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일 뉴스파인더 논설위원 / 전 서울시사회서비스원 대표
▲황정일 뉴스파인더 논설위원 / 전 서울시사회서비스원 대표

90년대 초반 가요계에 별이 떴다. ‘서태지와아이들’이 등장한 거다. 대학가요제 세대인 나로서는 처음엔 그들의 음악이 별로였다. 아니 ‘별로’를 너머 난삽하고 뜬금없네 였다. 음악에 기승전결이 없고 애들이 싸가지가 없쟈나 이거. 

웬걸! 10대는 물론 열 살 아래 터울의 20대들은 달랐다. 서태지에 울고 아이들에 열광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초록의 요구에 정답을 내놓은 것이다. 그들과 동시대를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행복하다는 대학 후배의 말에 소름까지 돋은 기억이 있다. 

한국어는 구조상 랩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당시엔 다수설(多數說)이었다. 조용필 태진아 신승훈 류(類)의 음악이 방송을 장악하고 인터넷, 케이블, 유튜브도 없던 시절이었다. 겸손이 미덕이던 때, ‘난 안다’고 지르면서 나타난 서태지와아이들은 젊은 친구들을 랩과 댄스뮤직의 환상 속으로 인도했다. 그들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알 만한 분은 안다. 지금도 방송국의 권력은 크고 막강하다는 걸. 하물며 90년대 초다. 말하면 입만 아프다. 방송국 PD의 명을 거역하는 것은, 발정난 말의 불알을 바로 뒤에서 건드리는 일처럼 치명적이다. 가수 활동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장을 규제하면 출연하지 않겠다. 특정 프로 출연을 강요하지 마라. 이런 서태지의 선언이 당시 무소불위의 방송국과 담당 PD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졌을까? 상상이 간다. 저런 싸가지 없는 놈이 있나. 저 × × 당장 끌어 내려. 

입성을 제한하면 생각은 박스 안에 갇히기 십상이다. 행동을 규제하면 창의는 온데간데없어진다. 서태지가 없었다면 BTS나 BLACKPINK의 출현은 많이, 아주 많이 늦어졌을 거라는 말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서태지와아이들은 창조적인 음악의 선구자, K-POP의 씨앗, 문화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준석 신당이 여의도에 회자 되고 있다. 여러 가지 관측과 예측, 분석이 난무한다. 입 있는 사람은 각기 한마디씩 하는데 진영의 이익에 따라,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터져 나오는 듯해서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이준석을 보면 서태지가 생각난다. 문제의 핵심을 짚는 그의 감각은 뛰어나다. 해결을 위해 내놓는 방책 역시 혀를 내두를 때가 많다. 저런 묘안이 어디에서 나올까 싶다. 백미는 박근혜 탄핵을 정면 돌파하는 대구 연설이다. 생각도 쉽지 않지만 그 실행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보수 진영에 몸을 담고 있는 처지라면. 이준석은 했다. 그리고 30대에 보수 야당의 대표를 거머쥐었다. 

이준석의 ‘공천 시험’ 제안은 참 엉뚱했다. 본인도 알 것이다. 생뚱맞다는 것을. 그런데 어쩌랴? 인력 충원과 공천 과정이 건강하지 않은데. 줄 잘 서면 일단 똥개도 50% 먹고 들어간다. 이렇게 사람을 충원하는 것은 아니지. 유사 상품인 대변인 공개 배틀은 공전의 히트를 쳤다. 온라인을 통한 ‘신당 연락망’이 최근 기염을 토한 바도 있다. 어디서 저런 기발함이 나올까? 이준석, 참 연구 대상이다.

여기서 잠깐 개똥철학 한 자락!!!

군대나 경찰 등 일부 조직을 제외하고 모든 인간의 관계는 수평적이어야 한다. 참인지 거짓인지는 자리나 위치가 아니라 법과 원칙, 논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열린 사회, 민주 국가의 참모습이다. 

불행히도 현재의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관계가 수직적이다. 가진 권력이 어느새 정의이고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진실이다. 

‘바이든’이 ‘날리면’이 되고 ‘바지 대표’가 탄생하는 배경이다. 혀로는 거부하던 불체포특권을 발가락으론 죽어라 꼭 붙들고 있고 세금으로 초밥이랑 소고기를 맛나게 사 먹어도 별일 아닌 일이 되는 이유이다. 실종된 염치, 후퇴한 민주주의 급기야 세련된 독재다. 

이런 옳지 않음에 저항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디든 예외는 없다. 내 자리 내 권력,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없지는 않다. 많지 않은 사람 중에 이준석은 단연 앞줄이다. 

근데 글마는 영 싸가지가 없어!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개인 이준석은 내가 보기에도 싸가지가 적은 듯하다. 직접 겪은 바는 없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 하지만 삼십인성호(三十人成虎)라면야.  

허나 우리가 그에게 바라는 것은 싸가지가 아니다. 싸가지일 필요도 없고 싸가지여서도 안 된다. 속닥속닥 아름아름 밀실정치 퇴물정치 우리모두 욕해왔던 대한민국 불치의병 제발꼭좀 치료해줘. 이거 아닌가? 

살아 온 삶은 미래를 속일 수 없다. 검사(檢事) 윤석열의 삶이 대통령 윤석열의 행태를 일부 설명해주듯이. 밀실에서 속닥이면서 끼리끼리 아름아름 그래서 정치도 말아 먹고 나라도 말아 먹는 그런 거 말고 최소한 공개하고 토론하고 그 속에서 답을 찾는 그런 거, 이준석의 최근 삶을 보면 기대해 볼 만하다. 

그의 이탈이 보수표를 분산시킨다? 국힘 위주의 좁은 해석이다. 세상은 빠르게 앞서가는데 정치는 최선을 다해 뒤로 가고 있다. 국가도 덩달아 퇴보가 예상된다. 새로운 버전의 정치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다. 누가 토대라도 마련할 수 있을까? 싸가지 있는 관성론자는 절대 못 한다. 천하용인(이준석계의 청년 정치인 4명을 일컫는 정치적 용어)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이준석에게 힘을 실어줘야 할 이유로 충분하지 않은가?

나도 꼰대 반열에 어느덧 올라섰다. 생물학적으로 686이니 어쩔 수 없나 보다. 글 끝에 국민의힘 전 대표 이준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꼰대티를 벗어나지 못하니 말이다.

P.S. 이 전 대표님, 싸가지 없음이 삼손의 머리카락 역할을 한다면 모를까 이제는 싸가지 좀 챙기시는 게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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