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북한에서 생활할 당시 친구들 중에는 공병국 제1여단에서 11년 동안 근무하고 제대한 사람이 있었다. 북한에서 공병국 제1여단은 김정일의 특각이나 집무실을 비롯한 비밀공사를 전담한 부대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제대할 때 비밀을 철저히 엄수한다는 서약서에 지장을 찍고 사회에 나온다. 또한 사회에 나와도 6개월에 한 번씩 군당 3호실에서 비밀 누설과 관련하여 뒷조사를 한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사회에 나와서도 비밀을 누설할까 말을 조심하군 한다. 필자의 친구도 그랬다. 기껏 한다는 얘기가 자기가 군복무를 한 공병국 1여단은 공급이 특별해 군인들은 비밀 공사에 동원됐을 때, 하루 통닭 한 마리를 먹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쌍스러운 농말을 잘했다. 그는 “지금 세월에는 심각한 이야기보다 쌍스럽지만 농말을 달고 사는 것이 유익하다”며 직장에서나 술좌석에서나 늘 상스러운 농말을 달고 있었는데 지금도 그가 늘 입에 달고 다니던 “이빨이 아파 씹지를 못 하고 눈이 나빠 보지를 못하네.” 라는 말이 가끔 떠올라 혼자서 웃곤 한다.
 
그러나 그도 가까운 친구들과는 가끔 비밀로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어느 날 그는 술좌석에서 한담을 하던 중 필자에게도 비밀을 털어놓았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그가 소속되었던 공병국 제1여단은 70년대 김정일의 집무실인 중앙당 3호 청사를 건설했다. 그런 관계로 비밀 엄수에 대한 요구는 물론 비밀 누설자에 대한 처벌도 무자비했다.
 
심지어 부대에서 비밀 공사를 하고 제대한 후 비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생활하던 두 사람(공병국 1여단 출신)을 체포하여 군인들 앞에서 공개 총살하는 것을 그는 보았다고 했다. 또한 위급 군관 두 사람도 비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전 부대가 모인 앞에서 공개총살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그가 왜 평소에 그토록 속을 터놓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북한사회에서 남이 모르는 국가와 체제의 비밀을 알고 있으면 항시적으로 생명위협을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도 생각해 봤다.
 
후에 그는 필자와 친하게 지냈는데 그는 때때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중앙당 3호 청사는 지상보다 지하 시설이 더 크고 요란하다. 지하는 지상보다 더 굉장한데 로켓포를 비롯한 각종 화력 무기들로 군사요새화 했다.”
 
70~80년대는 북한사회가 비교적 평온했고 안정적인 시절이었다. 특히 김일성 독재정권에 반발하는 현상은 찾아보기 어려울 때였다. 김정일에게로의 권력세습도 아무런 저항 없이 진행되고 있었고. 당시는 북한의 역사에서 주민들이 최고로 세뇌와 되었던 시절. 북한사회는 “똘똘 뭉쳐” “환호”만을 외치던 시기이다.
 
그러나 그때 김정일은 벌써 독재에 항거하는 폭동이나 쿠데타까지 내다봤다. 이것은 김정일이 오직 권력에만 미쳐 돌아간 극악한 독재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필자는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에 입국한 후, 일부 한국인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독재자로 몰아붙이기에 그들에게 비록 유치한 질문이었지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폭동이 무서워 청와대 지하에 요새화된 군사시설을 만들었던 적이 있는가.”고.
 
최근 민주화 투쟁으로 새로운 이슈를 만든 리비아에서도 카다피는 자기의 거처를 핵공격에도 무사할 수 있는 요새로 꾸렸다고 한다. 자기의 거처를 폭동이나 물리적 공격을 철저히 분쇄할 수 있도록 군사 요새로 만드는 것은 독재자들의 “전통적 풍속”. 결국 김정일은 “정치”를 시작하던 70년대부터 잔인한 독재를 체질화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진선락 기자 dsmgur325@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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