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상회의가 열릴 때마다 國家首班(국가수반)들은 아시아보다 임금수준이 월등히 높고 미국보다는 일을 적게 하는 유럽의 살길은 지식기반 경제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식자원인 유럽 대학이 형편없는 상태로 顚落(전락)해 유럽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세계 전체의 대학순위에서 10위 이내에 포함된 유럽의 대학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두 대학뿐이다. 나머지 8개 대학은 미국이 차지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제외한 유럽의 대학 중에서 네덜란드의 유트레히트(Uterecht) 대학만이 39위를 했을 뿐이다.

 

유럽에서 최고에 드는 많은 과학자들이 대우와 연구 환경이 월등히 좋은 미국으로 이주하고 있으며, 현재 미국에는 40만 명의 유럽과학자들이 일하고 있다. 이들 과학자들 4명 중 3명은 유럽으로 돌아 갈 생각이 없다고 한다.

 

유럽은 대학에 투자하는 돈도 미국에 비해 보잘 것 없다. 미국은 국민총생산(GDP)의 2.7%를 대학에 투자하는 데 비해 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1.1%, 독일은 1%에 불과하다.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 교수의 연봉은 영국 최고대학의 正敎授(정교수)의 연봉 (8만불) 보다 두 배나 많다.

 

이렇듯 유럽 지식경제의 현실은 음울하다. 유럽연합의 인구 100만 명당 특허건수는 미국의 1/4에 불과하다.

 

유럽 대학이 어쩌다가 이렇게…

 

지난 수 백년 동안 미국의 대학을 발 아래로 보며 세계 최고의 지식을 자랑하던 유럽대학이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하게 된 근본 원인은 유럽을 휩쓰는 平等主義(평등주의) 때문이다.

 

평등주의는 국가의 개입을 가져오고 국가로 하여금 대학의 자율성을 剝奪(박탈)하고 대학을 통제하도록 한다. 유럽의 대학은 재정의 거의 전부를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등 대부분의 유럽연합 국가의 대학생들은 수업료를 내지 않는다. 대학교육이 無償(무상)이기 때문이다.

 

대학에 대한 정부 지출은 인색하다. 그것도 削減(삭감)하라는 압력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지출 분야가 많은 데 대학에만 특혜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대학은 돈에 굶주리고 학생들은 빈둥거린다. 자기 호주머니에서 등록금을 내지 않으니까 돈 아까운 줄 모르게 돼 학교는 ‘시간 떼우기’로 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학위 취득기간이 길어지게 된다. 공짜교육이니 학위를 빨리 취득하려고 부지런을 떨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독일 험볼트대학교의 학생들이 학위 취득에 소요되는 기간은 평균 5.5년이라고 한다.

 

대학에 대한 국가 통제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독일과 프랑스의 대학은 학생 선발권이 없다. 국가에서 학생을 배정해 준다. 이렇게 되니 일류대학이 있을 수 없다. 전국의 모든 대학이 평준화되는 것이다. 영국에서도 대학의 엘리트 교육을 철폐하라는 압력이 일고 있다.

 

유럽의 정부들은 병든 대학을 치유하고자 나름의 처방을 내놓고 있다. 영국은 등록금을 다시 학생들에게 부담시키려 하고, 이탈리아는 교수들의 정년보장을 철폐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독일은 10개의 엘리트 대학을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2차 대전 전까지만 해도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휩쓸고 세계의 첨단산업을 주도하던 전통을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의 개입으로 핵심은 다 빠져버리고 껍데기 개혁이 되고 말았다.

 

유럽 대학에 그나마 희망을 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2001년 발생한 9ㆍ11테러다. 미국 정부가 테러 노이로제에 걸려 외국 학생들의 비자를 제한하는 바람에 중국, 인도 등 외국의 우수한 과학도들이 유럽쪽으로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대학에 대한 중국학생들의 입학(入學) 신청이 78%나 줄었고, 인도학생은 38%가 줄었다. 미국대학 실험실의 연구자들의 대다수가 외국 출신 대학생들이라는 점에서 외국학생의 急減(급감)은 미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1997년에서 2003년간 영국 대학의 외국학생 수는 60%나 증가했다.

 

그러나 유럽의 외국학생 유치는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호주, 뉴질랜드, 심지어 일본까지 외국학생 유치에 뛰어 들었고 외국학생수가 급감한 미국대학들이 외국학생 입국 제한 조치를 철폐할 것을 정부에 강력히 건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대학의 뿌리 깊은 病(병)을 치유하는 것보다는 미국 비자정책을 고치는 것이 더 쉬울지 모른다.

 

- 《The Economist 》2004년 9월 25일字 “두뇌 쟁탈전”( Battling for Brains) 요약

 

박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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