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21개국 정상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제20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때문이다.

 

정상들 앞에 선 이명박 대통령은 현재 세계 경제 위기는 2008년 위기때와 사정이 달라 세계가 동일한 행동을 하기 어려워 회복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진단했다. 그러면서 자유무역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여기에 21개국 정상들도 대체로 유로존 재정 위기 이후 어려워진 세계 경제 상황속에서 보호주의가 아닌 역내 무역투자 자유화 및 통합을 통해 성장과 번영을 추구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이 대통령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보호무역을 철폐하고 자유무역을 강조한 이유는 다름 아니다. 바로 이 대통령이 임기내내 힘 쓴 ‘경제영토’ 만큼은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나라의 경제영토는 세계 3위 수준이다. GDP 기준 세계 경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45개국과 모두 FTA를 맺은 상태다. 경제영토 확보와 해외진출 측면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 부럽지 않은 스펙을 갖고 있다. 힘들게 체결한 한미FTA, 한EU FTA가 그래서 더 빛난다.

 

서둘러 놓은 우리가 이득을 보게 됨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간 미국 및 유럽과의 FTA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며 강하게 반대해온 야당과 좌파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정상이다.

 

세계적 추세에서, FTA를 폐기한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세계가 무역을 위해 총성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오늘날, 문을 걸어잠그는 쇄국정책을 스스로 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어찌됐든 이번 회의에서 세계 정상들은 합의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보호무역이 아닌 자유무역을 시행키로.

 

이 대통령은 환경상품 관세 인하 리스트에 합의하는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하기도 했다. 합의된 품목중 우리 수출 전략 품목은 ‘소음·배기·수질·탄화수소·중금속 측정기기’, ‘태양전지’ 등이 있다.

 

이 대통령은 클린턴 장관과 접견한 자리에서 “한·미관계의 기초가 튼튼하기 때문에 양국 협력관계는 앞으로도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클린턴 장관은 “한미동맹이 강화된 것은 한미 FTA의 성공적 타결, 북한 문제에 대한 한미 공조, 핵안보 정상회의, 부산개발원조총회 등 이 대통령의 리더십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실상 미국과의 튼튼한 공조체계를 만들었다고 치켜세워준 것이다. 임기내내 총력했던 사업들에 대한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재확인한 순간이었다.

 

이날 클린턴 장관의 중재로 한일 양국간 외교 갈등은 진정 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하고 나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노다 총리가 이번 이명박 대통령에게 다가와 5분간 선 채로 회동을 가졌다. 일본에서 먼저 화해 제스쳐를 취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한일 관계를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전했다. 자세한 내용을 밝히진 않았어도 경제적,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는 일본이 이 대통령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단순히 일본을 자극했다가 이번에 화해한 정도로 해석이 되느냐. 그게 아니다. 우리는 일본 앞에서 자존심을 세웠고 일왕까지 들먹이며 큰소리 쳤다. 일본은 경제적 압박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실상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한국의 등급을 일본보다 높게 책정함으로서 채무상태 및 경제구조가 오히려 일본보다 더 탄탄하다는 사실만 부각 시켰다.

 

대만과 중국 등 동아시아 각국의 언론과 네티즌들은 한국의 대외적 지위와 경제적 힘이 일본과 대적할 만큼 크게 격상됐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만나 러시아와의 경제협력도 도모했다. 남·북·러 가스관 사업을 비롯한 극동 시베리아 개발이 남·북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안정을 위해 공동 노력키로 약속한 것이다. 자원외교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판이다. 이 대통령은 이번에도 발로 뛰는 비즈니스 대통령의 면모를 내보였다.

 

푸틴은 수산물 가공시설에 대한 우리나라의 투자를 요청하며 극동 태평양 지역에 현재 4만t으로 묶여 있는 명태를 비롯한 수산물 어획량 확대를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경제협력에 그치지 않고 외교문제와 대북문제를 모두 아우르는 성과를 낸 것이다.

 

이 대통령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도 비공개 회동을 갖고 중국의 지진피해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둘은 인사 당시 포옹을 하는 등 친근감을 과시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는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향후 대북 제재를 비롯해 국제관계 협력에 있어 중국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또 올해 수교 20주년과 '한·베트남 우호의 해'를 맞아 다양한 협력사업으로 우호를 다지기로 했다.

 

정상회의 일정을 모두 마친 이 대통령은 쉬지 않았다. 다음 순방지인 그린란드로 출발했다. 그린란드에서 북극항로 및 자원 개발에 대해 협의하고, 일룰리사트 북극 빙하 지역도 시찰해 환경보전과 개발을 병행하는 녹색성장 전략도 논의할 예정이다.

 

작은 변방의 나라가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됐다. 세계 경제위기를 가장 현명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충격파를 모두 막아내고 있다. 인구 5천만을 넘어섰고 FTA를 통한 경제영토 세계 3위, 수출액 세계 7위, 무역규모 세계 9위에 올랐다.

 

세계 어디든 이제 눈만 돌리면 삼성의 핸드폰과 LG의 TV, 현대차의 자동차가 보인다. 한국이 어딨느냐고 묻던 파란눈의 아이는 이제 한국의 K-POP을 따라부르고, 드라마를 보며 한국의 문화를 사랑한다.

 

일왕에게 과거사에 대해 사과를 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일본의 어떤 경제적 압박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힘을 지녔다. 세계 정상들을 불러 회의를 주재하는 의장국이 됐고, UN사무총장과 세계은행 총재가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런던 올림픽에선 금메달 13개로 세계 5위에 올랐고, 평창이 차기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되기도 했다.

 

언제 IMF를 겪었냐는 듯 외환보유고는 세계 7위에 랭크됐고, 세계 경제 위기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국가신용등급은 사상 최대로 높아져 일본과 중국을 모두 눈 아래에 두게 됐다.

 

이번 APEC 정상회담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재확인한 시간이었다. MB정부 내내 부각시킨 한국의 지도자적 이미지가 빛을 본 시간이기도 했다.

 

더불어 그 지위를 이용한 경제적, 외교적 협력을 이끌어냈다. 높아진 한국의 위상은 앞으로도 더 큰 일들을 해나가는데 가장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김승근 기자 hem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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