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잔에 5천원에 육박하는, 이른바 밥값보다 비싼 해외 유명 커피 브랜드가 '된장녀' 논란을 낳던 시절.

 

유명 햄버거 브랜드 맥도날드가 내민 커피 광고 카피가 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고객을 대상으로 2천원 짜리 자사 커피 제품과 4천원 짜리 '비싼' 커피를 놓고 맛 테스트를 하는 장면.

 

고객들은 하나같이 '비싼' 커피에 "맛있다"를 연발했고, 한 실험 대상자는 "2천원짜리는 신맛이 나는데 비해, 4천원짜리는 원두 본연의 깊은 맛이 난다"는 높은 식견(?)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두 커피는 모두 맥도날드의 같은 커피. 실험 대상자들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하는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비싸면 맛있다는 명제에 길들여져 있고 비싼 것을 맛있다고 해야 '품격' 있어 보인다는 인식에 빠져 있는 현대 사회의 '허세'를 그대로 꿰뚫은 공격적인 마케팅이었다.

 

대선을 한 달쯤 앞둔 시점에 '맥도날드' 현상과 비슷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박근혜-안철수-문재인 세 유력 대선후보의 공약을 블라인드 테스트한 것.

 

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 등 서울지역 10개 대학의 학보사가 지난 5~9일 대학생 9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다.

 

후보 선호도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46.6%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일반 여론조사에서는 1위를 놓치지 않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문재인(25.8%) 민주통합당 후보에도 뒤진 17.8%였다.

 

20대 유권자 사이에서 안철수 신드롬을 실감케 하는 결과다.

 

하지만 정책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세 후보의 청년 관련 정책 5개 분야를 무기명으로 제시하고 가장 마음에 드는 공약을 고르게 했다.

 

그 결과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 3개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반값 등록금과 군복무 및 안보, 대학 교육 지원 분야에서 세 개의 문항 중 약 50%의 지지를 받았다.

 

2등이었던 문재인 후보는 청년 실업 정책과 대학생 주거 분야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다.

 

반면 가장 인기가 많은 안철수 후보의 공약은 2개 분야에서 2위, 3개 분야에서 3위를 기록하는 '굴욕'을 당했다.

 

의미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은 조사 결과다.

 

5년간 나라를 이끌 지도자를 뽑는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척도가 공약이나 정책의 완성도가 아닌 후보의 '이미지'라는 점.

 

정치평론가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막연한 반감, 또한 새로운 변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원인인 셈이다.

 

'연예인'을 생산하는 TV오디션 프로그램에서조차 '인기도'보다는 실력을 중시해야 한다는 논리가 우대받는 시대에 사는 우리로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질 법한 현상이다.

 

틀렸다거나 나무라고 싶은 의도는 전혀 없다.

 

같은 맛이라도 햄버거 전문점에서 먹는 커피와 별다방 콩다방의 비싼 커피는 엄연히 다른 존재임에는 분명하다. 어차피 사람 사는 세상 '이미지'와 '선입견'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계라고도 얘기할 수 있다.

 

다만 '남들이 그러니 나도'라는 '패션'에 휩쓸리는 안이한 마음으로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다는 것이 같은 커피를 두고서도 "이 커피가 더 향이 풍부하고 깊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한 실험 대상자의 '착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 역시 분명해 보인다.

 

칼럼니스트 안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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