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규범인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대의제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이다.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공화국은 사전에서 말하는 것처럼 다수의 사람이 공동으로 함께 화합하여 통치하는 공화제 국가이다. 공화국을 이끌어 가는 다수의 사람은 국민주권원리에 따라 국민에 의하여 선출된 대표자로서 국정을 위임받아 국가를 통치한다. 그렇지만 다수의 대표자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만을 행사하기 때문에, 대의제민주주의는 국민주권원리에 합치되도록 운영되어야 한다.
 
헌법은 제1조 제2항에서 국민이 국가의 주인임을 밝히면서 모든 국가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국민주권원리에 따라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지만 현실적으로 국민이 직접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원리가 자유와 평등을 기치로 한 국민의 자기지배적 정치원리이지만, 역사가 말하듯이 모든 국민이 직접 국정을 운영할 수 없다. 그래서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대표가 국정을 담당하는 대의제민주주의가 채택될 수밖에 없다. 헌법은 제41조에서 국민의 대표로서 국회의원을 선거로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국회를 국민의 대표기관이라고 하는 이유도 국민이 직접 대표를 선출하여 국정의 권한을 위임하였기 때문이다.
 
대의제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민주국가에서 국회의 중요성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헌법은 국회에게 입법권을 부여하여 국가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게 하고 있다. 국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입법권을 가지고 있지만, 헌법을 넘어서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없다. 헌법이 기준으로 정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넘어서 국회의 입법권이 작동될 수는 없다. 그런데 헌법은 국회에게 권한과 책무를 부여하고 있지만, 어떤 방법으로 어느 범위까지 기능하고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 이는 국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자율적으로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1948년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받아 헌법을 제정하면서 소임을 시작한 국회는 약 70년의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부침을 거듭하였다. 국회는 성숙되지 못한 민주주의 속에서 이전투구의 혼란도 경험하였고 거수기역할도 하였으며, 소위 통법부란 오명을 넘어서 민주화의 시대에 걸 맞는 입법부로서 위상을 찾기 위하여 상당한 노력도 하였다. 그렇지만 국회는 대부분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정당의 잘못된 이익추구 속에서, 국정을 논하기 위한 대화와 토론의 장보다는 다툼과 폭력의 장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빈번하게 보여주었다. 국회는 입법권을 행사하는 헌법기관으로서 국가권력의 한 축임에도 본연의 책무를 망각하고 정당의 이익을 위하여 스스로 폭력국회가 되기도 하고, 동료의원을 위하여 스스로 방탄국회로 변하기도 하였다.
 
선출된 국회의원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국정을 담당한다고 하여도,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본연의 책무를 수행해야 하는 공무원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국회는 국민의 의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정치적 이익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국민의 대표기관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확산되고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자, 국민의 눈치를 보면서 국회는 소위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개정 국회법에는 터무니없는 내용들이 들어가면서 스스로 손발을 묶어버리는 어이없는 일을 만들었다. 국회는 힘들여서 하는 일도 없는 국회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소위 식물국회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그리고 이제 와서 국회는 개정 국회법의 위헌성을 언급하고 있다.
 
국회의 위기는 의회정치의 위기이면서 정당의 위기이기도 하고 대의제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이 문제라고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보면 오히려 헌법에 의하여 부여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거나 당리당략으로만 행사하는 국회가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헌법 제54조 제2항에 따라 예산안을 십 수 년 만에 법정시한 내에 처리한 것을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는 국회의 모습은 우리나라 국회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다. 국가의 입법중심기관인 국회가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그동안 이 조차 지키지 못하였다는 것은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인 것이다.
 
대의기관인 국회가 헌법과 법률을 도외시하고 제대로 주어진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에 일은 아니다. 헌법에 규정된 국회의원의 특권을 남용하며 추한 모습을 보인 것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국회선진화법을 만든다고 국회가 선진화되는 것도 아니다. 국회는 헌법기관이지만, 그 구성원인 국회의원들도 각 자가 헌법기관이다. 국회의 권한은 권력도 권리도 아니고,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봉사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에 불과하다.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부담스러운 자리에 간다는 것인지, 막중한 책임에 개인의 삶이 희생되어야 하는 자리라는 것인지, 이에 대한 자각이 없는 한 그 자리는 즐기는 안락한 회전의자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국회는 그들만의 공간일 뿐이다.
 
국회는 헌법의 이념을 실현하는 국가의 장이 되어야 한다. 국회는 국민의 의사를 구체화하여 법으로 승화시키는 진정한 입법기관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국회는 특권에 안주하고 미사여구로 당리당략을 추구하며 자신의 이익에 몰두하는 구태를 버려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시한을 정하여 개정하라고 결정한 집시법 조항 하나 다루지 못하는 국회는 입법기관이 아니다. 헌법 제53조 제4하이 규정한 법률안 재의정족수를 넘어서는 국회법을 개정하고, 이를 방치하는 국회는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다.
 
국회는 이미 드러난 문제 법률들을 하나씩 정비하는 입법정비작업부터 시작하여 입법기능을 정상화해야 한다. 그리고 국회의원에게 집중된 인력을 정비하고, 국회입법기능의 강화를 위한 인력을 확충하면서 조직을 입법기능에 집중해야 한다. 국민은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투명하고 공정한 국회를 원한다. 헌법이 요구하는 국익우선의 의무와 청렴의무를 위한 법제를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 국민은 일 년 내내 일하는 국회를 원한다. 국회는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의 옆에 있는 국민의 대표기관이 되어야 한다. 이제 국회는 변해야 한다. 
 
김상겸 (동국대 법과대학 학장 겸 법무대학원 원장, thomas@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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