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북한의 대선개입 시도가 노골화되고 있다. 국회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공개한 통일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대선 개입 시도로 분석되는 현상이 지난 대선 때에 비해 3개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철마다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려는 북한의 고질적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방송(TV), 평양방송(라디오)을 통해 국내 선거와 관련된 내용을 직접 거론한 횟수는 지난 1월부터 4ㆍ11 총선 때까지 하루 평균 4.6회로, 4년 전 18대 총선 때 같은 기간의 0.8회에 비해 약 6배 증가했다. 특히 총선 이후 12월 대선을 겨냥한 월별 선거 관련 거명 횟수는 4월(4ㆍ12∼30) 40회, 5월 140회, 6월 160회, 7월 171회, 8월 123회였으며, 9월 들어서는 25일 현재까지 133회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4ㆍ11 총선 때의 개입 강도 수준에 이미 도달한 것으로, 5년 전 17대 대선 같은 기간의 1.5회에 비해서 3배가 늘어난 것이라고 한다. 윤 의원에 따르면 대남 선전선동기구인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원회)등 대남 외곽기구들을 적극 동원하는 것은 물론 유튜브와 트위터, 플리커 등 온라인 매체도 적극 활용하면서 남한 젊은 층 유권자에 대한 선전선동도 강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달 들어 북한 어선이 우리 서해 북방한계선 NLL을 일곱 차례 침범하는 등 북한의 대선 개입 시도가 갈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과 일부 언론의 대응은 한심한 수준이다. 민주통합당 정성호 대변인은 2일 현안브리핑을 통해 “대선을 앞두고 정권비판적인 국민여론을 옥죄고, 여당후보를 비호하기 위한 의도가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며 “과거 새누리당이 선거철만 되면 철지난 레코드를 틀 듯이 북한위협을 근거로 안보장사를 해왔음은 국민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또 “박근혜 후보 표현대로 한다면 새누리당이야말로 안보장사 병이라도 걸린 듯하다”며 “특히 얼마 전 헌재로부터 위헌결정이 난 인터넷실명제 도입당시에도, 한나라당은 북한의 심리전 활용 운운하며 국회 정개특위 처리를 주도한 사실이 있다. 튼튼한 안보는 국민의 신뢰에서 나온다. 국민 기본권 제약에나 앞장서는 새누리당이 과연 국가안보를 언급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정부와 새누리당의 북한 비판을 오히려 나무랬다.

 

반정부 성향의 언론들도 이와 대동소이한 주장을 펼쳤다. 오마이뉴스는 이달 들어 부쩍 NLL침범 횟수가 는 북한의 동태를 보도한 KBS, MBC 방송 보도를 트집 잡았다. 27일자 <북한의 대선개입? KBS-MBC의 대선개입!> 제목의 비판 기사에서는 “올해 대선 민심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추석이 코앞인 상황에서 이런 리포트를 무리해서 내보낼 만큼 보수층의 위기의식이 심각한 걸까요”라며 “KBS-MBC의 어제(26일) 메인뉴스는 한국 언론의 자유도가 어디까지 후퇴할 수 있는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며 이날 북한의 도발 움직임을 전한 방송 리포트를 문제 삼았다.

 

요약하면, 최근 북한의 움직임이 우리의 안보상황을 위협할 만큼 심각한 것도 아니고, 또한 그것이 대선에 개입할 의도가 있는지를 따져보지도 않는 것은 군사정권 시절 ‘땡전뉴스’를 연상케 하는 구태라는 것이다. 또 ‘대북 위기의식 고조’라든가 ‘안보’와 같은 이슈가 대선을 앞두고 의제화 되면 보수측에 유리하다는 주장도 펼쳤다.

 

여권이 ‘북풍’으로 득볼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야당과 오마이뉴스 등이 주장하듯 북한의 대선 개입 문제를 정부여당의 ‘안보장사’라든가 ‘여당 후보 비호’ 및 ‘보수층에 유리’하다고 보는 관점 및 주장이야말로 새로운 종류의 ‘북풍(北風)’이고 ‘신(新)안보장사’에 불과하다고 본다. ‘북풍’이 여성 후보인 여당에 유리하지도 않을뿐더러, 여당 후보 역시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내놓은 상황에서 지지층 결집 등의 ‘북풍’ 효과를 노린다거나 할 구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NLL침범 사실을 보도한 방송 리포트가 보수층의 위기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방송의 안보이슈가 보수진영에 유리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히 ‘북한 도발’은 과거에나 통하던 문법으로 성숙한 국민에게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면서도 북한 NLL 침범 보도가 보수진영에 유리하다는 주장은 자기모순이다. 또한 그 같은 주장은 오히려 안보에 대한 국민 의식과 성숙도를 믿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을 고백한 것에 불과하다.

 

매일경제 등 보도에 따르면, 제임스 프레스텁 미국 국방대학(NDU) 박사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 대선 주자들이 승리를 위해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북한이 이 시점에서 굳이 도발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한다. 즉 북한의 계속된 도발을 다른 면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프레스텁 박사는 북한이 도발을 통해 국내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기보다 대선 이후 들어서는 새정부와 북한의 관계 설정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북한의 대선 개입과는 다른 분석이지만, 어찌됐든 북한의 도발이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적으로 별 이득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이런 분석 역시 야당과 일부 언론들의 ‘북풍’ 주장과는 다르다.

 

안보이슈가 여당 후보에 사실상 득이 될 요소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북풍 주장을 고집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인 의도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북한의 NLL침범 등 경각심을 강조하는 정부여당을 향해 ‘안보장사’로 매도하고 각 방송사의 보도를 ‘방송의 대선 개입’으로 몰아가는 주장이야말로 역으로 안보이슈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게 할 뿐이다.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일부 정치권과 언론들이 안보 문제를 진영 논리의 틀에 담아 편협하게 바라보는 점만큼은 지양해야 한다. 이와 함께 어떤 식으로든 대선에 영향을 끼쳐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북한의 대선 개입 시도 역시 중단돼야 한다. 그런 시대착오적 방식으로 북한이 우리에게서 얻을 수 있는 건 ‘불신’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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