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참 재미있는 곳이다. 자고나면 갑과 을의 위치가 뒤바뀌고 꼴찌가 일등을 누르는 인간사 역전의 쾌감을 선사한다. 부정적인 단면도 있다. 어제의 충신이 오늘의 배신자로 변신하고 어제의 정당한 논리가 오늘의 부당한 궤변이 되기도 한다. 세상은 이렇게 유무형의 모순과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들로 가득 차고 서로 충돌하는 미스터리한 공간이다. 겸손의 미덕과 역지사지의 정신이 필요한 것은 이런 부조리한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기 위한 필수조건인지도 모른다. 어제의 MBC가 천국이었다면 오늘의 MBC는 아우슈비츠의 지옥으로 여겨진다는 MBC노조는 지금쯤 이런 세상 이치를 조금은 깨달았을까 궁금하다.
 
최일구 앵커가 MBC에 사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인터넷에 회자가 됐다. 회사는 아직 사표처리를 하지 않았지만, 김재철이 주는 모멸감을 참을 수가 없었다는 최 앵커의 사직 의지로 볼 때 회사가 그를 말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최 앵커가 사표를 낸 데 분개하는 미디어스의 인터뷰를 보니, 최 앵커의 이런 말이 나온다. “떠나는 자가 무슨 말을 하겠나. 다만 MBC가 그동안 나에게 한 징계는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뜻대로 안 되면 마치 회사와 사장의 모든 것을 파괴하겠다는 듯이 덤벼들던 노조의 ‘간판’이 고작 ‘신천교육대’의 교양 교육이 그렇게 수치스러웠다니 의외다. 다 팽개치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일인 시위하던 그 패기라면 그 어떤 징계를 당해도 견딜 줄 알았는데 말이다. 진짜 창피할 일엔 용감무쌍하더니 별것 아닌 교양 교육 좀 받았다고 발끈해 사표까지 내던진 꼴 아닌가. 

미디어스와 같은 매체는 최 앵커 사표소식에 이렇게 발끈한다. “파업에 참가한 노조원들에 대한 패륜적 인사조치를 지속하고 있는 김재철이라지만 MBC에 28년을 몸담은 최일구 기자에게는 너무 가혹하고도 모욕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최 앵커가 투신했던 정치파업도 불법이고 회사에 알리지 않고 외부 강연을 제멋대로 다닌 것도 사규위반이다. 28년 재직했으면 법치와 사규쯤은 간단히 무시해도 된단 말인가? 최 앵커 정도 나이 먹고 경력 오래된 MBC 직원에겐 하찮은 교양 교육명령은 절대 해서는 안 되고, 징계는 무조건 억울한 일이라는 얘긴가? 30년이상 MBC에 몸담아 일해 온 사람은 낙하산 사장으로 매도하고 추측과 단정으로 한 사람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것쯤은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웬 엄살이란 말인가. 교양교육이 그렇게나 수치스럽고 모욕적인가. 최 앵커는 사장보다 더 특별대우를 받아야만 하는 존재인가. 파업하면서 온갖 막장짓과 추태를 불사하던 이들이 이젠 가혹하고 모욕적이라니 어이가 없다.
 
자신에 대한 반성보다 징계와 교육명령이 주는 수치감으로 사표를 던진 최 앵커나 김 사장을 정당한 비판 이상의 매도로 공격하는 데에만 관심 있는 언론이나 모두 한 가지를 잊고 있다. 남의 고통은 하찮게 여기고 자신의 발등에 촛농이 떨어진 고통은 과장하는 스스로의 오만은 모르고 있다. 사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대놓고 쫓아내려 공작을 벌인 이들이 이제와 자신들이 받은 징계를 “수치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철딱서니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자신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교만한 태도, 선민의식을 버리지 않는 이상 MBC 조직이 아닌 더 넓고 깊은 물에서 오래 생존하기는 어렵다. 최 앵커가 제2의 인생을 살겠다고 하니 이 점을 깨닫기 바랄 뿐이다. 노조 파업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다면 제2의 인생이나 제3의 인생이나 그다지 달라질 것은 없다. 어제의 잘나가던 MBC 노조원으로서 특권의식은 버리고 남의 생각과 입장도 돌아볼 줄 아는 역지사지를 할 수 있다면 성공한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주제파악 하지 못하고 역지사지 하지 못하는 것은 방송문화진흥회도 마찬가지다. 지난 7일 예정됐던 방문진 이사회는 야당측 이사들과 여당 측 일부 이사들이 김재우 이사장이 주최하는 이사회는 참석할 수 없다며 보이콧하는 바람에 과반 정족수 부족으로 열리지 못했다. 김 이사장의 논문 표절 문제를 지적하며 이사장직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이들이 주도해 이사회가 파행을 빚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그 직전 이사회에 김재철 사장이 이사회에 업무보고도 하지 않고 돌아갔다면 길길이 뛰며 분개했다. 김 사장이 김 이사장이 없는 상황에서 신년업무 보고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돌아간 것은 방문진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 이사들은 스스로 방문진의 권위를 존중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필자가 볼 때는 전혀 아니다. 
 
김 이사장의 논문 표절 문제와 방문진의 정기 이사회 개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김 이사장이 못마땅하더라도 일단 방문진의 7일 이사회는 예정대로 개최했어야 옳았다. 김 사장이 업무보고도 하지 않고 돌아간 것은 방문진을 대놓고 무시한 것이라며 비판하며 사전 경위서 제출을 요구하고, 이사회에 참석해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하라고 했던 날짜가 이날이었다. 김 사장은 참석했지만, 그 요구를 했던 이사들은 별개의 문제인 김 이사장 사퇴 관철을 위해 이사회 자체를 보이콧해버렸다. 이런 이사들의 태도는 MBC 사장을 존중하는 태도인가? 방문진 내부의 권력싸움이나 이사장 퇴진 문제는 자신들 스스로 알아서 처리해야 할 일이다. 김 이사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하면 그를 이사장으로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은 자신들이 내부 권력싸움에 몰두하고 있을 뿐, 방문진 자체의 업무를 소홀히 한다는 인상을 준다. 
 
방문진 이사회가 이런 이유들로 파행을 빚는 건 말이 되는 것인가? 이사들 스스로 방문진의 권위를 무시하는 게 아니고 뭔가? 이사장 퇴진 다툼하느라 방문진 고유 업무, 공적 업무를 소홀히 하는 게 권위를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이 해도 될 일인가? 방문진 일부 이사들과 MBC노조 일부 언론 등은 김 시장이 공사를 구분 못하는 인물이라고 비난한 적이 있다. 공사를 구분 못하는 방문진 일부 이사들과 공사를 구분 못하고 제멋대로 외부강연을 다니다 징계를 당한 최일구 앵커와 마찬가지로 공사를 구분 못하고 무조건 최일구 영웅 만들기나 몰두하는 유치한 편향 언론들에겐 과연 김 사장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 이들에겐 공사의 논리가 김 사장을 공격하는 데 정당한 논리가 되겠지만, 그들 스스로 보여주는 이중적 태도는 그 논리가 필자와 같은 평범한 국민에겐 궤변으로 비치는 것이다. 
 
이쯤에서 결론을 짓자. 먼저 최일구 앵커가 제2의 인생을 살겠다고 하니 비판만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떠도는 말처럼 모 방송에 가 진행자로 나서든, 강연자로 나서든 그가 알아서 개척해 나갈 일이다. 다만 실패한 MBC 파업에서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남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성숙함, 세상을 겸허히 바라보는 겸손함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유무형의 MBC 덕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벌판으로 나가 독립하려면 실력과 함께 이러한 인간적 성숙함과 교양이 반드시 필요하다. MBC를 관리 감독하는 방문진 역시 오만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 자신들은 방문진의 권위를 제대로 존중하지 않으면서 MBC 사장 따위는 방문진 이사들에게 고분고분해야 한다는 잘못된 권위의식은 버려야 한다. 권위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 요구로 서는 게 아니다. 김 사장을 비난하기 바쁜 방문진 일부 이사들 역시 역지사지로 자신들을 돌아봐야 한다.

폴리뷰 편집국장 - 박한명 -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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