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민주주의의 기본형은 자유․대의제 민주주의이다. 국민의 주권을 수임 받은 국회가 민주정의 근간(根幹)이라는 말이다. 이미 민주적 이행을 넘어서 공고화 단계로, 민주주의의 본산인  프랑스, 미국보다도 높은 세계 20위의 민주화도를 시현(示顯)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회의 역할과 기능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현재, <세월호특별법>의 함정에 빠져 우리 국회는 '입법정지’의 상태에 빠진 것이다. 지난 4개월 동안 법안을 한건도 처리하지 못했다. 이것은 분명 대한민국을 사실상(de facto) 무정부 상태로 만들 뿐만 아니라, 자칫 헌정적 위기(constitutional crisis)를 야기할 수 있다. 
 
18대 국회 말엽에 만든 <국회선진화법>은 헌법이 정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다수결주의’를 위배한 것이다. 최근, 여당이 이에 대해 위헌신청을 하기로 하여 그 귀추가 주목되지만 2014년의 국회는 이 잘못된 법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운영될 리 만무하다. <국회선진화법>은 입법을 민주주의적 다수결이 아니라, 야당의 입법 거부권을 법률과 제도로 보장한 것에 다름 아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스스로 입법기능을 사실상 정지시키는 것이 자명했고, '위헌적’이기까지 한 법률을 '선진화’로 포장하는 자가당착의 우(愚)를 범한 것이다.
 
주권의 제1차적 수임기관인 국회가 스스로의 위상과 책무를 방기한 결과, 대한민국은 '입법정지’의 헌법적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현재 우리 국회는 아무런 목표도 방법론도 그리고 기율마저 갖추지 못하고 있다. 야당에 대한 아무런 설득과 타협능력도 없는 무능한 여당, 야당의 원내 거부권과 일상화된 '장외 투쟁’으로 응당 민주정치의 중심이 되어야 할 국회가 국민적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한국의 국회는 야심가의 벼락출세의 전당, 통치권의 가설무대, 이데올로기의 선전장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 속의 국회의원들은 이익과 권력, 이데올로기의 쟁투(爭鬪)에 골몰함으로써 국리민복을 정초(定礎)하는 헌법기관의 책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가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먼저, 우리 국회는 자신의 기관적 위상과 역할에 대한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국회가 스스로 헌정적 통치기관이라는 사실, 즉 국가의 통치에 참여한다는 의식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3권 분립상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것도 사실 견제와 균형 그 자체를 위해 있는 아니라 '좋은 통치’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한민국 국회는 정당의 권력획득의 기지(基地)이자, 개별 의원들의 이권과 특권, 생계 추구의 수단일 뿐, 입법과 행정부 견제라는 헌법적 책무는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둘째, 제도적으로 대한민국의 국회는 의회중심이아니라 정당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문제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자유화되고 민주화되었지만 한국의 정당은 여전히 공천과 의결이 과두제로 운영되는 일종의 정당독재가 관행화되어 있어 헌법기관인 개별 의원의 자율적 행동이 결코 허용될 수 없는 비민주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 역시 입법부의 정상 운영을 위한 실효적 권능을 갖지 못하고, 정치적 리더십도 발휘하기 힘들게 되어 있다. 국회의 거의 모든 의사운영은 국회 차원의 '운영위원회’가 아니라 정당차원의 '교섭단체의 합의’에 의해 결정됨으로써 정당이 주인이고 국회는 단지 이 정당의 부속기관에 지나지 않은 모순을 노정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한국의 국회를 실질적으로 관장하는 정당 자체의 극단적 이념주의와 파벌적 편의주의의 문제가 있다. 대통령중심제의 헌정체제로 여당은 언제나 대통령의 통치 도구로 기능하고, 야당은 극단적 정파주의로 대통령과 여당의 국정운영에 대한 '거부’(veto)로 일관하는 것이 국회 파행의 이유이다. 최근에 들어서는 자칭 진보, 혹은 민주세력의 이념적 근본주의가 대한민국 국회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하고 있기도 하다. 국가전복을 조직하려는 급진 정당이 활동하며 정당보조금까지 수령하고 있는 가하면, '민주주의 심화’를 내걸고 '장외 정치’를 일상화시키는 야당의 일탈로 자유․대의제 민주주의의 기본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 정상화 없이 국리민복이 보장될 수 없다. 결국, 대한민국 국회는 '좋은 정치(입법)’의 주체로서의 정치적 책임감이 환기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위헌적인 <국회선진화법> 등을 개정하여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작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국회가 정당 중심이 아니라 국회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는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정치의 관행과 틀이 바꿔야 할 것이다. 정당독재와 이념적 도그마, 파벌적 편의주의를 정당 스스로 개혁하여 국회의원 개개인이 헌법기관으로서의 민본정치의 책무를 최우선하는 새로운 정치문화가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쟁점들이 최근 여야 정당이 내세우는 '혁신’의 화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국회의원들이 자랑스럽게 행동하고, 그래서 존경할 수 있기를 원한다.  

조성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77sh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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