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 기자]  세월호 1주기를 기념해 14일 방송된 KBS 1TV ‘시사기획 창’ ‘세월호 1년, 우리는 달라졌나’ 편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제작된 시사프로그램 중에 상대적으로 꽤나 돋보였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시각, 태도, 과연 이런 참사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깨닫고 반성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성찰을 다뤄 지난 토요일 방송된 KBS ‘추적60분’과도 비교됐다.

‘추적60’분이 실종자 가족들, 남은 자들의 아픔과 눈물을 다루는데서 그쳤다면 ‘시사기획 창’은 눈물을 딛고 냉정을 찾아 과연 대한민국 국민에게 세월호 참사가 어떤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지를 되짚어보게 하는데 크게 할애하면서 세월호 1주기 추모라는 근본 취지에 다가섰다.

세월호 1주기,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경.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인천발 제주행 연안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며 침몰했다. 이 사고로 295명이 목숨을 잃었고, 9명은 공식적으로 여전히 실종상태다. 그리고 남은 가족과 유가족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언론이 눈물만 보여준다고 국민은 세월호를 잊지 않고 제2의 세월호 참사는 되풀이 되지 않을까? ‘시사기획 창’ 세월호 편의 가치는 “그게 아니다”라는 반성에서 출발한다. 방송 마지막에는 이 프로그램의 제작 취지가 내레이션을 통해 흘러나온다.

“세월호 참사가 지나고 1년이 지났습니다. 우리 사회는 과연 달라졌을까요? 슬픔과 비극의 크기는 참회와 변화의 크기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달라져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 슬픔과 비극을 보여주기 보단 모두의 참회와 변화를 모색한 ‘시사기획 창’ 

‘시사기획 창’ 세월호 편은 ‘잊지 않아야 한다’는 점보다 우리가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방송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세월호 참사를 좀 더 냉정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전문가들로 구성해 설득력을 높였다. 김중구 리스크 관리전문가와, 유범상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등이 등장해 세월호 참사의 책임이 다른 누구아닌 우리들에게 있다는 점을 뼈아프게 지적한다.

브라질에서 온 유학생을 통해 본 우리의 안전의식은 빵점이다. 한국에 온지 3년이 됐지만 파란 신호등이 켜져도 무시하고 지나가는 버스, 승객의 안전보다 빨리 실어 나르는데 급급한 버스운전기사의 모습은 수년이 지나도 외국인의 눈에는 아찔하고도 위험한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의 모습이다.

먹고 살기 위해 신호를 위반한 채 차들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퀵서비스 기사, 목숨을 내놓고 달리면서도 담담하게 “동료들이 사고 나서 죽은 사람이 많아요” 털어 놓는 모습에서 빨리빨리를 외치며 성장을 위해 달려온 한국사회의 서글픈 모습도 묻어 나온다.

재미언론인 조광동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너무 빨리빨리만 가다 보면 결국은 잃어버리는 것이 생긴다는 것이죠. 빨리빨리는 엄청난 동력으로 그걸 건설적으로 쓰면 긍정적이지만, 편파적이고 모함하고 분열되고 격해지고 극단주의가 되고 그러한 부작용으로 올 수 있어서 거기에 제동을 거는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 빨리빨리 문화에 대한 저의 아쉬움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극소수 잘못이나 부정부패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일탈이 만든 결과” 

세월호 참사의 진짜 원인을 ‘시사기획 창’은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극소수 잘못이나 부정부패로 일어난 게 아니다. 눈앞의 이익을 쫓아 기본적 법도 지키지 않는 우리 사회 오래된 관행과 악덕이 쌓여 만든 사고였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이성은 없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최악의 범죄보다 더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지만 본질적으로 평소에 문제 삼지 않았던 평소의 일탈들이 쌓여 만든 결과였습니다.”

이 같은 제작진의 문제의식은 방송 곳곳에서 잘 드러났다. “그 재난들은 어마어마한 경고들을 해왔거든요. 세월호에서는 왜 그런 현상들이 벌어졌는가 생각했을 때 선장과 선원들의 개인적인 자질을 문제 삼을 건가 아니면 제도적인 세팅들 속에 들어갔을 때 비슷하게 행동할 것이냐 하는 고민을 저는 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유범상 교수)”

방송은 평범한 시민 김재홍씨를 등장시켜 그의 출근과 퇴근길 운전 모습도 비춰준다. 도로에서 너나 할 것 없이 틈만 생기면 끼어드는 얌체 운전 행태는 우리의 시민의식 수준을 그대로 드러낸다. 김재홍씨는 이렇게 말한다. “시민의식 수준에 맞춰 버스 운전사도 그 수준에 맞는 운전을 하는 거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사회 전반에 걸친 미성숙한 문화가 곪아서 터져 나온 게 세월호 사고라고 생각을 해요.”

“수많은 반칙이 이 사회에서 자행되고 있죠. 그런데 내가 반칙했다고 하는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반칙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이걸 했다 그리고 나는 따랐을 뿐이라고 얘기 합니다. 그리고 그 반칙이 정착화되기 시작합니다. 반칙을 저지른 사람은 나와 같은 종류의 반칙 좀 더 나가면 나보다 더 큰 반칙을 저질렀지만 처벌받지 않은 수많은 자기가 봤던 사람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될 겁니다. 그런 사람들의 숫자가 많이 떠올려진다면 이건 누구의 책임일까요. 국가의 책임입니다. 사회의 책임이죠(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이 국가와 사회에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지적은 참사의 책임을 오직 정부와 대통령의 무릎을 꿇리는 것에 최종 목표를 둔 일각의 목소리 큰 주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지적이다.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국민 개개인을 양산하고 그런 개인이 모여 세월호 참사를 낳는 사회는 결국 법과 원칙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 14일 오후 10시에 방송된 KBS ‘시사기획 창’ ‘세월호 1년, 우리는 달라졌나’

“후진국은 큰 문제를 책임자 처벌로 몰아가고 상대 정파에 대한 공격의 소재로 바꿔버려” 

‘시사기획 창’은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책임자를 처벌해도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시스템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고 그 시스템의 문제를 정치대결로 가져가는 사회적 악습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선진국은 작은 문제로부터 큰 걸 배우는 나라인것 같아요. 작은 문제도 파헤치면 그 위에 여러 시스템이 있잖습니까. 그 안에는 철학, 가치, 제도 정책의 문제든 예산 배정의 문제든 교육 훈련의 문제들이 연결되어 있어서 작은 문제로부터 큰 것들을 배우고 큰걸 고치는 나라가 선진국이죠. 근데 후진국은 큰 문제를 책임자 처벌 문제로 몰아갑니다. 수많은 부조리와 악덕들이 결집돼서 거대한 문제가 터졌는데 이 문제에 대해 결국 책임자 처벌문제로 몰아가고 그 다음에 상대의 정파에 대한 공격의 소재로 다 바꿔버립니다. 외환위기 때가 그랬습니다. 세월호 때도 그러고 있어요.(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사회 시스템, 국민책임 지적한 ‘시사기획 창’의 관성적인 정부 비판은 '옥의 티'

세월호 참사에 대해 냉정한 시각으로 국민 전체의 책임을 묻는 ‘시사기획 창’의 미덕은 빛났지만, 그렇다고 옥의 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지나친 경쟁사회 탓으로 돌린 건 설득력이 부족하다. 경쟁사회가 타인에 대한 부족한 배려심, 이기주의를 낳고 그런 분위기가 세월호 참사와도 관련이 있다고 굳이 연결 지을 순 있겠지만, 너무나 막연하고 광범위한 문제제기였다.

또한 세월호 참사의 원인으로 경쟁사회의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학부모들을 등장시켜 아이들이 살벌한 경쟁에서 살고 있다는 모습을 강조하고, 아이를 경쟁사회에서 삭막하게 키우기 싫다는 이유로 이민을 준비한다는 신혼부부를 등장시킨 것도 엉뚱한 샛길로 샌 감이 있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참사하는 신혼부부의 주장도 사실이 아닐뿐더러, 이민을 가면 한국사회보다 더 여유롭고 따뜻하게 살 것이라는 막연한 개인적 감상을 세월호 참사와 연결 지을 순 없다. 이런 식의 막연한 원인 분석은 당초 ‘시사기획 창’이 진단하고자 했던 ‘국민 전체의 책임과 반성’ ‘시스템의 문제’를 뒷받침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또한 ‘시사기획 창’ 역시 세월호 참사 관련 언론의 관성적인 ‘정부탓’의 함정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프로그램에는 이런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정부의 대응은 무능했습니다. 승객들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고 재난 컨트롤 타워로서의 역할도 다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실종자들을 단 한명도 구출해 내지 못했고, 국민들은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휩싸여 있어야 했습니다.”

정부의 대처가 미흡했던 건 사실이지만 실종자들을 단 한명도 구출하지 못했다는 건 주관적인 단정일 뿐이다. 정부와 해경은 침몰하는 배에서 최선을 다해 승객들을 구하는 구조작업을 진행했고, 결과적으로 실종자들이 생겼을 뿐이다. 정부가 정확한 판단으로 구조작업을 진행했느냐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결과만을 가지고 비난하는 건 지나치게 쉬운 비판이다.

“사회라는 공동체를 대표하는 게 국민 국가라고 볼 수 있는데 정부죠. 어린 아이들의 고귀한 생명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국가 아닌 국가에서 국민 아닌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이 세월호 참사는 문득 깨닫게 한 것 같습니다.(연세대 김호기 교수)” 와 같은 지극히 감성적인 지적도 ‘시사기획 창’이 의도했던 방송 취지와는 엇나가 보인다.

"세월호를 진짜 잊지 않는 건 눈물 기억 아닌 선진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것"

한편 ‘시사기획 창’은 세월호 참사가 빨리 잊혀지는 원인에 대해서도 잘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는 어떻게 보면 6.25와 외환위기 이후의 최대참사라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근데 문제는 그 이후에 그로부터 우리가 성찰하고 반성하고 제도를 개선하고 관행을 개선하고 개인의 행동을 개선하는 계기가 돼야 하는데 우리가 세월호 참사 이후 완전히 너무나 소모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날밤을 지새면서 그 중요한 성찰과 반성은 같이 수장시켜버린 겁니다. 우리가 세월호도 가라앉았잖아요. 소중한 생명과 함께 마찬가지로 그 뒤에 정말로 소중한 성찰과 반성의 계기 자체도 같이 가라앉아버린 겁니다. 사실은(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시사기획 창’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시사점도 던져줬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는다는 게 무엇일까? 세월호 유가족, 실종자 가족들의 눈물만 그려 정부와 대통령의 잘못만을 부각시키는 게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진정 기억하는 것일까? 그것이 진짜 애도일까?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이에 대해서도 명쾌한 정답을 내놓는다. “세월호 참사를 낳았던 그 원인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짚어보는 토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1주기에 맞춰서 세월호 참사를 낳았던 많은 부조리와 악덕에 대해서 제대로 짚어보질 않았잖아요. 진정한 애도가 그 참사를 낳았던 원인을 제대로 짚어서 깊은 성찰, 반성하는 게 그게 진정한 애도 아닙니까?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것 그 장면들을 수십 수백 번 계속 보면서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게 그게 진정한 애도인가요? 그런 거 아니잖아요. 다시는 그런 어린 새싹들이 어이없이 허망하게 죽어가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 선진적인 제도 정책들을 가진 그리고 선진적인 행동을 하는 그런 나라를 만드는 게 진정한 애도 아닙니까?”

14일 밤 KBS 1TV ‘시사기획 창’ ‘세월호 1년, 우리는 달라졌나’ 편은 일부 문제에도 모처럼 시사프로그램다운 통찰력 있는 시각을 담은, 좋은 평가를 줄만한 방송이었다. 언론이 세월호 참사의 눈물만 짜내는 프로그램만 만든다고 세월호의 비극이 되풀이 되는 걸 막을 순 없다. 이 방송은 언론이 역할을 다하기 위해선 참사 보도를 어떤 관점으로 접근해야할지를 제대로 보여준 사례인 셈이다.

저작권자 © 뉴스파인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