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는 민주화 이후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최근 '연말정산 논란’과 '건강보험료 개선안 백지화’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증세 없이 보편적 복지를 시행하려는 포풀리즘적 정책을 밀어붙이려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조셉 슘페터는 지금은 고전이 된 저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자본주의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서 그 한계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지만, 대중적 민주주의의 해악인 포퓰리즘에 의해서 커다란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자유시장경제의 토대가 대중민주주의라는 상부구조가 안고 있는 포퓰리즘적 모순에 의해서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을 그는 강조했다. 슘페터의 지적처럼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 사회가 보편적 복지를 내세운 민주주의의 포퓰리즘에 의해 민주화 이후 크게 위협받고 있다.

1987년부터 본격적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정착되지 못한채 표류하고 있다. 1987년 한국의 민주화는 권위주의체제 하에서 국가 주도에서 성장한 시민사회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영역으로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권위주의정부 하에서의 경제성장은 두터운 중산층을 만들어냈고 넥타이 부대로 상징되는 이 세력이 정치참여를 요구하면서 1987년부터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그들 사이의 균형을 만들어나가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했다. 정부와 국회를 비롯한 통치세력이 이런 문제의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해결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못함으로써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국가의 경영에 필요한 재원을 시민사회로부터 세금의 형태로 거두어들이는 '자유민주주의적 방식’을 정착시켜나가고 있다. 물론 이와는 전혀 다른 '전체주의적 방식’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방식은 국가가 경제의 영역을 계획경제라는 이름 하에 전부 관장하는 것으로서 과거 소련이나 북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국가들에서는 독자적 시민사회의 영역이 허용되지 않음으로써 근로의욕과 창의력이 발휘되지 않는다. 이러한 '전체주의적 방식’은 역사적으로 실패했음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적 방식’을 채택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방식 하에서도 포퓰리즘과 부패, 비효율성과 무기력 현상이 항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들에 대한 대비책들이 국가를 대표하고 경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마련되지 않으면 안된다. 최근 '연말정산 논란’은 이런 기본적 문제들에 대한 인식과 대책 마련이 매우 부족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 피해자는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근간이 되어야 할 중산층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중산층이 직격탄을 맞음으로써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고 정치 불신이 전사회적으로 퍼지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포퓰리즘이 역효과를 발휘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회는 자유민주주의와 대의제가 “대표없는 과세없다”는 세금과 관련된 정치권력과 시민사회의 갈등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 '연말정산 논란’은 보여주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방식’에서는 국가 운영을 위한 재원이 세금의 형태로 시민사회로부터 조달되고 있고 그 점에서 국가를 대표하고 운영하는 엘리트들은 시민사회의 요구에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전혀 시민사회의 요구와 우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래 국회는 정부의 예산을 면밀하게 심의하여 국민의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예산을 깎는 것을 선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떻게 된 것이지 오히려 국회마저 예산을 더 얹어서 통과시키는 것을 보면 이것은 커다란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포퓰리즘의 병폐를 그대로 보는 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사회의 요구를 국가발전의 관점에서 고려하지 않을 경우 남는 것은 포퓰리즘 뿐이다. 이렇게 될 경우 국가와 시민사회는 균형점을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표류하게 된다. 또한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민주사회에서는 책임의 소재를 찾는 것도 매우 어렵게 되고 만다. 최근 '연말 정산 논란’을 보면 여야 할 것 없이 이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찬성했기 때문에 어느 정당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 생겨나고 있다. 민주화 이후 대의제가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책임정치가 실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는 국민은 당장 선거를 하더라도 어느 정치세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 불분명해지고 만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국가를 대표하고 경영하는 통치세력은 포퓰리즘에서 벗어나서 국가 발전의 관점에서 시민사회의 요구를 수렴하고 국가와 시민사회의 균형점을 회복해나가는 데 지속적인 정치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영호 |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youngho@sungsh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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