차분하게 응시한다. 누구나 겪을 법한 일상적인 사건들로 층층이 쌓아올린 영화가 주는 여운은 깊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즈음 ‘나의 엄마는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는 ‘나의 엄마에게도 엄마가 아니던 젊은 시절이 있었고, 젖먹이 육아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자식들은 엄마의 자유로움과 희생을 양분 삼아 자라나는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바바라는 젊고 생기발랄하다. 그녀는 철학 교수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연인 니콜라스와도 달콤한 사랑을 나눈다. 그런데 아기 레아가 태어나면서 그녀 삶의 아름답던 균형이 깨어지고 만다. 아기란 존재는 균형 있는 삶과는 거리가 멀고, 양육자에 대한 최소한의 매너도 당연히 없다. 모든 아기는 엄마가 무얼 하는 중이든 간에 일단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망설임 없이 울어버리는 거친 품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 덕분으로 만 0세의 레아는 아빠 니콜라스를 침대에서 소파로 밀어내고 엄마 바바라 옆자리를 차지했고 바바라가 논문 작성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조교수 임용 탈락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바바라에 의하면 “딸은 내 삶을 뒤엎어놨고 궁지에 밀어 넣었으며 내 한계를 초월하게 했고 날 맹목적으로 만든” 존재이다. 바바라는 자신의 삶을 잃어가고 있다는 상실감을 느끼지만 니콜라스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하고, 이들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져간다. 영화의 결말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쓰지 않겠다.

 

육아는 ‘내 새끼를 키우는 일’ 아닌 사회유지·발전시키는 일

호락호락하지 않은 육아를 향해 온몸을 부딪치는 바바라의 상황은 유별난 것이 아니다. 많은 보통의 여성(때로는 남성)들이 바바라처럼 사회 경력, 자아실현, 시간, 외모 등에서 손해를 감수하며 열심히 아이를 키운다. 육아의 종료일은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날, 즉 우리 사회의 주축이 되는 날이다. 단순하게 보면 육아는 내 새끼를 키우는 일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결국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출산과 육아는 응원 받아야 하고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책임져야 한다.

출산과 육아를 지지하는 지원책으로 여성의 경력단절 극복, 어린이집 확충 등 여러 방안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육아휴직 후 연차 산정 관련 현행 조항을 손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연차일수는 전년도 근무 일수에 비례해 계산하게 되어 있는데, 이때 출산휴가는 근무 일수에 포함하도록 규정되어있는 데 반해 육아휴직은 그렇지 않다. 즉 1년 간 육아휴직을 한 자는 해당 기간 동안 근무를 하지 않은 셈이 되어 복직한 다음년도에 연차가 거의 없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워킹맘들은 아이가 아플 때나 어린이집에 행사가 있을 때 등 연차가 꼭 필요할 때가 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는 측면에서 연차 계산 시 육아휴직도 근무 일수에 포함시키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육아휴직 후 연차산정 현행 불합리 조항 과감히 고치자

설령 연차가 근무에 대한 포상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의견이 바람직하지 않다손 치더라도, 현행 법령은 문제가 있다. 육아휴직의 기산점이 언제인가에 따라서 실질적으로 사용 가능한 연차에 적잖은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령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장화와 홍련이 있었다. 둘은 회사에서 절친으로 같은 해에 임신까지 하였다. 그들은 세 살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법륜스님의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돌 때까지만이라도 직접 키워보자며 출산휴가에 붙여서 바로 육아휴직을 쓰기로 했다. 먼저 장화가 2013년 3월에 출산하러 들어가서 3개월 육아휴직을 쓰고 그해 6월부터 1년 동안 육아휴직을 썼다. 장화가 2014년 6월에 복직하니 연차가 5개월(2013년 1월~5월분) 근무 일수에 비례해 6일이 되었다. 그녀는 아이가 아플 때마다 연차를 유용하게 썼다. 2015년이 되어 연차를 확인해 보니 7개월(2014년 6월~12월) 근무 일수에 비례해 연차가 9일이 되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장화에 비어 임신이 늦었던 홍련은 2013년 9월에 출산휴가를 들어가서 2013년 12월부터 1년 간 육아휴직을 쓰고 2014년 12월에 복직했다. 복직하고 보니, 2014년은 한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연차가 11개월(2013년 1월~11월)에 비례해 13일이나 되었다. 복직 후 괜히 눈치가 보여 13일의 연차는 하나도 쓰지 못했다. 2015년이 되어 연차를 확인해보니, 2014년에는 12월만 근무를 해서 연차가 하루밖에 되지 않았다. 아이가 아플 때는 어린이집도 보내지를 못하는데, 당장 그럴 땐 팀장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홍련은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와 같이 장화와 홍련은 몇 월에 육아휴직을 시작했는지에 따라 사정이 매우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연차가 1년 단위로 생성되고 소멸되기 때문인데, 위와 같은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육아휴직을 사용한 경우 예외적으로 연차가 소멸하는 기간을 연장하는 입법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워킹맘들의 ‘해피이벤트’를 위하여

육아휴직 후 연차산정 문제는 현실적으로 육아휴직 사용이 힘든 직장이 많다는 점에서 시급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또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중대한 사안도 아닌 듯하다. 그러나 어떤 워킹맘들의 소소한 일상과 그때그때의 감정들에는 분명 영향이 있는 문제이면서, 정작 당사자들은 육아휴직을 한 게 눈치가 보여 쉽게 건의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직장 분위기가 육아휴직 사용에 관대해져야 한다는 것에는 점점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으나, 그 이후의 이러한 워킹맘들의 여건에 대해서는 아직 관심도가 낮다.

그러나 시냇물이 모여 바다로 흐르듯, 일상의 소소한 감정들과 경험들이 삶이라는 거대한 여정을 만든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엄마의 일상들을 좀 더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작은 배려들에도 역시 사회의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관심들이 이 세상의 엄마들을, 그리고 그 아이들을, 그리고 그 아이들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부디 모든 이들의 출산과 육아의 일상들이 ‘해피이벤트’가 되기를!

 

김주연 변호사(사법연수원 41기) | lawand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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