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MBC청문회는 한 편의 웃지못할 코미디극이었다. 야당과 MBC노조가 공동 연출을 맡고, 시나리오는 노조, 주연도 야당과 MBC노조가, 조연은 무용가J씨 남편 우치노 시게루, 일본 호텔 종업원은 씬스틸러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간 노조가 써온 뻔한 시나리오에, 부자연스러운 장소에서 몸값만 비싼 퇴물 주연배우들이 자신들의 형편없는 연기실력을 보조해 줄 조연배우를 일본에서 급조해와 한바탕 싸구려 연기를 선보인 것이다. 하긴 영화가 지루할까봐 관객에게 잊을 수 없는 결정적 장면을 제공하기 위해, 호텔 종업원까지 등장시켰다. 짜잔~ 양손에 김재철 사장과 J씨 사진 한 장씩 쥐어주고 씩 웃고 있는 모습까지 말이다.

일본까지 건너가 인터뷰 따오고, 호텔도 부랴부랴 찾아가 종업원도 찾아내고 이 코미디영화 한 편 제작하느라 비용도 적잖이 들어갔을 터이다. 경제도 안 좋은데 비행기 값만 해도 어디인가. 하긴 연봉1억8천의 국회의원과 1억 가깝게 받는다는 MBC노조는 대한민국 1%들이라 그깟 비행기값 정도는 껌 값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들인 공은 칭찬해줄만하다. 하지만 들인 공과 흥행결과는 별개의 문제이니 어쩌랴. 쏟아 부은 돈과 시간이 아무리 많고 기술이 뛰어나도 시나리오가 신통치 않고 배우가 미스캐스팅이면 그 영화는 볼 장 다 본거다.

실패한 영화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도대체가 장르가 뭔지 알쏭달쏭하다는 것이다. 본래 시나리오는 무거운 범죄수사극인데 배우들의 연기는 코미디에,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막장 드라마 ‘사랑과전쟁’으로 흐른다. 경영자의 배임의혹과 노동탄압을 고발하겠다는 내용인지, 그렇지 않아도 살기 팍팍해 스트레스 만땅인 국민에게 황당 설정으로 한바탕 웃음을 선사하겠다는 코미디극인지, 아내의 사회생활을 의심하다 의처증에 걸려 미쳐버린 한 남자의 광기를 보여주겠다는 것인지 도대체가 오리무중이다. 눈물연기, 읍소연기, 호통연기, 슬랩스틱을 마다하지 않는 주연 배우들의 오버연기를 보면서 웃어야 할지, 장르를 넘나들며 듣도 보도 못한 황당 전개에 박수를 쳐야할지, 영화 속 영화 사랑과전쟁 주인공에 동정을 보내야할지 관객들은 난해해지는 것이다.

비장한 느와르 정영하·이용마, 사랑과전쟁 찍다 엽기반전 무용가J남편, 코미디 목격자 호텔 종업원

배우들의 연기는 또 어떤가. 정영하, 이용마는 마치 느와르 주인공이라도 된 듯 비장한 모습으로 등장하지도 않은 김 사장에게 총구를 겨눴을 것이다. 악당의 범죄를 단죄하기 위해 자신들이 얼마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싸워왔는지 절절히 늘어놨을 것이다. 이 대목에선 정말 노련한 연기가 필요하다. 자기들이 이끌고 있는 집단에서 벌어진 불륜, 폭력, 불법선거운동, 사치행각과 같은 내용들이 절대 등장해선 안 된다. 더욱 비장하게, 엄숙하게 폼을 잡아야 한다.그러다 장면은 느닷없이 사랑과전쟁으로 넘어간다. 사랑과전쟁의 주인공은 자기 아내의 통화내역을 뒤져서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리곤 여기서 관객의 예상을 뒤집는 반전이 등장한다. “김재철 사장은 MBC 사장으로 부적합하니 물러나야한다”

유주얼서스펙트 뺨치는 반전이다. 그런데 이거 웃어야하나 말아야 하나. 관객들은 기가 막힌 이 반전에 탄성을 질러야 마땅한데, 어딘지 찜찜하다. 볼 일보고 뒤처리 안한 것처럼 영 개운치가 않다. 당장 한국에 달려와 멱살잡이도 시원치 않을 상대더러 ‘중요한 건 J와의 관계가 아니라 MBC사장 자격이 없다는 것’이란다. “그놈이 잘해주디” 라며 날뛰면서 아내의 ‘그놈’을 만나기 위해 MBC를 기웃거려야할 ‘남편’이 중요한 건 관계가 아니라 그놈의 ‘퇴진’이라니 이게 뭔 X소리? 사랑과전쟁류의 드라마를 즐기는 일부 관객들은 “이런 X싸구려같은 X같은 영화 봤나” 혈압을 올릴만한 반전이다. 그들에겐 ‘의처증 남편’ 설정이 관객기만으로 여겨질 법하다.

열 오른 관객들은 이 의처증(설정된) 남편이 ‘어디서 입수했다며’ 그놈과 아내의 가족이 만나는 동영상을 대단히 차분하게 틀어대며 분석가로 돌변하는 대목에서도 분개할지 모른다. 아무래도 속은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호텔 종업원의 동영상이 등장한다. 목격자라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사진을 겹쳐 들고 있다. 두 사람이 함께 투숙했단다. 여자가 김치가 아주 맛있었다고 말했다는 것도 기억한단다. 야, 정말 절묘한 타이밍에 기가 막힌 목격자다. 이제 영화의 결말이 나온 것 같다. 이 영화 제작진은 어쨌든 목격자를 등장시켜 결말을 냈으니 관객들이 즐거워 할 거라고 기대한다. 흥행은 따 논 당상 같다.

MBC노조여, 수고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인들에게 맡기자

“에이 XX 영화가 뭐 이래. 이 영화 똥이야” 어라? 관객들의 반응이 또 시큰둥하다. 영화는 감정만 있는 게 아니다. 영화는 오히려 치밀한 논리다. 개연성 없는 전개, 이해할 수 없는 오버 연기, 엉뚱한 설정으로 뒤죽박죽으로 만들면 관객의 흥미를 끌 수 없다. 당연히 흥행도 되지 않는다. 물론 노조 혼자 북치고 장구 치고 갖가지 슬랙스틱 막장 연기를 펼쳐도 노조의 연기를 흐뭇하게 지지해줄 일부 팬들은 있긴 하다. 하지만 대중적 인기는 어림도 없다. 무려 1년전의 일을, 그것도 수많은 손님들 시중을 들었을 호텔 종업원이, 별나게 눈에 띄는 것도 아닌 외모의 한 쌍의 중년 남녀의 얼굴과 했던 말들을 정확히 기억한다는 것부터 수상한 일이다. 사랑과전쟁류를 좋아하는 관객들의 머리는 비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여주인공 외모가 이 종업원 마음에 들어 기억한다고 쳐도, 그놈은 뭐 평범한 외모 아닌가? 하필이면 이 종업원은 1년전 투숙객들 얼굴을 전부 기억하는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 종업원이 레인맨이야 뭐야? 에이 X같네!’

덕지덕지 장면만 이어붙인 개연성 없는 스토리에, 배우들의 과잉오버 연기, 진지한 연기와 황당 코미디가 뒤섞인 물과 기름의 조합, 따로 노는 캐릭터, 장르를 뒤섞어 놓은 정체불명의 영화가 바로 노조와 야당이 세금을 퍼부어 찍은 영화다. 망할 조건은 다 갖추고 있는 셈이다. 감성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설득력이 없는 영화는 백퍼센트 망하는 영화다. MBC노조가 야당을 끌어들여 찍은 환노위 청문회라는 이 어설픈 영화는 처음부터 지켜보는 관객(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만들어진 삼류도 못되는 저질 영화라는 것이다. 국민세금을 들여 쫄딱 망한 영화 한 편 찍었으니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차라리 노조 사비로 저예산독립영화 ‘복수혈전’이라도 찍을 것이지. 뭔가 만들고 싶었던 MBC노조와 야당의 노력에 심심한 사의를 표하며, 진심으로 충고 한마디 해주고 싶다. ‘약은 약사에게 영화는 영화인에게’ 오케이?

폴리뷰 편집국장 - 박한명 -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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