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 김정은에게 정중한 예를 갖춰야 한다.” 심재권 민주통합당 의원의 발언이다.

 

심 의원은 “사적으로는 그냥 ‘김정은’이라 할 수 있지만 공식적으로 표기하는데 ‘김정은의 군부대 방문’ 이런 식의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통일부 업무자료에 ‘김정은’이라고만 기재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어 “북한이 우리 대통령을 가리켜서 ‘박근혜는’ 이런 식으로 한다면 그 자체가 상황의 악화를 의미한다”며 “정부는 ‘이런 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걸 보여주도록 정중한 예를 갖추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심재권 의원은 요 몇 년간 어디 해외에서 눈과 귀를 닫은 채 생활하다가 갑자기 돌아오기라도 한 것인가. 황당하고 어이가 없을 뿐이다.

 

북한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리명박 역도’라고 부를 때 규탄이라도 했었나. 차라리 역도라는 표현은 양반이다. ‘쥐새끼 패거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게 북한이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독재자의 딸’이라느니 ‘민족의 원수’라느니 하는 소리를 서슴지 않고 내뱉으며 심지어 김관진 국방장관의 얼굴을 북한에선 사격판으로 쓰기도 한다.

 

이런 세력을 앞에 놓고 우리보고 예를 갖추라고? 심 의원이 갑자기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걸까? 북한은 우리에게 그렇게 해도 되고 우리는 심지어 호칭까지 정식으로 불러줘야 하는가? 왜 무턱대고 북한에 예를 갖춰야 한다고 외치는 걸까. 

 

민주당이 주장하는 ‘대북특사’ 파견에 힘을 더하기 위함인가? 앞으로 우리가 20대 풋내기 김정은을 그렇게 추켜세워줘야 협상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건가?

 

그렇다면 우리는 고개를 조아린 채로 북한의 김정은을 알현해야 하는가. 북한이 욕하는 대로 얻어 먹으면서 사람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바보가 돼야 하는가.

 

북한은 우리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삿대질을 하는데 우리는 그저 멍청이처럼 웃으면서 고개를 숙이며 악수를 청하려 하는가.

 

미친 짓이다. 나라의 녹을 먹는 국회의원이라면 김정은이 아닌 국민의 뜻을 대변하라. 국민들의 신하가 돼야지 왜 김정은의 신하가 되려고 하는가.

 

김정은이 예의있게 대하는 데 우리가 무시하는 건가? 북한은 이미 진작부터 우리를 눈 아래로 봐 왔고 그야말로 우습게 대했다. 협상에 있어 한국을 뺀 채 미국과만 대화에 응하겠다고 외쳤던 것들이 그 예다.

 

쌍방신뢰가 전제돼야 협상이다. 우리가 왜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가. 전쟁을 피하려고? 지금껏 숙이고 들어갔더니 결과는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다.

 

더군다나 지금은 북한측이 말한대로라면 전시가 아닌가. 정전협정 백지화에 이제부터 전시상황이라고 외친 게 김정은이다. 전시 상황에서 적국 수장에게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서 대해야 한다고 정부부처 장관을 꾸짖는 게 상식적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게다가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를 코 앞에 두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발언이 가당키나 한 소린가. 한쪽에선 총을 들이대며 위협하는 데 우리는 예를 갖추자고 다짐이나 하고 있다니.

 

좋다. 심 의원이나 앞으로 김정은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님’이라고 불러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쌍방이 신뢰해야 이뤄지는 거다. 일방적으로 우리가 믿으면 그것만큼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 어딨나. 북한이 핵무기만 포기해도 진작에 이뤄졌을 신뢰다. 그것 수십년간 못 놓고 있는 게 북한 아닌가.

 

그 핵무기가 미국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려는 거라고 믿는다면 더욱 어리석다. 이미 핵으로 우리를 위협한 게 수십 수백차례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시작은 북한의 반성 내지는 사과에 있다.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상대에게 대화하자고 나서봤자 시간 낭비만 할 뿐이며 대화하자고 나서는 과정에서 우린 이미 협상력을 상실하게 되는 거다.

 

질질 끌려다니며 스물 여덟 먹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님’의 비위나 맞추게 될 거란 얘기다.

 

만약 심 의원이 말하고자 하는 게 평화라면 이번 발언은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적어도 장기적으로 북한이라는 괴뢰집단으로부터 평화를 지키려면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된다. 더 강도 높은 협박과 도발만 있을 뿐이다. 상식으로 다가와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을 때만 잡아줘야 한다.

 

총칼로 위협하는데 상황에 맞지도 않게 웃으면서 손부터 내밀면 그건 코메디다.

 

김정은은 본인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나머지 2천만 주민들의 민생을 나몰라라 하고 있는 인물이다. 헐벗고 굶주리는 이들의 모든 생산물은 강탈하고 그들에게 주는 것은 없다.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할 뿐이다.

 

그 뿐인가. 체제 유지를 위해 지옥 소굴같은 정치범 수용소에 밀어넣는 주민들 수는 점점 더 많아진다고 하지 않은가. 단지 우리의 적 북한의 수장이라서 미워하는 게 아니라 반인륜적이고 비인간적인 캐릭터의 표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김정은에게 예의를 갖춰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갖춘다고 해서 얻는 것도 없다. 다시말해 명분도, 실리도, 대의도 없는 게 김정은에게 예를 갖추는 일이다. 최소한 북한이 먼저 머리를 숙이고 과거에 대한 사과를 담아 화해의 손을 내밀기 전까진 그렇다.

 

국회의원은 국민들을 대변한다. 국민들의 뜻이 어떤지 잘 헤아리길 바라며, 적과 아군을 잘 구분해 어리석은 행동을 삼가길 당부한다.

 

김승근 편집장

저작권자 © 뉴스파인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