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노조는 일본인을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고, 또 우리 국민을 지나치게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는 당신과 일면식도 없다”는 정명자씨의 일본인 남편이 김재철 사장에게 다짜고짜 “당신이 MBC사장을 지체 없이 사임하는 것이 두 사람의 관계가 이 이상으로 파헤쳐지지 않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MBC노동조합이 이런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당신이 당장 사퇴하는 것이 가장 이로울 것"이라고 쓴 그 어설픈 편지를 그런 방식으로, 또 그렇게 뻔한 방법으로 공개했을 리가 없다. 정말 그랬다. 정씨의 일본인 남편이라는 사람이 썼다는 그 편지 내용, 참으로 한심하고 어설펐다.

일본은 ‘간통죄’라는 게 없다. 남녀간 애정 문제에 법의 잣대가 끼어들어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사랑이 식으면 속내야 좋든 싫든 쿨하게 헤어진다. 우리네처럼 남편의 바짓가랑이를 잡거나, 아내의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울고 짜고 사네 못 사네 죽네 사네 하는 풍경은 구경하기 힘들다. 그들은 성에 대해서도 개방적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남의 일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 한 일본 남성이 대한민국 MBC사장 사임 여부에 그렇게 관심이 많고, MBC노조를 그토록 생각해준다. 어딘지 어색하다. 게다가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더군다나 한국의 공영방송 사장이라는 사람과 바람이 났다는데 “두 사람의 관계가 이 이상으로 파헤쳐지지 않기 위해”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란다.

이건 아무리 일본인이라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나의 아내가 딴 남자와 바람을 폈다는데, 두 사람이 몰래 여행을 가고 한 호텔 방에 투숙했다는데,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기만 한다면 두 사람의 관계를 더 이상 파헤치지 않고 넘어가주겠다? 국적을 불문하고 남자라면 내 아내와 그 남자의 관계를 더 캐고 싶고, 어디까지 갔는지, 두 사람이 과연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그렇다면 과연 나를 사랑하기는 했던 것인지, 언제부터 그런 사이가 됐는지 그 모든 것이 궁금하고 불쾌하고 화가 치미는 게 정상적인 모습 아닌가? 배신감에 치를 떨고 저주를 퍼부어야 정상 아닌가? 설사 그 선까지 안가더라도 “노조가 (그 사실을) 발표하기 전에 사퇴하는 게 이로울 것”이라고 협박하는 건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남편의 반응으로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정명자씨의 일본인 남편은 이웃나라 대한민국의 공영방송 MBC 김재철 사장을 사임시키는 데 무슨 역사적 사명감이라도 갖고 있다는 말인가? 김 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기만 한다면 만사오케이란 말인가? 노조가 원하는 대로 김 사장이 물러나주면 ‘불륜의 계산’은 끝난다는 얘긴가? 노조가 입수해 민주통합당 의원 윤관석을 통해 공개한 이 편지는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 편지에는 아내의 불륜을 확인하고 절망에 빠진, 혹은 분노에 찬 사내가 없다. 다만 마치 MBC노조 일본지부 직원의 편지와 같은 건조하고 기계적인 협박만이 담겨 있다.

노조는 “김재철이 한 가정을 파괴했다”고 떠든다. 아내의 배신에는 도통 관심도 없어 보이고 오로지 노조가 원하는 대로 김재철이 방송국 사장직을 관두느냐 아니냐만 관심을 쏟아 붓고 있는 이 일본 남자의 가정을 파괴했다? 도대체 노조가 공개한 편지에 등장하는 정명자씨의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기는 하는 것인가? 실제 정명자씨가 말하는 남편과 노조가 일본으로 날아가 공들여 뽑아낸 ‘작품’ 편지 속에 등장하는 남편은 실제 동일인물이기는 한 건가? 그만큼 정씨 남편의 편지는 보통의 사람이 가진 상식과 일반적인 사고 패턴에서 어긋난 비상식적이고 어색한 의문투성이에 불과하다. 어쩌면, MBC노조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가공의 ‘정명자의 남편’을 편지에서 만들어 냈을 수도 있다. MBC노조가 좋아하는 정황에 의한 ‘의혹’을 충분히 제기하고도 남는 치졸한 상황의 연속이다.

면책특권 우산 아래에서만 할 수 있는 ‘폭로’, 김재철 의혹 증명에 자신 없는 노조의 실체

노조가 찔러 넣어 주어 윤관석 의원이 공개한 이 편지를 김재철 사장은 이미 6월에 알고 있었다고 한다. 파업이 길어지자 지친 노조측 정영하 위원장이 속칭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적당한 선에서 접자는 의미로 일종의 ‘딜’을 시도하기 위해 이 편지를 들고 6월 말에 김 사장을 찾아왔다고 한다. 공영방송 독립? 정권이 장악한 언론의 자유? 노조가 파업으로 MBC를 뒤집어엎으며 국민에게 들이밀었던 알량한 명분의 진실이 바로 이랬던 거였다. 하지만 불륜 사이도 아닌데 이런 황당한 딜을 시도하는 노조의 요구에 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이런 딜을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없지 않을까?

바로 김 사장 입장이 그랬다고 한다. 노조가 제시한 황당한 딜을 당연히 거부하니 업무 복귀 후 바로 ‘의혹’꺼리로 들고 나와 난장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수차례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당한 입장에서 불륜을 제기할 용기를 내자니 차마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면책특권을 가진 자에게 기대는 얄팍한 잔머리를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한 호텔방에 투숙했다”는 제목의 기사로 신문과 인터넷이 온통 도배가 될 것이고, 불륜의 당사자는 산송장이 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이니만큼 제 아무리 배짱 있는 노조라도 ‘면책특권’에 기대지 않고서는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 호텔방에 투숙했다고 폭로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닐 경우, 그야말로 노조는 사회적 매장을 각오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국민의 지탄 속에 영영 재기 불능이 된다. 게다가 연말 대선만 바라보는 야당에게도 치명타가 된다. “불륜”이라고 악악대고 있지만 사실 노조는 그만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면책특권 우산 아래 들어가 ‘폭로’하는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불안했던 것이다.

여행을 하거나 출장지에서 어떤 이유로든 로밍서비스를 받지 못해 타인의 휴대폰을 잠시 빌려쓰는 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노조는 정명자씨 남편이 숙박계에 자신이 정씨에게 준 휴대폰 번호가 남겨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는 주장을 근거로 김 사장과 정씨가 함께 호텔방에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 사장은 "당시 휴대폰의 로밍 서비스를 받지 못해 일본 내 연락 수단을 위해 J씨의 휴대폰을 빌려 숙박계에 그 번호를 남긴 것이다. 숙박계에 공공연히 연락처를 남긴 자체가 두 사람의 관계가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이고 업무적인 지인이라는 반증"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설명이라면 단지 숙박계에 정씨가 소지했던 남편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다는 이유로 두 사람이 불륜사이라고 무작정 몰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정씨 남편이 휴대폰 통화내역을 조회해본 결과 정씨가 아닌 타인이 사용한 것을 확인하고는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편지에서 밝혔다. 이 같은 내용은 김 사장이 정씨로부터 휴대폰을 빌려 썼다는 해명을 뒷받침 해주는 내용이다. 게다가 노조는 편지 내용을 번역하는 데 있어 자신들 입장에 유리하도록 내용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번역했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다.

노조는 정명자씨 남편 만나 취재행위를 했는지, 이간질을 했는지 진실 밝혀 증명하라

이쯤 되면 노조는 일본에 몇 차례나 건너가 정씨의 남편과 만나 어떤 이야기들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 더군다나 사측이 노조가 정씨 남편에게 두 사람이 불륜 사이라고 잘못된 정보를 일방적으로 주입했다고, 노조 입장에서 음해까지 당한 마당이다. 노조는 스스로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당시 어떤 질문들을 던졌고, 정씨 남편은 또 정확히 어떤 대답과 이야기들을 했는지 취재 녹음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사측이 정씨를 만난 노조가 취재행위가 아닌 두 사람이 불륜사이라며 일방적인 이간질과 모함을 했다고 주장하는데 가만히 앉아 “새빨간 거짓말”만 외쳐봐야 소용이 없지 않은가?

게다가 정명자씨의 일본인 남편이 김 사장에게 보낸 편지는 지극히 사적일 수밖에 없는 목적의 편지다. 당연히 두 사람 간의 사적인 대화 내용으로 채워졌어야 할 편지에는 MBC노조가 하라는 대로 사장자리 물러나란 내용밖에 없으니 상식을 초월하는 기괴한 일이기도 하다. 당사자간 대단히 사적이고 비밀스럽게 오갔어야 할 편지를 노조가 어떻게 입수하게 됐는지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런 비상식적이고 괴상한 내용의 편지는, 추론하건데, 보통의 상식적 국민의 머리 속에서 대략 이런 스토리로 전개된다. 노조는 눈엣가시 김재철을 쫓아내야만 했다. 노조는 김 사장을 쫓아낼 수 있는 트집거리를 찾는 과정에서 정명자씨와 지인 간임을 확인했다. 그런데 어라? 생각보다 두 사람이 친해 보인다. 에이, 남녀 간에 친구 사이가 어딨어? 에라 모르겠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아무튼 두 사람 사이는 틀림없이 불륜일 것이다. 그럼 남편은 뭐하나? 일본에 건너가 보니 남편도 김재철과 친한 걸 잘 모르나 보다. 바로 이거다. 불륜이 의심되니 이거저거 확인해 보라고 꼬드긴다. 이거 봐라? 의외로 잘 넘어간다. 의심이 든 남편은 통화내역을 조회해본다. 아내가 호텔에 숙박한 기록이 있다. 노조 말이 맞나보다. 시키는대로 김재철 물러나라고 하자. 노조는 빙고! 김재철은 가정파괴범!

노조는 국민 우롱하지 말고 CCTV 등 확실한 물증 대거나 지금이라도 진실 고백해야

어떤가. 이보다 더 진부하고 가증스러운 가정파괴범이 또 있나? 노조가 펼친 김재철 축출 드라마 속에서 국민의 상상이 대략 이런 삼류 드라마로 흐른다면, 결국 방법은 하나다. 노조 입장에선 안타깝게도 사측 해명이 들어맞으니 노조는 그렇다면 김재철이 빼도 박도 못할 확증을 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즉, 정명자씨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노조에 요구한 CCTV와 같은 물증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한 호텔에 들어가는 것, 혹시라도 호텔방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몰래카메라라도 구해 폭로하는 것이다.

노조가 현재 처한 현실은 이런 물증을 대지 못하면 그야말로 ‘카더라’ 폭로꾼으로 몰릴 수밖에 없게 된다. 제2의 김대업, 제2의 설훈 소리는 양반이다. 온갖 법정 소송 패배는 기정사실이요, 단란했던 한 가정에 야비한 목적을 가지고 끼어들어 남편과 아내를 이간질해 결국 파탄 낸 가정파괴범으로 몰리게 된다. 사회적 잉여요, 국민적 공분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처지가 끔찍하다면 노조는 그럴싸한 정황적 단서를 가지고 부풀려 소리만 요란하게 불륜을 떠들게 아니라 결정적 증거를 댈 수 있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노조는 그야말로 끝장이 나게 된다. 그래서 노조는 승리의 반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어쩌나, 기획, 각본, 연출, 주연을 도맡아 의욕적으로 펼친 ‘김재철 죽이기’ 막장 드라마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리한 전개, 황당한 내용, 억지 설정, 실패의 내용만 거듭되고 있다. 아무리 삼류 드라마라도 그 속에 일말의 삶의 진실은 담고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시청자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이다. 노조가 지금 쓰는 막장 불륜 드라마는 어떤가. 과연 일말의 진실, 아니 사실을 담고 있기는 한가, 시청자 국민을 우롱할 생각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고백하라. 그 정도의 아량은 국민에게 있다.



폴리뷰 편집국장 - 박한명 - (hanmyoung@empas.com) 트위터 주소 https://twitter.com/phm5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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