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7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군의 남조선 강점은 우리에 대한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최대 표현"이라면서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핵 억제력을 유지·강화할 수밖에 없으며 조선반도 핵 문제의 해결은 그만큼 요원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미군이 남조선을 강점한 때로부터 67년이 지났는데, 미국이 남조선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려면 우리의 전면 전쟁 맛을 한 번 볼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며 "미군의 성격과 역할은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지역의 군사적 패권을 쥐기 위한 미국의 전략을 실현하는 최전방 무력으로 변화돼가고 있으며, 이는 동북아와 세계 평화·안정을 위협하는 악성 종양으로 화하고 있다. 미국이 우리와의 평화협정 체결을 한사코 반대하는 것도 우리를 적으로 계속 남겨둬 미군의 남조선 강점을 영구화하기 위한 명분을 유지하려는데 목적이 있다"고도 했다.

 

오는 9월 9일(구구절) 정권수립일을 앞두고 발표한 북한의 이 같은 입장은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후 북한이 개혁개방 노선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분석과 희망과는 다소 어긋난 것이었다. 주한미군 철수 주장, 핵 보유 명분 강화 등 과거와 한 치도 달라진 것이 없는 북한의 대남적화통일 야욕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이렇듯 남북간 대결과 긴장을 이어간 김정일 체제를 그대로 따를 것임을 천명한 김정은의 북한은 내부적으로는 소년조선단 창립일(6월 6일) 행사에 이어 청년절 경축행사까지 대대적으로 치를 예정이라고 한다. 경제난과 수해피해로 주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데도 체제 선전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북한 주민 고통 모르고 사치와 권력 즐기는 김정은은 북한 개혁개방의 주인공이 되기 어렵다

 

특히 북한전문매체 데일리엔케이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올해 4월 평북 모군당 책임비서와 통화 도중 "현재 농장의 한 개 리에서 절량세대(식량 부족 가구)가 60% 정도 되는데 이들에 대한 대책이 선차적이며 농사 차비(준비)도 서둘러야 한다"고 말하자 김정은이 "절량세대가 왜 생기는가? 분배를 못준다는 게 무슨 말인가?"라며 오히려 반문했다고 한다. 북한의 식량 사정을 최고통치자라는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일화는 김정은이 북한의 수해피해를 비롯해 북한 주민의 실생활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한 안타깝지만 좌파진영을 비롯해 일각의 기대처럼 김정은이 북한 개혁개방을 주도할 영웅적 주인공과는 거리가 먼 인물임을 시사하기도 한다.

 

자신과 가족 등은 전 세계 선진국으로부터 하다못해 아기 기저귀 용품까지 명품 제품을 수입해 들여와 쓰면서, 북한 주민이야 비 피해를 입든 말든, 굶든 말든 아랑곳 않는다는 얘기다. 특히 “절량세대가 왜 생기느냐”는 말을 했다는 대목은 사치로 국고를 탕진하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트와네트 남자 버전까지 연상시킨다.

 

김정은의 인물됨을 보여주는 이런 일화는 신선함마저 들게 한 최근 그의 각종 정치쇼가 일각에서 기대하는 개혁개방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단순히 이기적이고 극악한 폐쇄적 독재자 아버지 김정일과의 이미지 차별화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에 설득력을 높여 주는 대목이다. 주민의 원성을 샀던 김정일의 통치 스타일에서 약간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일 뿐, 진정한 북한 개혁개방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북한은 세계로 향하는 게 아니라 몰락을 향해 달리는 중, 김정은 이후 대비해야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한다는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의 전면적 등장,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해임,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들이 영화 <록키>의 주제곡을 연주하고 미키마우스와 함께 춤췄던 모란봉악단 공연 등 이쯤 되면 개혁개방의 긍정적 신호로만 들렸던 김정은의 파격 행보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 추진 중인 각종 경제개혁 조치도 북한 정권에서 멀어진 일반 주민들의 성난 민심을 다독이는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이루어진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앞서 지적했듯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과거의 시각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 최근 들어 국내외에서 진행되고 있는 북한인권운동 활성화 움직임에도 "최근 남조선에서 동족대결을 고취하는 반공화국모략소동이 전례없이 악랄하게 벌어지고 있다"며 비난을 퍼붓는 등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적대적 태도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정권수립일인 9월 9일 이른바 ‘구구절’을 앞두고 내부적으로는 김정은 체제 강화를 위한 정치 선전쇼에 골몰하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남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더욱 공고히 굳혀가면서 한편으로는 남한 내 여론 분열도 꾀하고 있다. 김정은에 대한 긍정적 분위기가 확산된다면, 그만큼 북한으로서는 자신들의 방식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궁극적 목표에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오마이뉴스 등이 ‘한반도평화아카데미’를 개최하면서 이를 알리는 기사 제목에 ‘김정은의 북한, 세계로 향하는가?’로 단 점은 의미심장하다.

 

현재 김정은은 주민들의 충성심을 재고하기 위한 각종 정치쇼와 자신의 우상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식량난과 수해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대다수 주민들의 실생활은 잘 모르고 있는 듯 하다. 최고 통치자로서 지녀야할 최소한의 현실감각을 갖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이런 김정은 체제가 이어진다면 북한의 구구절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지도 알 수 없다. 비참한 독재자의 최후가 예상되는 완벽한 조건을 다 갖춘 김정은의 현재 모습이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김정은 정권이 오래가기 힘들다는 신호도 된다. 달리 말해, 김정은이 위기에 빠질 때 얼마든지 천안함 폭침, 연평도 도발과 같은 제2, 제3의 사건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럴 때일수록 북한에 대한 경계심과 냉철한 판단 능력을 유지하는 데 게을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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