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을 지켜보는 한국인들이 뿔났다. 수영의 박태환, 유도의 조준호, 펜싱의 신아람 선수 등에게 좌절을 안겨준 황당한 오심 사태 때문이다.

 

근대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은 ‘우정과 연대, 페어플레이 정신’을 강조했다. 페어플레이가 깨지는 순간들을 목격한 것이다. 네티즌들이 화난 것도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올림픽의 페어플레이 정신이 깨어졌다고 우정과 연대까지 깰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일부 네티즌들의 도를 지나친 ‘사이버 테러’는 자칫 올림픽 정신의 훼손은 물론 국가 위신까지 깎아내릴 수 있다. 올림픽 10위권 강국의 넓은 아량을 베풀어야 할 때다.

 

박태환의 오심 사건이 터졌을 땐 중국 심판이 쑨양을 위해 악의적으로 오심을 내렸다는 소문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누리꾼들은 곧 중국신판의 신상을 낱낱이 파악해 인터넷에 공개했다. 소위 ‘신상 털기’다. 하지만 정작 심판은 캐나다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인들에게 미안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을 얘기하진 않았다.

 

박태환 오심 사건이 터졌을 때 쑨양의 웃는 사진이 언론을 통해 퍼지며 비웃은 것으로 전파됐지만 실제로는 ‘저게 왜 오심이냐’면서 챙겨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준호의 판정 번복이 터진 후에도 심판이 ‘일본을 편애했다’ 느니, ‘일본이 돈을 먹였다’는 내용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이같은 기사가 일본에도 전해지자 일본 네티즌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분노의 화살을 왜 자기네들에게 돌리느냐는 얘기다. 일본 네티즌들은 “한국인의 정신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 “정말 보기 흉하다”는 식의 비난글이 수천개 남겨졌다.

 

우리가 오심에 항의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그 피해가 다른 선수들에게까지 이어져선 안된다. 아울러 오심을 내린 심판에 대한 비난이더라도 그 정도를 지켜야 한다. 정도가 지나쳤을 때 그들의 미안함은 다시 분노로 바뀔 수 있다.

 

경기장에서 빠져나온 에비누마는 “한국 선수가 이긴 게 맞으며 판정이 번복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우리 네티즌들이 비난한 것과 비교되는 얘기다.

 

신아람 선수와의 경기에서 멈춰버린 1초 오심을 내린 주심 바바라 차르는 이메일과 전화번호 등 신상이 순식간에 밝혀져 인터넷을 떠돌아 다녔다. 페이스북에는 한국인들이 남긴 위협과 비난 내용으로 뒤덮여 끝내 사이트를 폐쇄했다.

 

한국 네티즌들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상대 선수였던 독일의 하이데만의 페이스북을 찾아 욕으로 도배를 했다. 한글로 도를 넘은 악플을 남기기도 했다. 독일인이라는 점에 착안해 ‘나치의 후손’이라고 부르고, 과거 하이데만이 플레이보이 잡지에서 2004 아테네 올림픽에 참가하는 다른 독일 선수들과 함께 누드를 촬영한 것을 찾아내 유포하기도 했다.

 

참고로 하이데만은 신아람과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다”고 언급했었다.

 

신아람 선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팬들이 하이데만 선수의 페이스북에 안 좋은 글을 쓴다는 얘기르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 선수도 올림픽이라는 무대에서 메달을 얼마나 따고 싶었겠나. 사실 그 선수 잘못은 아니다”라고 네티즌들의 자제를 당부하기도 했다.

 

판정 시비 외에도 스위스 축구대표 미첼 모르가넬라가 경고를 받았을 정도로 거친 플레이, 할리우드 액션으로 박주영의 경고를 유도한 탓에 한국 네티즌들의 집단 공격을 받았다.

 

이처럼 거듭되는 한국 네티즌의 해외 스포츠 스타 페이스북 성지순례를 두고 경계의 목소리도 크다. 이럴 때일 수록 네티즌들이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세계가 하나되는 축제인 올림픽이 국가적 분노와 미움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한 결과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시리즈의 홍보를 런던올림픽에 맞출 만큼 한국기업들의 홍보전도 치열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도를 넘은 사이버 테러는 자칫 국익을 저해할 수 있다. 한국 이미지를 망칠 뿐 아니라 선전하고 있는 한류열풍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오심으로 피해를 본 한국 선수들에게 진심이 담긴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국민들도 상대방 선수에 대한 비방이나 사이버 공격보다는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길 바란다.

 

심지어 상대 선수와 심판의 어깨도 다독여주길 바란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정도의 아량을 베풀 수 있는 국가임을 보여주는 거다. 박태환 선수도 결국 쑨양을 최고의 라이벌이자 동료로 봤으며, 조준호 선수도 심판의 판정에 승복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올림픽은 역사적으로 효과적인 외교정책이 될 만큼 화합에 앞장섰다. 다른 이와 더 가까워지고 친밀감을 가질 수 있는 게 올림픽이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면 국익에 더 가까워진다.

 

우리가 더 불리한 판정을 받았다는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물론 정당하지 않은 승부와 판정에는 일침을 가하되 정도를 지켜야 한다.

 

유례없는 오심으로 메달을 날렸으나 세계가 우리를 몰매너의 나라라고 기억하는 것이야 말로 정말 억울한 것이 아니겠는가.

 

단순히 경제적 여유와 부가 많아야 선진국이겠는가. 우리가 진정 선진국으로 불리고, 또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비난과 증오가 아닌 우리의 높은 아량과 배려다.

 

그것이 오심을 내린 심판이 정식으로 사과하고 상대방 선수들이 스스로 몸을 낮추길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그리고 패배한 우리 선수들이 진정 당당해 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칼럼니스트 송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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