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권이 두만강 접경지대와 평양의 건물들을 ‘알록달록’하게 꾸미고 서양식 메뉴를 갖춘 식당을 여는 등, 전과 다른 동향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건 무얼 말하는 것인가? 한 마디로 이미지 정치다. 본질은 그냥 놓아두고 것 치장만 조금 달리 하는 것이다. 이걸 두고 북의 ‘개혁 개방 조짐’이라고 봐선 안 된다. 김 씨 일족의 세습 전제군주제를 그냥 놓아둔 채 ‘개혁 개방’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보는 ‘이론적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을 중국 베이징 대학의 ‘정신도사(精神導師’)로 불린다는 첸리췬(錢理群) 원로교수이자 ‘삐딱한’ 지식인의 말에서 읽을 수 있다(중앙일보 9/22). 그는 말한다. “잘나갔던 사람은 복구를 원하고, 잘나가는 사람은 현상유지를 원한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개혁을 원한다”고. 지금의 “위기의 꼭지점에 와있는...” 중국은 잘나가는 사람들이 잡고 있기 때문에 개혁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김정은 체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김 씨 일족의 전제군주 체제와 노동당 특권층이 북을 꽉 잡고 있는 한 그들은 ‘잘 나갔고 또 잘나가고 있는’ 자신들의 특권을 내려놓을 리도, 그럴 수도 없다. 내려놓았다가는 죽는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상식이지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이런 별것도 아닌 상식 이야기를 하는가?

 

우리 사회 일각에는 김정은 이설주 부부가 평양에 커피와 서양 스낵을 파는 식당을 여는 것을 보고 “봐라 북이 변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러니 이제 다시 퍼주자” 할 친구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친구들의 낙관적 ‘멋 부리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그런 상식은 항상 되살릴 필요가 있다.

 

그런 친구들은 남북관계가 우리가 잘못해서 얼어붙었다는 식으로 말한다. 정말 그런가? 이명박도 ‘안철수의 생각’이 말하듯, ‘채찍 위주의 강경정책‘을 쓴 게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 수재민을 위해서 컵 라면과 의약품을 대량 보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북이 안 받겠다고 했다. 중장비와 시멘트를 ’통 크게‘ 보내달라고 했는데 웬 라면이요 약이냐는 식이었다. 그러나 수재민 구호품이란 이쪽에서 보내주는 대로 받는 것이지, 받는 쪽 마음대로 품목을 정하는 것인가?

 

우리 사회의 일부는 “시멘트건 중장비건 왜 달라는 대로 주지 않았느냐?” “그게 강경책 아니고 뭐냐?” “그래서 남북관계가 나빠졌다” 할 것이다. 하지만 수재민 구호 이슈 다르고 시멘트, 중장비 이슈 다르다. 왜 수재민 돕기에 시멘트 중장비인가? 지금 이야기 하는 것은 집 잃고 굶주린 주민들 우선 당장 먹이고 치료하는 일이지, 건설 자재와 장비를 보내는 일이 아니지 않는가? 수재민 구호라는 긴급사태를 기회로 한 몫 챙기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수재민 구호를 거절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인가? 아마도 처음부터 거절하기로 마음먹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 사회의 일부는 이런 자초지종을 생략한 채 무턱대고 “우리가 잘못하고 강경해서 남북계가 나빠졌다”고 씌운다. 이게 경우에 맞는 소린가? 왜 철저하고 자세하게 전후맥락과 사실관계와 경우를 따지지도 않고 우리를 불문곡직 죄인 취급하는가? 남북관계가 나빠진 이유는 북의 일방주의 때문이고, 일방주의를 하게 돼있는 북의 ‘혁명적 전략, 전술’ 그리고 김 씨 일족과 평양 특권층의 기득권 유지 필요성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는 스스로 ‘상식’의 세력임을 자임했다. 정말 그렇다면 그는 왜 북의 김 씨 세습전제군주제와 평양 특권층의 비상식적 일방주의는 나무라지 않는가? 하긴 박근혜 진영이라고 해서 그런 ‘경우 따지기’를 딱 부러지게 하는 건 아니지만...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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