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환생하여 우리나라 정치·경제 상황을 진단하고 처방을 제시한다면 무슨 말을 할까? 오늘날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한다고 많은 국민들은 개탄하고 있다. 의회가 입법 기능을 수행하지 않고 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 원인으로 국회 선진화법을 거론한다. 민주주의는 과반수결인데, 60%에 묶여 정부 여당의 손발이 묶여 있다는 것이다. 미제스도 같은 생각일까?
 
미제스는 다른 걱정을 할 것 같다. 국회가 기능을 하지 않는 것보다 잘못된 기능을 하는 것,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고 강제적으로 소득을 재분배하는 것을 더 걱정할 것 같다. 가중 다수결을 단순 과반수결로 낮춘다고 의회가 더 적극적으로 국민들의 자유와 번영과 평화에 도움이 되는 입법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오히려 정부의 경제 개입이 더 늘어나고 정부 추진 복지 입법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할 것 같다.
 
의원이 입법할 때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법안보다는 강화하거나 신설하는 법안이 훨씬 더 많다. 어쩌다가 전자의 법안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입법은 후자 쪽이다. 헨리 멩켄의 경구처럼, 의회가 회기 중일 때는 우리의 재산권이 위태롭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의회가 일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야당이 버티기를 통해 더 얻어내느라 소위 놀고 있는 국회가 되었지만, 평상시에 의원들은 법안 발의 건수를 증가시키는 데 이익을 가지고 있다. 시민 단체에서 의원들의 법안 발의 건수로 의원들의 의정 실적을 평가하므로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여하간 의원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입법할 때 우리의 재산권은 더욱 침해될 것이며 경제는 더욱 망가질 것이다.
 
미제스는 일에는 시장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주장한다. 시장의 업무는 이윤 관리로 처리되는데, 이윤 관리는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정부의 업무는 관료적 관리로 처리되는데, 관료적 관리에는 문제점이 많다. 그렇다면 문제점이 많은 관료적 관리를 이윤 관리 아래로 옮기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업무 중에는 이윤 관리로 처리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국방, 외교, 치안, 사법, 그리고 이것들을 위해 필요한 징세가 그러한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을 정부가 관료적 관리로 처리하는 데도 문제점이 있지만 그러한 문제점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미제스의 주장이다.
 
미제스가 볼 때, 오히려 문제는 시장이 이윤 관리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을 정부가 관료적 관리로 처리한다는 점에 있다. 정부가 사기업을 운영한다든지, 정부가 가격이나 수량, 품질 등을 규제하는 것을 통해 사기업의 운영에 개입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공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없어지고 사기업 운영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없어진다면, 다시 말해 정부의 시장 개입이 없어진다면, 이윤 관리와 관료적 관리의 문제, 다시 말해 시장과 정부의 문제는 해결되고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우리나라 정부는 시장에 넓고 깊게 개입하고 있다.
 
경제적 개입주의는 자멸적인 정책이다. 그것이 적용하는 개별 조치들은 추구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 그런 조치들은 경제적 개입주의자들이 바꾸려고 의도했던 이전의 상태보다 훨씬 덜 바람직한 상태를 야기한다. 소위 단통법과 도서 정가제에서 시장의 경쟁을 부정하고 가격에 통제를 가함으로써 나타나는 결과는 개입주의자들이 의도했던 바를 달성하지 못한다. 무상 급식이나 무상 보육을 통해 소득 재분배를 하려고 하나 이러한 소위 복지 정책들은 개입주의자들의 의도했던 바를 달성하지 못한다.
 
이렇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수 있게 된 것은 의회가 입법을 통하여 행정부와 관료제에 그런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회의 입법에 원인이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 그런 의원들을 유권자들이 선출했다는 점에 원인이 있다. 결국 근본적인 책임은 개입주의 정책을 실시하도록 대표자를 뽑은 유권자들에게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정부의 시장 개입을 유권자들은 막을 수 있다. 유권자들은 그런 의원들의 의회 진출을 표로써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제스가 강조하듯이, 유권자들은 의원을 잘 선출해야 한다. 유권자는 규제를 완화하려고 하는 의원, 특히 법인세를 비롯하여 조세를 인하하려고 하는 의원, 재정 지출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의원에게 표를 주어야 한다고 미제스는 주장할 것이다. 반면, 순환 출자 금지, 금산 분리,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과 같이 대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정책을 도입하고 지지하는 의원,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저하하는 정책을 옹호하는 의원, 무상 급식이나 무상 보육과 같이 국가에 의한 복지 확장을 주장하는 의원, 동반 성장이나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의원, 단통법이나 도서 정가제를 도입하고 지지하는 의원에게 표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미제스는 주장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세력에 표를 주어서는 안 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올바른 선거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기본적인 경제 원리를 알 의무가 있다고 미제스는 주장한다. 미제스에 따르면, 민주적 공동체의 시민의 첫 번째 의무는 스스로를 교육하고 시민적 업무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얻는 것이다. 선거권은 특권이 아니라 의무이자 도덕적 책임이다.
 
오늘날의 정치의 주요 쟁점들은 순전히 경제적이어서 경제 이론의 파악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 그래서 국민들의 경제학적 독해력 향상이 중요하다. 그래야 “진보”와 “평등”을 부르짖는 선동적 사기꾼들과 백치 돌팔이들에게 희생되지 않는다. “증세 없는 복지”처럼 실체가 없는 환상과 공허한 구호의 희생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민더러 경제학자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국민들이 경제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저 상식(common sense)만 갖추면 된다.
 
경제 문제들을 파악하기 위한 접근법은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사실들과 수치들을 무차별적으로 흡수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분별 있는 성찰에 의해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검토하는 데 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상식이고 논리적 명료성이다. 이를 위해 사물의 밑바닥까지 파고 들어가야지 피상적인 설명들과 해결책들을 마지못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사고력과 비판적 능력을 사용하여야 한다.
 
민주주의는 자기 결정(self-determination)을 의미한다. 만약 사람들이 너무 무관심해서 자기들 자신의 사고를 통하여 근본적인 정치·경제 문제들에 관해 독자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면, 그들은 자기들 자신의 일을 결정한다고 말할 수 없다. 미제스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수고 없이 향유할 수 있는 재화(good)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매일 지켜야 하고 끈질긴 노력으로 새로 정복해야 하는 보물(treasure)이다.
 

황수연 (경성대 행정학과 교수, shwang@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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