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선의 NLL 침범이 잦던 지난 9월이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는 “남북간 합의에, 서해에서 기존의 경계선을 존중한다는 게 분명히 들어 있기 때문에, 그런 정신만 지켜진다면 10.4 남북선언 합의에 포함된 (공동어로수역 및 평화수역 설정방안 등) 여러 가지를 논의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을 만나 약속한 내용을 지킨다면, 즉 NLL 침범을 자제한다면 보다 발전적인 상황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게 골자였다.

 

그러자 그 달 29일에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은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역사적인 10.4 선언에 명기된 조선 서해서의 공동 어로와 평화수역 설정 문제는 철두철미 북방한계선 자체의 불법 무법성을 전제로한 북남 합의 조치의 하나이다. 북방한계선 존중을 전제로 10.4 선언에서 합의된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박근혜X의 떠벌림이나 다른 괴뢰 당국자들의 북방한계선 고수주장은 그 어느 것이나 예외 없이 북남 공동합의의 경위와 내용조차 모르는 무지의 표현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북남 공동합의의 경우와 내용조차 모르는 무지의 표현이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곧 있은 국정감사에서 통일비서관 출신 정문헌 의원은 폭탄 고백을 한다.

 

정 의원이 밝힌 지난 2007년 10월 3일 북한의 백화원 초대소에서 가진 단독회담 내용에 따르면 그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말한다.

 

‘NLL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다. 남한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이같은 구두 계약으로 사실상 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충격적인 얘기다.

 

정 의원은 당시 북한 통일선전부가 녹음을 했고 녹취된 대화록은 우리측 비선라인과 공유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또 해당 녹취록은 전 정권에서 폐기 지시가 내려졌음에도 현재 국정원과 통일부에 보관돼 있다는 게 정 의원의 주장이었다.

 

정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당시 정상회담 1개월여 뒤인 11월 1일 민주평통 상임위원회 연설에서 이와 비슷한 주장을 했다"며 녹취록 존재 근거를 댔었다.

 

재밌는 일이 또 하나 있다.

 

김장수 전 국방장관은 정상회담 후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NLL을 중심으로 남북해상에 같은 거리, 같은 면적을 공동어로구역으로 하려고 했지만 북한측이 NLL을 기점으로 남쪽으로만 해야 한다고 고집해 회담이 결렬됐다고 밝힌 바 있다.

 

풀어 말하자면 이름만 ‘공동어로구역’이지 사실상 우리 한국의 영해에서 북한도 같이 물고기를 잡아가겠다고 말한 것과 다름 아니다.

 

그런데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가 이런 말을 한다.

 

“10.4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남북공동어로구역은 NLL을 지키면서 이를 둘러싼 평화 위협을 막는 최선의 방안이다. 남북공동어로구역은 NLL을 중심으로 등거리로 설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NLL이 존중되는 것.”

 

어떤가. 말이 다르지 않은가? 문 후보는 NLL을 중심으로 양측이 같은 거리로 설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NLL이 존중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측 대표는 “정상간에 이미 다 얘기된 일인데 왜 고집을 하느냐?”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확인해보라”고 까지 했다는 것이 김 전 장관의 증언이다.

 

그런 김 장관에 대해 문재인 후보는 “당시 장관의 자세가 경직돼 있어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

 

문 후보가 북한편을 들면서까지 왜 이리 감싸주기를 하는 걸까. 이 부분도 실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과 어떤 합의를 했기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닐까.

 

노무현의 비서실장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어찌 과거 NLL 관련 합의를 실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노무현과 문재인이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공동어로구역? 절대 안될 얘기지만 백번천번 양보해서 남측에 공동어로구역을 만들어줬다고 치자. 그들이 그 구역 안에서 얌전하게 어선들만 돌아다니다 끝날 것으로 보이는가.

 

얕보이고, 하나 내어주고 양보하면, 다 가지려고 하는 게 북한이다. 의기양양해서 다 이긴듯 으름장 놓고 횡포를 일삼는 게 바로 북한이란 얘기다.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대화가 안 통하는 이들에게 ‘정말 여기까지 양보하면 절대 욕심 더 안 부리고 사이좋게 지내는 거지?’라고 생각하고 하나하나 잘 해주고 있는 거라면 정말 큰 오판이다. 그리고 그 오판은 대한민국을 다 말아먹을 망상이다.

 

통일부장관은 대화록이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정원은 당시 대화록을 보관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다만 열람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공개해야 한다. 단순히 과거 노무현 정부를 탓하는 문제가 아니다.

 

과거 지도부가 했던 약속이 있는데 무슨 딴소리냐고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판이다. 우리는 우리의 대통령이 어떤 내용의 약속을 했는지도 모른 채 우리 주장만 펼치고 있는 셈 아닌가.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수습해야 하는지 모든 답이 그 안에 들어있다.

 

북한은 우리의 NLL 논란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NLL무력화와 파괴를 위한 성명과 보도를 쏟아낸다. NLL이 불법이라는 주장을 당연하게 던지고 있다. 야권과 진보논객들이 이를 보충해주며 토론을 통해 지켜주고 있다. NLL 논란이 서해상 안보위협에 총체적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할 수 있는 키가 지금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다는 그 대화록 안에 들어 있다. 노 전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북한에게 10.4 공동선언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주장할 수 있고, 또 다른 협의를 할 수도 있다. 또 그런 발언을 했다면 범정부차원의 대책 마련에 한층 수월해질 것이다.

 

또, 이제 곧 다가올 12월 19일 대선. 한 국가의 수장인 대통령 후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대북정책을 갖고 어떤 행동을 할 지 반드시 국민들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노무현이 과거 그런 약속을 했다면 당시 김정일-노무현 회담 준비위원장이었던 문재인이 이 유지를 실천하지 않을 리가 없다. NLL 포기와 불리한 공동어로구역 조성을 이루려 할 것이란 우려가 그래서 나온다.

 

우리가 모르는 노무현의 NLL 포기 밀약은 사실상 친노계 대북정책의 궁극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손잡고 웃고있는 노무현-김정일. 사실 우리 국민들은 어떤 함정에 빠져 있는 지도 모른다.

 

국가를 지키는 안보. 그보다 우선하는 게 어디 있겠는가.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를 위협하는 가장 실질적이고 강력한 존재다. 그런데 국가의 수장. 국민의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진실을 숨긴 채 주적의 이익에 합세, 그들을 위한 행동을 한다?

 

안된다. 안될 말이다. 국정원은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라. 국가 안보와 국익증진에 최선을 다해야 할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 아닌가. 당시 대화록을 공개하는 것이 바로 국가 안보와 국익을 위한 최선의 길이란 것을 기억하라.

 

김승근 hem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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