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舊官)이 명관(名官)!,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말이 불현듯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박근혜가 오늘 아침 출연한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를 다 듣고서.

 

구관이 명관? 박근혜한테 피로감 느껴 안철수 지지로 돌아섰던 사람들, 특히 보수우파층 사이에서는 반드시 저 소리 하면서 다시 박근혜로 회귀하겠군!

 

오늘 아침 출근은 중간에 지하철로 바꿔 타지 않고 아내의 차를 그대로 몰아 광화문 집필실로 향했다. 박근혜가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다니 끊기지 않고 몰입하며 듣기 위해. 7시 17, 8분 쯤 손석희가 박근혜를 전화로 불러냈다.

 

광화문에 이르렀는데도 인터뷰가 계속돼 한가한 데에 차 세워 놓고 안에서 들었다. 올해 56세인 손석희, 역시 방송 경력 30여년의 내공인 듯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거칠게 몰아쳤다. 예의는 깍듯했지만, 안철수 진영의 전화협박 폭로 기자회견에서부터 유신체제, 인혁당 관련자들에 대한 사과 문제, 경제민주화, 복지 문제에 이르기까지 속사포로 던지는 ‘피묻은 질문들’. 40여분 내내.

 

박근혜, 초반엔 잠깐 어제 야구 2군 경기를 찾아 경남 김해에 내려갔다온 피곤이 묻어나는 목소리였지만 조금도 밀리지 않고 또박또박, 중반에 들어 손석희가 더 몰아세우자 특유의 강공으로 되받아쳤다.

 

?“개인적으로 나눈 대화를 너무 침소봉대해서…”

 

박근혜는 안철수를 이렇게 공격했다. 날이 섰군!

 

손석희가 유신체제에 대한 입장 변화 여부에 대해 묻자 “아버지께서,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하셨다.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 역사의 몫이다.”

 

그런데도 입장변화가 없느냐, 손석희가 두 차례 다그치자,

 

“예, 예!”

 

단호했다.

 

손석희가 인터뷰를 마감하며 시간이 부족함을 애석해 하는 듯 하자 속으로는 웃는 듯한 톤으로 “예, 예,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나는 인터뷰를 모두 듣고 나서는 결론을 내렸다.

 

박근혜? 정치하는 15년 동안 저런 내공 쌓았으니 안철수한테 쉽게 무너지지 않는군!

갑자기 박근혜가 무서워졌다.

 

나는 안철수의 측근 금태섭이 기자회견한 다음날인 7일 칼럼에서, 결국 안철수가 ‘뇌물’과 ‘여자’ 문제만을 부각시키게 될 전략적 실수를 범했다고 진단했다. 그게 적중한 것임은 오늘자 한겨레 신문의 여론조사에서 그대로 나와 있다.

 

한겨레 신문 4면 제목,

 

“‘협박전화 공방’ 안철수도 상처…자칭 ‘보수’ 호감도 썰물”.

 

무슨 얘기? 기사는 이랬다.

 

“이념성향을 보수라고 밝힌 응답자 가운데 애초 절반 이상(54.1%)이 안 원장에게 호감을 가졌으나, 이번 사건을 거치면서 호감 유지(29.0%)와 이탈(25.1%)로 반분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로서는 안철수에 대한 호감도가 ‘반토막’ 난 사실을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 보수우파 지지의 반토막!

 

박근혜에게 실망해 안철수한테 날아갔던 보수우파층은 기성 정치인들과는 달리 혼자만 고고한 척 했던 안철수가 자신에게 굴러오는 의혹 덩어리들을 한방에 날려버리기 위해 ‘협박전화’를 들고 나오는 걸 보고 많은 걸 느꼈다는 의미-너도 결국 똑같은 정치꾼이군!

 

한겨레 신문을 더 읽어보자.

 

"박근혜 지지 51.3%>안철수 지지 44.8%, 한달여만에 뒤집혀…박, 수도권에도 우세“

안철수 출마에 대해선 ”찬성 40%<반대 49%“!

 

이건 엄청난 대선정국의 판도 변화로 읽어야 한다. 안철수에 대한 피로증후군이 박근혜에 대한 피로증후군을 명백히 추월하기 시작했다는 생생한 반증!

 

박근혜가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뒤 전광석화처럼 ‘국민대통합 시리즈’를 계속 치고나오자, 보수우파층 사이에서는 어, 박근혜가 변신하네, 라며 박근혜를 재발견!

 

박근혜의 불통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희석시키고 있다.

 

거꾸로 안철수는 책 내고 TV 예능프로에나 출연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나 하고, 심지어 언제 출마 선언할지에 대해서도 “나도 몰라요”라고 오히려 불통 이미지를 키워가다가 검증 공방에서 밀리니 ‘협박전화’ 들고 나왔다가 역공을 자초한 것!

 

안철수, 정말 피곤하다.

 

‘협박전화’? 그럼 뭐야 출마한다는 거야, 안한다는 거야?

 

변호사 금태섭이 폭로 회견한 게 6일이고, 한겨레가 여론조사한 게 이틀 뒤인 8일이니까 그런 민심의 짜증이 이제 막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시점에서 한겨레 여론조사가 실시된 것.

 

이게 무슨 의미? 안철수에 대한 피로가 곧 폭발하게 될 것!

 

단언하건대, 안철수는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오는 30일 추석 연휴를 코 앞에 둔 시점에서 승부수를 또 띄울 것!

 

추석 밥상 위의 민심을 잡기 위해. 말하자면 추석 대공세!

 

박근혜가 이걸 차단하지 못하거나, 독자적으로 추석 대공세를 펼치지 못하면 대선 정국은 결정적으로 안철수에게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

 

박근혜의 추석 대공세?

 

그 내용은 내가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을 어떻게 뒤집어 엎을 것 인가하는 거대한 청사진이 나와야 한다. 가슴에 파고드는 듣기 쉬운 언어로!

 

그게 뭐냐? 지금 국민은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 목말라하고 있다.

 

박근혜의 안정감을 바탕으로 한 지각변동급의 변화(change)!

 

윤창중 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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