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연 기자] 김정은이 북한 군 서열 2위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재판도 없이 체포 2~3일만에 처형했다고 국가정보원이 1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했다. 이 같은 보고가 맞는다면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이후 17개월만에 또 다시 최고위 인사에 대한 잔인한 피의 숙청이 이뤄진 것이다.

국정원에 따르면, 현영철은 지난달 24~25일 열린 군 일꾼대회에서 조는 모습이 적발됐고, 김정은의 지시에 대꾸를 하거나 이행하지 않았으며, 김정은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일 등이 불경(不敬)·불충으로 몰렸다. 현은 체포된 지 사흘 만에 평양 강건군관학교에서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사총으로 처형됐다고 한다. 또 김정은의 공개 행사 때마다 밀착 수행해 온 마원춘 국방위 설계국장,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등 핵심 측근들도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김정은의 북한이 ‘공포정치’로 굴러가는 심각한 체제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공포정치로 이어가는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는 급변사태가 곧 올 지도 모른다는 일각의 예상에 무게를 싣는다.

언론 역시 경각심을 갖고 우리 정부가 북한 체제의 내부 불안요인에 주목하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진보좌파 언론들은 거듭되는 김정은의 잔혹한 통치를 비판하기 시작한 모양새다. 하지만 보수우파 신문들이 김정은이 보여주는 북한 체제의 불안성에 더 주목한데 반해 진보좌파 신문들은 아직은 김정은 공포정치 현상 비판에 머문 수준이었다.

조선일보 “김정은 동태를 샅샅이 파악하고 북 사회 내부 변화조짐 놓치지 말아야”

먼저 조선일보는 14일자 사설 <김정은 狂氣의 결말에 대비해야 한다>를 통해 “인민무력부장은 우리로 치면 국방장관이다. 한 나라의 국방장관이 공개 석상에서 잠시 졸았고, 권력자에게 말대꾸를 했다는 이유로 공개 처형되는 것은 북한 말고는 세계 어디에서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정은이 집권 3년 5개월 동안 총살한 노동당과 정부, 군 간부가 벌써 7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국정원은 공개 처형 방식에 대해 "처형 대상자의 동료, 부하는 물론 그 가족까지 참관시킨다"며 "화염 방사기로 시신의 흔적을 없애기도 한다"고 전했다.”면서 “참관인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되며 사형 집행 후에는 소감문을 써서 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의 야만성과 잔인함은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김정은이 이런 광기(狂氣) 가득한 살인극을 벌이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권력이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김정은의 광기를 보며 북이 내일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그 말뜻이 새삼 와 닿는다. 김의 동태를 샅샅이 파악하는 것과 함께 북 사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조짐도 놓치지 않고 대비해야 한다.”고 썼다.

동아일보 “국정원, 북한 예측 불가능사태 대비하고 있나” 중앙일보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동아일보는 우리 정부가 예측할 수 없는 김정은의 공포정치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를 점검했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 <정부, 현영철 끔찍하게 죽인 김정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나>를 통해 “현영철이 군 간부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1분당 12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고사총으로 총살된 데는 공포를 극대화해 군을 다잡으려는 김정은의 의도가 반영됐을 것”이라며 “북한 엘리트들은 지금은 숨을 죽이겠지만 내부에서 반발이 생기고 충성심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정은 체제가 당장은 공고해 보여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런 만큼 북한 내부를 정확히 들여다보고 정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정원은 지난달 29일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했다가 다음 날 러시아가 방문하지 않는다고 밝혀 망신당했다. 국정원이 최상의 정보 역량을 갖고 북한의 예측 불가능한 사태까지 대비하고 있는지 불안하다.”고 지적했다. 국정원 등 우리 정부 당국의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강조인 셈이다.

중앙일보 역시 이날 사설 <김정은 공포정치의 끝은 어디인가>를 통해 “김 위원장은 2013년 12월 북한 체제의 2인자이자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국가전복 음모죄로 전격 처형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며 “그로부터 1년5개월 만에 군 서열 2위인 현직 인민무력부장을 문명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잔인하게 처형한 게 사실이라면 ‘피의 공포’로 유지되는 것이 김정은 체제의 맨 얼굴임을 만천하에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꼴”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공포정치는 독재자의 전형적인 통치 수법이다. 정통성이 취약하거나 권력 기반이 확고하지 않을수록 충격과 공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며 “가차없는 처벌에 의존하는 통치 행태는 여전히 체제가 불안하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조선, 동아와 동일하게 분석한 것이다.

그러면서 “지난 3여 년간 북한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을 종합해 보면 김 위원장이 공포정치를 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피는 피를 부르기 마련이다. 공포정치의 끝은 자멸(自滅)임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바다. 김정은 체제의 앞날을 속단하긴 이르지만 비상한 경각심을 갖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북 ‘야만사회’에 경악한 경향신문, 김정은이 깨닫기 바란다는 순진한(?) 한겨레신문

진보좌파 언론 가운데 비교적 북한 체제를 강하게 비판해온 경향신문도 이날 사설로 김정은의 현영택 처형을 빼놓지 않았다. 경향신문은 <북한을 야만사회로 만드는 김정은 공포정치>를 통해 국정원이 국회에 보고한 내용들을 언급하면서 현영택을 포함해 김정은 체제 이후 70여명이 잔인하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처형됐음을 지적하면서 “이런 체제가 동시대에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도 한반도 북쪽에 있다는 것만큼 끔찍한 일도 없을 것”이라며 “이런 북한도 문명사회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어 “김 제1비서는 자신의 지도력 부족을 숙청과 처형의 공포정치가 보완해 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경험과 능력이 모자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적절한 조언과 충고”라며 “건설적 의견을 모으고 이견을 경청하며 북한을 번영시킬 전략을 짜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그의 권위도 살아나고, 리더십의 정통성도 획득할 수 있다. 그걸 공포가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김 제1비서는 한반도 북쪽을 야만사회로 몰아가는 일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겨레신문 역시 이례적으로 강한 제목의 사설을 내보냈다. <김정은의 반인권적 ‘공포정치’> 제하의 사설에서 한겨레는 “계속되는 공포정치는 결국 심각한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김 위원장은 깨닫기 바란다. 국제적 비판과 고립을 피할 수 없음은 물론”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어떤 경우든 김정은 식의 공포정치는 반인권적이고 반역사적”이라며 “고위 관리에 대한 공포정치는 북한 주민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북한에 필요한 것은 공포정치가 아니라 꾸준한 개혁과 개방”이라며 “체제의 안전은 공포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고 신뢰 수준을 높임으로써 이뤄지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세계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보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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