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후속 조치 관련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후속 조치 관련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우현 기자] 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1천300억원 넘는 돈을 지급하라는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에 불복해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1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불복 이유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의 '관할 위반'을 들었다. PCA가 재판할 권한이 없는 사건을 판정했다는 주장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한미 FTA 규정상 ISDS 사건의 관할이 인정되려면 ▲ 정부가 채택·유지한 조치일 것 ▲ 투자자의 투자와 관련성이 있을 것 ▲ 조치의 책임이 국가에 귀속될 것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한 장관은 PCA가 국민연금을 '사실상 국기기관'이라며 의결권 행사 책임이 정부에 귀속된다고 본 것에 대해 "한미 FTA가 예정하지 않은 '사실상 국가기관'이라는 개념에 근거해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한미 FTA 상대국인 미국도 중재판정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당국으로부터 위임받은 비정부기관의 조치'는 '위임받은 정부 권한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는 포함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강조했다.

한 장관은 "한미 FTA에 대한 해석은 정부의 시각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미국의 의견도 이에 부합한다. 엘리엇의 본국인 미국이 오히려 이러한 해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이 낸 합병무효 소송과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국내 법원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의 위법행위가 있었더라도 국민연금은 결과적으로 독립된 의결권 행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한 점도 제시했다.

한 장관은 PCA가 국정농단 사건의 형사 판결을 상당 부분 인용한 것에 대해서는 "국민연금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이 심판받은 형사판결과는 법리상 궤를 달리하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또 "저는 이 사건을 (특검에서) 수사해 바로잡는 데 실질적으로 관여한 사람이고 누구보다 그 전모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소수주주 중 하나에 불과한 엘리엇에게 돈을 물어줄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후속 조치 관련 내용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후속 조치 관련 내용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 장관은 "소수주주는 자신의 의결권 행사를 이유로 다른 소수주주에게 어떠한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는 게 상법상 대원칙"이라며 "소수주주 중 하나인 국민연금이 자신의 의결권을 행사한 것을 두고 다른 주주인 엘리엇의 투자에 대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러한 판정을 인정할 경우 해외 투자자의 악의적인 ISDS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장관은 "정부가 이를 바로 잡지 않을 경우 향후 우리 공공기관과 공적 기금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부당한 ISDS 제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고 진행 중인 ISDS 사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국민연금이 가진 상업적 지분권을 비즈니스적으로 행사한 것"이라며 "정부의 입장을 적극 개진해 잘못된 판정을 바로잡고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이 불필요하게 낭비되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취소 소송과 함께 PCA에 판정문의 오류를 바로잡아달라는 판정 해석·정정 신청도 냈다.

PCA가 엘리엇의 손해액을 산정하기 위해 삼성물산이 지급한 합의금을 세전 금액으로 공제하라고 설시하고도 정작 세후 금액을 공제하는 오류를 저질러 손해배상금이 약 60억원 증가했다는 것이다.

또한 판정 이유에서 약 326억원 상당의 판정 전 이자를 원화로 지급하라고 밝혔으면서 판정 주문에는 미화로 지급해야 하는 것처럼 판시했다며 명확한 해석을 요구했다.

법무부는 국민 알권리 보장을 위해 국문·영문으로 작성된 판정문 전문을 이날 오후 8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PCA는 지난달 20일 한국 정부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미 FTA를 위반했다는 엘리엇 측 주장 일부를 인용, 우리 정부에 5천358만6천931달러(약 690억원·달러당 1,288원 기준)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이는 엘리엇 측이 청구한 손해배상금 7억7천만달러(약 9천917억원) 중 약 7%에 해당한다.

PCA는 우리 정부가 엘리엇에 법률비용 2천890만3천189달러(약 372억5천만원)를, 엘리엇이 우리 정부에 법률비용 345만7천480달러(약 44억5천만원)를 각각 지급하라고도 판정했다.

이 금액을 모두 더하면 정부가 엘리엇 측에 지급해야 하는 금액은 판정선고일을 기준으로 1억781만7천265달러(약 1천389억원)에 달한다고 법무부는 밝혔다.

엘리엇은 2015년 삼성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과정에서 청와대,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에 찬성투표를 하도록 압력을 행사해 손해를 봤다며 2018년 7월 ISDS를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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